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직후 모습. AP/연합뉴스 |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쉬쉬하던 정부는 방사능 누출을 의심하던 주변국의 압력에 못 이겨 36시간이 지나서야 사실을 인정하고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늑장대응 탓에 피폭자들의 수는 수만 명에서 혹은 수백만 명까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지켜보는 일본인들과 전 세계인들이 염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생존자들은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은 다르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 일본은 다르다”며 적절한 준비와 신속한 대응으로 제2의 체르노빌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사태가 심각하긴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난 1986년 4월 28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TV 연설을 통해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는 자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인 모스크바에는 ‘체르노빌발 공포’가 시민들을 엄습했고, 정부가 방사능 오염 정도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체르노빌에서 104㎞ 떨어진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구소련 연방국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모든 기밀 정보는 모스크바로 직접 전달됐기 때문에 키예프의 언론들은 방사능 유출의 심각성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주장하는 공식적인 고요함 뒤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패닉 상태가 지속됐다. 기차역에는 연일 키예프를 탈출하고자 표를 구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대부분 여자들과 어린아이들만이 가까스로 도시를 빠져 나갔다.
방사능이 어느 정도 유출됐고, 또 어디까지가 안전거리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체르노빌 원전 근로자들의 주거지가 밀집해있던 프리피야트의 주민 5만 명은 정부의 이주 명령이 떨어지자 대부분 서둘러 가까운 브랸스크로 피신했다. 그곳 역시 프리피야트 못지않게 방사능 오염 정도가 심한 곳이었기 때문에 대피한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만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이제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러시아 정부가 사고를 숨기려 했다는 증언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체르노빌의 근로자였던 한 여성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건 당일 이른 아침 상사로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화로는 말을 할 수 없으니 하루 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창문을 닫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4월의 햇살을 즐기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고, 아이들은 길바닥이나 물가에서 장난을 치면서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그렇게 36시간을 보낸 후에야 정부는 영문을 모르는 프리피야트 등 인근 주민들에게 다짜고짜 “도시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반경 30㎞ 이내에 거주하던 11만 6000명에게는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구소련 정부가 이처럼 뒤늦게나마 사고 사실을 인정한 것은 스웨덴 정부의 추궁 때문이었다. 당시 체르노빌에서 약 1094㎞ 떨어져 있던 스웨덴의 포스마크 원전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피복에서 방사능 미립자가 검출된 것을 미심쩍어하던 스웨덴 정부가 구소련 정부에 사실 여부를 공개하라며 압박을 가한 것이다.
4월 26일과 27일, 단 이틀을 그렇게 평화롭게 보낸 결과는 끔찍했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식적으로 2500명 이상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했고, 350만 명 이상이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일부 환경단체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50만 명이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체르노빌 피폭자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등에 걸쳐 500만~600만 명에 달하며, 그린피스는 앞으로 방사능 오염에 따른 암으로 10만 명 정도가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연구하고 있는 독일의 한 단체가 조사한 수치는 더욱 충격적이다. 2006년까지 정화작업에 참여한 근로자들 5만~10만 명은 이미 사망했으며, 54만~90만 명이 방사능 오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 후 원전 근로자들의 자녀들과 오염 지역 주민들의 자녀들 사이에선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경우가 부쩍 늘었고, 독일과 영국 등 유럽 곳곳에서는 신생아 사망률도 급증했다. 영국의 경우에는 1986~1989년 사이 무려 11%가 증가했다.
또한 독일 남부지방에서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희귀병인 신경아세포종(신경계 악성종양) 발병률이 높아졌고, 1000~3000명가량의 기형아들이 집중적으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독일, 그리스, 스코틀랜드, 루마니아 등에서는 백혈병 환자가 급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87~1992년 동안 내분비계질환 환자 수는 25배 증가했으며, 신경계 질환은 6배, 순환계 질환은 44배, 소화기 장애는 60배, 피하 및 피부조직 이상은 50배, 정신 장애는 53배가량 증가했다.
당시 바람 부는 방향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가장 피해가 컸던 인접국인 벨라루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국토의 23%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2만 47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등 소란을 겪었던 벨라루스는 사고 후 갑상선암 발병률이 30배 증가했으며, 현재까지 1만 명 이상이 갑상선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5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은 장차 갑상선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밖에 기형아 출산율이나 뇌수종, 백혈병 환자의 비율이 증가한 것도 물론이다.
이런 육체적인 피해도 심각하지만 정신적 피해가 더 심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상실감, 언제 암이 발병할지 모른다는 공포심, 그리고 장애로 인해 평생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유령처럼 살아야 하는 비참함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19세 때 체르노빌을 떠났던 헬레나 코추첸코는 “당시 임신한 상태에서 고향을 떠났다. 딸아이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실을 알고는 그제야 방사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다. 내 고향 마을은 불도저에 밀려 통째로 사라졌다. 이제는 아무리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며 울먹였다.
한편 지금까지 국제원자력사고등급 기준으로 유일하게 7등급으로 기록된 체르노빌 사고는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무려 400배 많은 방사능 물질이 누출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탈리아 국토 면적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노빌 사고는 원전 근로자의 실수로 인한 인재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2003년 우크라이나 비밀정보국의 인터넷사이트에 공개된 KGB의 비밀문건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은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1971~1988년에 걸쳐 KGB 중진이 모스크바에 보낸 이 기밀문서에는 사고 발생 전에 이미 발전소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령 1984년 문건에는 ‘3호기와 4호기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유고슬라비아 회사에서 수입한 일부 부품들의 품질이 불량하다’는 등의 기록이 적혀 있다. 또한 1982년 기록에서는 ‘소량의 방사선이 누출됐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 문건이 공개되자 분노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잃어버린 땅과 세월을 돌려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이미 공중에 퍼진 방사능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때문에 지금으로선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편 체르노빌 인근의 방사능 오염 구역이 완전히 정화되려면 앞으로 10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유령도시 참상 체험객 발길
‘유령 도시’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은 체르노빌이 지난해부터 관광지로 개방되면서 호기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포브스>가 ‘세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방문지’로 묘사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체르노빌의 인근 도시는 당시의 끔찍했던 참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방문객들로 활기 아닌 활기를 띠고 있다.
2009년에만 7500명이 다녀갔으며, 제한구역까지 공개되는 올해에는 방문객 수가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 방문 코스의 비용은 100파운드(약 18만 원). 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발전소 내부를 방문한 후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3㎞ 인근에 있는 프리피야트 마을을 구경하는 코스다. 발전소 안은 유령이라도 튀어나올 듯 으스스하고 공포스런 적막감이 돌며, 원전 근로자들의 거주지였던 프리피야트는 폐허가 된 채 버려진 집들 사이로 야생 동물들만이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부터는 관광객들에게 공개되는 구역이 좀 더 확장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 4호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일반인 접근금지 구역이었던 곳까지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생생한 사고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위험하지 않겠냐는 지적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안전한 방문 코스를 개발했다. 안심해도 좋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