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의 한 장면. |
오피스 스파우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만 실제 직장생활에서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C 씨(31)는 유난히 친하게 지내는 여자 동기가 있다.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자.
“남자 동기들보다 꼼꼼한 면이 있어서 업무적으로 도움을 청할 때도 안심이 됩니다. 제가 휴가로 자리를 비웠을 때도 기꺼이 업무 정리를 해주죠. 고객 불만 사항이 접수됐을 때도 함께 상의하면서 해결책을 찾는 경우도 많고, 동기다 보니까 상사나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잘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각자 연인이 있는 상태로 직장 동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않고요. 그 여자 동기 같은 존재가 없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아요.”
IT회사에 근무하는 Y 씨(29)도 여자 선배와 오피스 스파우즈 관계인 것 같다고 했다.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는 여자 선배가 있습니다. 서로 연애상담도 해주고, 상사 흉도 봅니다. 업무적으로도 서로 도와주는 부분이 많죠.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가끔 회사 근처에서 술 한잔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예요. 퇴근길까지는 이렇게 지내지만 퇴근 후나 주말엔 절대 사적으로 연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룰을 잘 지키면 오피스 와이프나 오피스 허즈번드는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용품 회사에 근무하는 기혼녀 D 씨(32)도 동갑내기 남자 동료와 끈끈한 동료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회사에 입사는 제가 먼저 했어요. 회식자리에서 동갑이라는 걸 알게 됐고 같은 세대라는 동질감에 금방 친해졌습니다. 저는 이미 결혼을 했고 그 친구는 결혼 적령기라 연애 문제에 있어서도 제가 조언을 해줄 때도 많고요. 남자라는 생각보다는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죠. 여자 동료와는 경쟁관계 때문에 서로 피곤해지기도 하는데요, 이 친구와는 그런 게 아니라서 업무 면에서도 진지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어요.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에서까지 일 얘기를 하면 남편이 좋아하겠어요? 하지만 풀고는 싶고 그럴 때 회사에서 그 친구랑 이야기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껴요.”
분명 좋은 의미로 시너지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은 좋지 않을 수 있다. 짝 있는 남녀가 눈에 띄게 붙어 다니는 것이 곱게 보일 리 없다고 이야기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인테리어 회사에 근무하는 S 씨(여·29)는 같은 회사에 있는 과장과 여직원을 보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앞선다.
“원래 유난히 친하긴 했어요. 그 여직원은 간식을 사올 때도 과장이 좋아하는 분식집은 어디고 거기서도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죠. 커피 취향은 물론이고 회식자리에서 즐겨 마시는 술 종류도 알아서 가져다줄 정도였으니까요. 일에서도 과장을 많이 도와주고 있었고요. 한번은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 갔는데 그 여직원이 실연을 당했는지 상담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우는 거예요. 근데 과장이 안아주면서 위로를 하는데 마음이야 순수했겠지만 다른 직원들이 보기엔 좀 그렇더군요. 전부터 둘의 관계에 대해 수군대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니 의심이 증폭됐죠.”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B 씨(33)는 오피스 와이프 같은 신조어를 들으면 짜증부터 난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하고 흘려듣고 말았는데 가만히 보니 자신의 여자친구도 오피스 허즈번드가 있는 것 같단다.
“최근 여자친구의 말에서 부쩍 많이 등장하는 남자 직장 동료가 있어요. 성격도 괜찮고, 다른 직원들도 잘 챙겨주고, 일도 잘하고, 적극적이고…. 뭐 장점밖에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이랑 회사에서 일 관련해서 사심 없이 이야기도 털어놓는다고 말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이런 게 오피스 스파우즈 같더군요. 한번은 여자친구 휴대폰을 보게 됐는데 그 동료한테서 업무 외적인 쓸데없는 문자까지 수시로 오는 거예요. 좋게 생각하면 회사에서 잘 맞는 이성 동료인데, 막상 여자친구한테 그런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납니다. 그렇다고 속 좁아 보이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답답하네요.”
유통업계의 K 씨(30)도 오피스 스파우즈에 대해선 조심스런 생각을 갖고 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서로 친하게 지내던 직원들이 있었어요. 각자 가정이 있는 분들이었고요. 처음에는 그냥 ‘짝꿍처럼 잘 맞나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같이 출장 가는 횟수도 많아지고, 붙어 다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어요. 다들 쉬쉬하면서도 말들이 많아졌고, 결국 남자 직원은 지방으로 발령 나고, 여자 직원은 퇴사했습니다. 처음에야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은 관계였겠죠. 하지만 끝까지 그 순수한 관계가 유지되기가 어려울 듯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적인 이야기를 계속 나누게 되면 회사를 벗어난 장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봐요.”
미국에서 출발한 개념이기에 미국은 좀 더 많은 수의 직장인들이 ‘오피스 스파우즈’에 익숙해 있다. 경력관리 사이트 ‘볼트닷컴’의 지난해 조사에서는 기혼자 3명 중 1명이 직장이나 거래처에 절친한 이성 친구가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직장인들이 오피스 와이프나 오피스 허즈번드의 필요성에 대해서 인정했다. 하지만 그 절반을 훨씬 뛰어넘는 비율로 자신의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오피스 스파우즈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디자인업체에서 일하는 J 씨(여·32)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동성 동료끼리는 안 보이는 묘한 경쟁심리가 작용해서 속내까지 털어놓는 친구가 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반면 이성끼리는 경쟁에서 좀 벗어나 있고 연애상담도 구체적으로 받을 수 있는 등 친해질 ‘꺼리’가 많죠. 사내 메신저가 발달한 요즘 친분을 형성하기에도 수월해졌고요. 솔직히 저도 그런 존재가 있으면 회사 생활이 덜 삭막할 것 같긴 하지만 제 배우자의 직장 내 이성 친구를 인정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