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계약 없이 3개월 강의 후 배제…근로기준법·강사법 사각지대에 놓여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은 이민자가 우리말과 문화를 익혀 지역사회에 쉽게 융화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법무부가 3년 단위로 기관을 공모하고, 응모한 곳 중 대학교를 비롯해 전국 300곳이 넘는 운영기관을 선정한다. 운영기관들은 법무부가 제시하는 자격 요건에 맞는 강사들을 채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은 1년에 3학기로 운영된다. 한 학기는 수강신청 기간 등을 포함해 4개월 단위며, 강사들은 한 학기에 2~3개월 강의를 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채용된 일부 강사들이 계약서도 없이 3개월 강의 후 운영기관의 사전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다음 학기 수업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법무부조차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A 강사는 올해 초 인천 소재 한 대학교에서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한국어와 한국문화 및 한국사회이해) 1학기 강의를 진행했다. 한 학기 강의를 마친 뒤 다음 학기를 기다렸지만 학교 측에서는 다음 학기 강의 진행 여부에 대한 공지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A 강사는 학교 측에 수업 배정 여부를 물었다.
그제야 학교 측은 “이번 학기 강의 배정이 마무리됐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답변을 했다. 당연히 강의가 배정됐을 것으로 생각했던 A 강사는 사전 통보도 받지 못한 채 강의에서 배제된 것이다. 일방적인 조치가 부당하다고 느낀 A 강사는 뒤늦게 학교 측과 강의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 강사는 당연히 강의가 1년간 보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당초 강의 배정 과정에서 담당자가 전화통화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강의 배정이) 1년 보장된다’고 했던 터다. 다만 ‘매 학기 강의가 배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는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대학교에서, 역시 계약서 없이 한 학기 강의로 마친 B 강사는 “서면계약서를 본 적도 없고 받지도 못했다”며 “계약서상 한 학기만 강의하는 상황임을 알았더라면 다른 곳을 알아보거나 취업 준비 등 다른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는) 강사들의 자격 요건에 대해서만 기준을 제시할 뿐 인력 충원과 관리방식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가 최소한 운영 실태는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A·B 강사와 같은 대학교에서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의 경험이 있는 C 강사는 “과거 이 대학교에서 계약서 없이 강의했을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다른 대학교에 가보니 계약서를 쓰더라”며 “무엇보다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이유도 모른 채 강의 배정에서 제외된 사실이 가장 억울하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 중 일부 기관만 강사들과 계약서를 작성할 뿐 대부분 기관은 강사들과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의 한 대학교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매년 예산이 얼마나 나오고 수업이 얼마나 배정될지 모르는데 대학교가 어떻게 강사들과 미리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나”라고 하소연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강의를 배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해고’의 개념이 아니다”며 “강사로 한 번 등록하면 이후 언제든지 강의를 배정받을 수 있고 큰 귀책사유가 있거나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이상 계속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 강의가 재배정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기도 힘들다. C 강사는 “이유 설명도 없이 갑작스레 강의 배정에서 제외하더니 2~3년 지나고 나서 ‘강의를 배정할 건데, 하겠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위탁·용역 계약서'를 통해 기간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부는 강사들의 계약서 작성이 의무사항은 아니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들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가 아니다. 근무 시간과 급여 체계 등의 형태가 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수년 전 대학교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도입됐다. 하지만 사회통합프로그램의 강사들은 강사법에서 말하는 대학교의 학부나 대학원에서 강의하는 강사가 아니어서 이 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강사들 처우와 환경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무부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운영기관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강사들의 처우 개선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차연수 대상노무법인 노무사는 “운영기관과 강사들 사이의 계약상 분쟁을 운영기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법무부답지 않다”며 “법무부가 공존의 정의와 국민 권리 보호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책임을 지닌 만큼 운영기관과 강사들 사이의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국 운영기관의 실태를 점검해볼 계획”이라며 “강사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계약서 작성 등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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