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에 이어 전두환 정권까지 군사정권이 공고히 이어진 1980년대 중후반까지 문화방송 사장은 대부분 정관계 출신 인물들이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던 인물들이 사장이 됐고, 기자 등 언론인 출신으로 정관계에 진출했던 인물들이 주로 문화방송 사장으로 선임됐다. 정수장학회 관련 인물들이 문화방송 사장이 된 경우도 있고 문화방송 사장을 거쳐 정수장학회 이사가 된 이들도 있었다.
9~12대 사장으로 1971년부터 1980년 6월까지 사장을 지낸 이환의 사장 체제에서 MBC는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이환의 사장은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전라북도지사를 지낸 뒤 1971년 문화방송 사장이 됐으며 1974년 경향신문과 합병해 (주)문화방송·경향신문 사장이 됐다. 이환의 전 사장은 9년여의 사장 재임 시절 MBC 대학가요제 및 강변가요제, 명랑운동회, 수사반장, 113 수사본부 등의 인기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MBC 방송 고유의 색채를 완성해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직후 사장 자리에서 사실상 경질되고 방송담당 총괄이던 임택근 전무가 사장 직무대행을 맡는다. 임재범, 손지창의 생부이기도 한 임택근 사장은 인기 아나운서 출신으로 정관계 출신이 아닌 순수 방송인 출신의 문화방송 사장이 됐지만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며 방송국과 신문사의 구시대 인물을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대다수의 중역들에게 사직을 요구하면서 사표를 쓰게 된다.
전두환 정부의 첫 문화방송 사장이 된 13대 이진희 사장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유신정우회 제1기, 제2기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문화방송 사장이 된 뒤 프로야구 구단 MBC 청룡의 창단을 지시했는데 이후 프로야구 중계를 자주 편성하며 프로야구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후 14~15대 이웅희 사장과 16대 황선필 사장은 모두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산하 공보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물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시작되며 문화방송 사장이 된 강성구 사장(20~21대)은 1993년 3월부터 1996년 6월까지 재임했다. 1966년 MBC에 기자로 입사했으며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 출신이기도 하다. 지금도 유명한 방송사고인 ‘내 귀에 도청장치’ 사건 당시 앵커가 바로 강성구 사장이다.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 이후 유럽본부장, MBC 창사 30주년 기획단장, 마산MBC 사장을 거쳐 문화방송 사장이 됐다. 이처럼 정관계 출신이 아닌 MBC 내부 출신이었지만 1996년 MBC 사원들이 그의 연임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하면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성구 사장은 MBC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 문화방송 사장 계보의 시작점이다. 이는 22대 사장 이득렬(1996년~1999년)로 이어진다. 이득렬 사장은 1974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12년 반 동안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약했다. 강성구 사장이 이득렬 사장의 후임 뉴스데스크 앵커였다. 앵커 시절 이득렬 사장은 ‘땡전뉴스의 상징’으로 불렸는데 그만큼 5·18 민주화운동 왜곡과 폄훼, 전두환 찬양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반면 사장 시절에는 MBC가 진보 성향의 방송사가 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장으로 MBC 논조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아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 편성 및 제작에 보다 높은 자율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사장이 된 뒤 앵커 시절 과오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MBC 내부에서 지지를 받았고 결국 사장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났다. 16대 황선필, 17대 김영수, 18~19대 최창봉, 20~21대 강성구 사장 등이 MBC 논조에 관여해 사원들과의 내부 갈등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 것과 대비된다.
20~21대 강성구 사장, 22대 이득렬 사장, 23대 노성대 사장까지 3명이 연속해서 문화방송 출신 인사들이 사장을 지냈는데 그 흐름은 24~25대 사장을 지낸 김중배 사장에서 끊겼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문화방송 사장을 지낸 김중배 전 사장은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출신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이후 한겨레 편집위원장과 대표이사 사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거치며 언론개혁 그룹을 이끄는 재야 언론인이던 그가 문화방송 사장으로 선임된 것이 당시 상당한 화젯거리가 됐다. 김중배 사장 선임을 두고 당시 언론은 관행화된 정권의 거수기 역할만 수행하던 방송문화진흥회가 대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다.
2003년 선임된 26대 이긍희 사장은 다시 문화방송 프로듀서 출신이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27대 사장을 지낸 최문순 사장(현 강원도지사)은 MBC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이다. 노조위원장 당시의 활약을 바탕으로 최연소 사장이 된 뒤 MBC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최문순 사장 재임 시절 MBC 예능국은 ‘무한도전’ 방송을 시작했고, 드라마국은 ‘내 이름은 김삼순’ ‘태왕사신기’ ‘굳세어라 금순아’ 등 인기 드라마를 방영하며 ‘드라마 왕국’의 위용을 자랑했다. 사장 퇴임 직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가 돼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28대 엄기영 사장은 MBC에 기자로 입사해 메인 뉴스 앵커,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2008년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강성구, 이득렬의 계보를 잇는 앵커 출신 사장인데 1989년부터 1996까지, 다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모두 13년 2개월 동안 앵커로 활약하며 이득렬 전 사장의 기록을 깨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수 앵커가 됐다.
