풍류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우리 산천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오밀조밀한 선으로 다듬어진 많은 산이 빚어내는 경치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사계절 덕분에 다양한 색채의 풍광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자연이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화가들은 우리 경치를 자랑스럽게 여겨 많은 작품으로 자부심을 담아냈다. 이런 그림을 ‘실경산수화’라고 부른다. 이름을 얻었거나 숨어 있는 절경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보고 그리는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좇아 야외 사생했던 태도와 같은 이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에 의해 변하는 순간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리의 실경산수화가들은 자연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잡아내려는 데 더 관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으려는 자세는 같았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단순히 경치의 겉모습만 그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풍경의 근본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진짜 경치를 찾아내 그리려고 했던 이런 시도를 ‘진경산수화’라고 한다.
풍경의 본모습인 진짜 경치는 어떤 것일까. 그건 그냥 바라만 보는 풍경이 아니라 경치를 이해하려는 생각이다.
멋진 경치 앞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경관의 빼어남은 물론이고 바람의 움직임, 숲이나 나무가 안겨주는 향기, 공기의 신선한 기운과 온몸으로 전해오는 정취. 이처럼 오감으로 경치를 받아들일 때 풍경을 진짜로 느끼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그림으로 담아낸 것이 ‘진경’이다.
진경의 정신을 처음 그림으로 확립한 이는 겸재 정선(1676-1759)이다. 그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데 꼭 맞는 고유 화법을 창안해 실제 경치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의 서촌 부근에서 태어나 그 주변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겸재는 서울의 경치를 비롯, 당시 명승으로 이름 높았던 개성과 단양, 금강산을 실제 기행을 통해 그려냈다. 겸재가 완성한 진경화법은 실제 경치를 사생하는 차원을 넘어서 경치 속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잡아낸다.
겸재의 진경 정신을 오늘날 감각으로 해석하는 작가가 박종걸이다. 그는 전통 수묵기법을 고수하며 새로운 감각의 진경산수화를 만들고 있다. 진한 먹색과 갈필 효과를 혼합해 자신만의 짙은 감성을 담아낸다. 전국 명승을 직접 답사해 완성하는 그의 작품은 사실성보다는 현장의 감동을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한 먹색과 거친 붓질로 완성되는 박종걸의 21세기 진경산수화에는 현장의 생동감이 넘친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