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 선수 격려·응원 역효과 우려…성적 좋을수록 여당 유리? 이번엔 관심도 낮아 의문
7월 23일 도쿄 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시민들의 시선이 올림픽으로 향하면서 자연스레 대선 정국은 휴식기를 맞았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도쿄 올림픽 관심도는 3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전 올림픽인 리우올림픽 관심도 60%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관심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66%에 달했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권 분위기는 올림픽 여파로 한산한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대선 캠프 관계자는 “올림픽은 올림픽이다. 사람들 관심이 올림픽에 쏠리면서 확실히 정치권을 향한 반응이 줄어든 걸 느낀다”며 “대선 주자 TV토론도 잡히지 않고, 후원금이 들어오는 속도나 기사에 달리는 댓글 양도 줄었다”고 전했다.
과거 정치인은 올림픽이 열리면 이른바 ‘스타 선수’를 적극 활용했다. 선수를 찾아 격려하거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선수의 휴먼 스토리를 자신의 인생사에 녹여 홍보를 하기도 했다. 올림픽과 대선 기간이 겹쳤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한국 육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당시 여권 대선 주자였던 김영삼 민주자유당 의원은 황 선수를 찾아 격려하고 금일봉까지 전달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수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 행사를 열기도 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올림픽 선수들의 승리가 나의 승리로 인식되는 심리적 측면이 있다. 실제로 테스토스테론을 높여줘 기분을 좋게 만든다”며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나 특정 정치인과 올림픽 선수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믿으면 당연히 후광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인의 선수 격려가 오히려 선수 훈련을 방해하는 ‘정치 쇼’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동시에 코로나19 시국을 맞으면서 정치인의 선수 격려 문화가 변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대선 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대선 캠프에선 올림픽이라고 해서 따로 준비하고 있는 건 없다. 응원차 도쿄를 방문하려고 예약해뒀던 비행기 표도 모두 취소했다”며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친 상황에서 섣불리 행동을 취했다간 역효과 우려도 있다. 선수들이 몸 건강히 돌아오길 바라며 응원을 보낼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 올림픽 격려차 현장을 방문한 정치인이 구설에 오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한 예로 평창 올림픽 때 박영선 당시 중소벤처기업 장관은 ‘평창 패딩’과 ‘특혜 의전’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박 전 장관이 99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없어서 못 사던 평창 롱패딩을 입고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박 전 장관은 동료 의원이 전달해줬지만 누군지 밝히진 못 한다고 답했다. 이어 박 전 장관이 윤성빈 스켈레톤 선수가 금메달을 결정짓던 당시 통제구역인 스켈레톤 경기장 피니시 구역에 입장했던 것 또한 도마에 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박 전 장관은 이보 페리아니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회장이 일행을 피니시 구역에 들여보내줬다고 해명했다.
최근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인천국제공항 방문 해프닝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윤 전 총장 대선 캠프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격려차 도쿄 올림픽 선수단 출국 현장을 방문했다고 7월 19일 오전 10시 30분쯤 밝혔다가 정정했다. 윤 전 총장이 공항에 나타났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윤 전 총장 대선 캠프 관계자는 다시 입장을 밝히며 “윤 전 총장은 현장에 가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해 인천공항에는 가지 않았다”며 “내부 혼선이 있었다”고 답했다.
모두의 눈이 올림픽에 쏠린 만큼 여야 대선 주자 또한 가만히 있을 순 없다. 하지만 섣불리 메시지를 전했다간 의도치 않은 논란을 일으킬 여지도 있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 도쿄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다가 비판에 맞닥뜨리자 말을 바꿨다. 이 지사는 7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일본 정부가 도쿄 올림픽 지도에 독도를 표기하는 '침략적 주장'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각자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꼭 얻고, 행운도 따르면 좋겠다. 저도 국민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이에 여야 대선 주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응원의 목소리를 전할 뿐, 올림픽 관련해 특별한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 뛴 대한민국 럭비 선수들의 땀방울에 우리 국민은 진한 감동과 행복을 느꼈다 승패를 넘어 여러분 모두가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박용진 의원은 “도쿄의 기후, 방역 문제 등 여러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우리 한국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낸다”며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우선이다. 마음껏 기량 발휘하시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아직까지 올림픽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또한 메달 획득 선수들에게 축전을 보내는 것 말곤 특별한 메시지를 내지 않는다. 으레 올림픽이 끝난 뒤 선수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열던 격려 행사 또한 계획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실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번진 상황이라 격려 행사를 따로 계획하지 않고 있다”며 “과거 금메달 선수에게만 보내던 축전을 메달 색과 관계없이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에게 보내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어떤 식으로 선수들을 격려할 수 있을지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전우영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자유롭고 객관적인 상황에서 이뤄지길 바라는 특성을 가진다. 특정한 세력이 개인의 의견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려고 한다고 인식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과거 금메달을 딴 선수와 악수하고 사진 찍는 게 통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민이 똑똑해졌기 때문에 요즘 그렇게 하면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이 정치인 지지율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수단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집권 여당에 유리할 수 있다. 선수의 승리가 국가의 승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사람들은 태극기를 달고 나서는 선수들을 국가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집권 여당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해왔다”면서도 “관심도가 낮은 만큼 올림픽이 대선이나 국정 지지도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현재 대선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올림픽보단 여권 지지층인 40대 백신 수급 문제다. 이 문제를 얼마나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대선 주자들은 올림픽 기간엔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정도가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선 민주당 대선 주자 캠프 관계자는 “올림픽과 코로나가 겹치면서 국민들과 접촉할 기회가 적어졌다”며 “유튜브나 온라인 방송 출연 등 국민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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