그런데 2010년 2월 8일에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돌연 MBC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정계로 진출한 엄기영 사장은 2011년 4월에 치러진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강원도지사 선거의 상대 후보가 전임 문화방송 사장인 최문순이었다. 결국 선거에서 최문순에게 져 낙선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한편 엄기영 사장의 돌연 사직으로 당시 청주문화방송 사장이던 김재철이 선임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29~30대 사장이 된다. 그렇게 소위 말하는 MBC 암흑기가 시작됐다.
1979년 문화방송·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한 김재철 사장은 사장 내정 당시부터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인해 낙하산·편향 인사 논란에 휘말렸다. 사회, 공익성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등 사장 재임 시절 내내 각종 논란에 부딪혔고 이로 인해 두 번의 장기 노조 파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해고가 있었다. 이후 31대 김종국, 32대 안광한, 33대 김장겸 사장이 박근혜 대통령 재임 당시 사장을 지냈는데 MBC의 친정부 성향은 계속됐고 김재철 사장 당시 장기 파업과 대대적인 해고 여파도 극복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34대 사장이 된 최승호 사장은 2017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재임했다. 최승호 사장은 1986년 MBC에 입사해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의 CP를 맡아 PD수첩 전성기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2012년 KBS, MBC 양대 공영방송사 총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문화방송에서 해고됐다.
이후 함께 해고된 동료 5명과 함께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해 1, 2심 모두 승소했다. MBC의 상고로 사건은 대법원으로 가지만 약 2년간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MBC 사장으로 취임한 최승호 사장이 직접 상고를 취하하면서 해고 무효 확인 소송도 마무리됐다. 이렇게 김재철 전 사장 시절 장기 파업과 대대적인 해고에서 비롯된 상처가 극복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파업 당시부터 사측과 입장을 같이 했던 직원들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고 결국 배현진 아나운서와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등이 MBC를 떠났다.
그 이후에는 파업 당시 채용이 이뤄진 ‘MBC 파업대체인력’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김재철 사장 이후 경영진은 사내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직원들을 업무에서 배제하기 위해 수백 명의 경력직원들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문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업무에서 부당하게 배제됐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부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이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뒤 최초의 진정 사건으로 기록됐다.
현재 MBC 사장은 2020년 2월에 취임한 35대 박성제 사장이다. 박성제 사장은 1993년 기자직으로 문화방송에 입사했으며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2012년 6월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후 최승호 전 사장과 함께 2017년 12월 7일에 복직했다. 최승호 전 사장에 이은 또 한 명의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으로 최근 MBC가 2020 도쿄올림픽 중계 방송 사고를 내면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고개를 숙였다.
MBC 사장 뽑는 방문진 이사는 누가 뽑나?
박성제 MBC 사장의 임기는 2023년 2월까지다. 과거 관행만 놓고 보면 2022년에 정권이 교체될 경우 박성제 사장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퇴 압박이 가해져 조기 사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방송 관계자들은 이제는 세상이 많이 달라져 정권교체에 따른 조기 사퇴는 없을 거라고 보고 있다.
차기 사장은 어떻게 선임될까. 기본적으로 MBC 사장은 7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에서 추천하고 선임한다. 방문진 이사는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여당과 야당이 나눠 추천하고 있다. 여야 추천 이사 비율은 6 대 3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MBC 사장이 선임되고 이에 따라 논조가 달라지곤 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7월 20일 공모를 마감한 KBS 이사 지원자 55명과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 지원자 22명을 공개했다. 지원자들의 면면이 공개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은 서로 반대 진영의 이사 지원자들을 향해 “부적격자는 사퇴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MBC의 경우 현 박성제 사장의 임기가 2023년 2월까지지만 이번에 선임되는 KBS와 방문진 이사진은 2024년까지 3년 임기가 보장된다. 이들이 박성제 사장 후임인 36대 MBC 사장을 뽑게 된다. 방통위는 8월 초에 방문진 이사진을 확정할 예정이다.
8월에는 KBS 이사와 방문진 이사를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6월에 방송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창 뜨거웠다.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을 위한 방송법 개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당연히 KBS와 MBC 등 공영방송사 노조에서도 이사와 사장 선임 과정의 정치적 독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6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 이사진이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선임 과정에서 국민이 직접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논의만 이뤄지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KBS 이사와 방문진 이사 선임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8월 중 이뤄지게 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