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지드래곤 등 특급스타들 미술 관심 지켜본 2030세대 새 재테크 수단에 눈 돌려
최근 미술계에서는 MZ세대에 주목한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한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남들과 다른 개성과 가치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행을 선도하는 이들이 미술계로 눈을 돌리면서 단순한 감상을 넘어 컬렉터로도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미술품 수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재벌이나 고소득층의 전유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 연예계 스타들이 미술품 수집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각자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추후 재테크 수단으로도 활용 가능하다는 이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RM과 지드래곤은 이런 흐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주역들이다. 두 사람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아이돌이자 유명한 미술 애호가이기도 하다. 수십억 원대 미술품을 소장한 큰손 컬렉터인 동시에 신진 미술가를 먼저 알아보는 탁월한 감각도 지녔다.
#방탄소년단 RM…전시 성패 좌우하는 ‘아트 셀럽’
2020년 연말 중국의 신진 작가 유에민쥔의 국내 전시회에서 RM이 목격됐다. 평소 각종 미술전이나 아트페어를 조용히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한 RM은 이날도 예고 없이 전시회를 찾았고, 뒤늦게 그를 알아본 관계자에 의해 방문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유에민쥔 전시회에는 그야말로 구름 관람객이 몰렸다. ‘RM이 본 전시회’라는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 결과다.
RM은 최근 2~3년 동안 미술계 큰손으로 급성장했다.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여러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RM이 관람한 전시, RM이 구입한 작품은 그 자체로 국내외에서 유명세까지 얻는다. 코로나19 상황도 RM의 이름값 앞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에민쥔의 전시는 코로나19 확산세 가운데서도 5월 서울 전시가 폐막할 때까지 성황을 누렸다.
RM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는 물론 아직 국내에 덜 소개된 작가의 작품을 발굴하는 역할에도 적극적이다. 해외투어 등 일정을 소화하는 틈틈이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찍은 ‘미술관 관람 사진’도 많다. 덕분에 MZ세대 사이에서는 RM이 선택한 전시나 미술품 루트를 그대로 따라다니는 움직임도 형성됐다. 그로 인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더욱 높인 작가도 있다. RM이 유독 좋아하는 윤형근, 장욱진 화백이 대표적이다. RM은 경매를 통해 백자를 낙찰받기도 했다. 백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여러 차례 드러낸 덕분에 해외 팬들이 조선백자에 관심을 쏟는 일종의 ‘전통문화 선순환’도 이끌고 있다.
RM의 미술 사랑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2019년 무렵이다. 그해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에 혼자 나타나 각종 미술품을 관람한 모습이 방문객의 눈에 띄면서 차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같은 해 방탄소년단 공연을 위해 부산을 방문했을 때는 혼자 부산시립미술관 내 이우환공간을 찾아 방명록을 남겼다. 이우환을 비롯해 김환기 작가 등이 RM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힌다. 미술계에서는 미술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광범위한 관심사, 원로와 신진 작가를 아우르면서 동시대의 흐름을 간파한 그의 감각을 높이 평가한다. 최근에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장을 찾은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미술 발전에도 힘을 보탠다. RM은 지난해 생일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에 1억 원을 전달했다. “산간벽지 청소년들도 미술책을 보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뜻에서다.
#지드래곤…펜트하우스가 곧 갤러리
지드래곤은 빅뱅으로 한창 활동할 때부터 미술 수집에 집중했다. 한때 그가 제주도에서 운영한 카페에는 미국 유명 작가 제프 쿤스의 설치 미술작품이 있었고, 독일 추상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도 있었다.
얼마 전 서울 한남동의 최고급 펜트하우스로 이사하고 집 내부 사진을 공개한 뒤에도 미술계의 시선을 붙잡았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뿐 아니라 집 곳곳을 장식한 고가의 미술품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 작가 리처드 프린스의 작품인 ‘간호사’ 시리즈, 현대 조형예술의 거장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집안 내부를 장식하고 있었다. 특히 ‘간호사’ 시리즈는 400만 달러, 약 45억 원에 거래되는 작품이란 사실에 놀라움이 컸다.
지드래곤 역시 해외 일정을 소화할 때면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 남다른 관심은 해외에서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2019년 미국의 유명 미술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미술 컬렉터 50인’에 꼽히기도 했다.
2030세대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타들의 취향은 곧 유행이 된다. 현재 MZ세대가 미술계의 신흥세력으로 부상한 결정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미술품 소장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면서 취향에 맞는 작품 구입에도 나서게 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최근 미술계와 유통계가 앞다퉈 MZ세대를 겨냥한 아트 비즈니스에 주력하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국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로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과 후원사 UBS가 발간한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중국, 홍콩 등 10개국 고액 자산가 컬렉터 2569명 가운데 56%가 20~40대 초반에 해당하는 MZ세대로 나타났다.
RM, 지드래곤만큼이나 미술 애호가로 꼽히는 대만의 톱스타 주걸륜의 행보도 비슷하다. 최근 홍콩 소더비 경매 홍보대사로 나선 그는 미국의 천재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과 협업을 진행해 주목받았다. 그는 영화 출연과 공연을 통해 버는 수입 대부분을 미술품 구입에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해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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