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의 신작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발생 당시 남한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의 직원들이 이념을 떠나 생존만을 목표로 손을 잡아야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가 연기한 남한 대사관 소속 강대진 참사관은 살짝 가벼우면서도 능글맞은 모습으로 자칫 어둡기만 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에 맛깔나는 양념처럼 존재한다. 까마득한 선배 뻘인 한신성 대사(김윤석 분)에게 틱틱대는 모습이나 북한 대사관 소속 태준기 참사관(구교환 분)과 아웅다웅 입씨름과 몸싸움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전쟁의 참사에 잔뜩 긴장한 관객들의 어깨를 편하게 풀어주고 있다.
“‘모가디슈’에는 그 시대가 보여주는 상이 있어요. 제가 연기한 강대진 참사관은 그 상에 맞춘 틀도 가져가지만, 협상에 있어서는 체면을 몰수하기도 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깐 비굴했다가 또 화도 버럭 질러 봤다가 하는 다양한 모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일반적인 상식에서 좀 벗어난 행동들이 이 캐릭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강대진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다양한 상황과 주변 인물들의 노력을 가미하려 애썼던 것 같아요.”
‘모가디슈’의 백미는 후반부의 카 체이싱 신이지만 조인성이 동참한 ‘몸싸움’ 액션 신도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장면 가운데 하나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북한 측 태준기 참사관과 사실상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운 몸싸움을 펼치는 바로 그 장면에서 많은 여성 관객들이 상대역인 구교환의 안전을 걱정했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질문이 많이 쏟아진 탓이었는지 구교환은 “선배님의 ‘순두부 터치’ 덕에 매우 안전하게 찍을 수 있었다”며 안전을 위한 조인성의 배려를 몇 번이나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액션 신 현장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안전한 연기를 위해 만들어진 소품이었고, 치고받고 또 던지는 장면에서도 합이 잘 맞아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전혀 없었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몸으로 하는 액션도 그렇지만 태준기 참사관과 마치 초등학생처럼 유치하게 입씨름을 하는, 이른바 ‘구강 액션’도 영화의 재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피난길 루트를 정하는 과정에서 한 쪽이 의견을 제시하면 다른 한 쪽이 반대하고, ‘누가 너보고 같이 가자고 했냐?’며 다시 싸움의 시동을 거는 이들을 말리느라 한신성과 림용수(허준호 분) 양국의 두 대사가 골머리를 썩이는 장면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관객들의 웃음보를 제대로 터뜨린다.
“강대진과 태준기가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선 애드리브가 없었어요. 류승완 감독님이 애드리브를 허용하지 않는 분은 아니신데 딱히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이미 대본에 ‘말맛’만 살리면 표현이 다 될 만큼 좋은 대사가 있었고, 또 연기하는 입장에선 캐릭터들이 서로 대치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라 그 대치점을 저희가 굉장히 재미있어 했어요. 그래서 입으로 하는 그런 ‘구강 액션’을 둘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웃음). 상대방 호흡을 다 잘라 먹으면서 이기려고 하는 게 느껴지는 대사들이잖아요. 캐릭터들이 딱 구체적이다 보니 그런 대사를 주고받는 것도 더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어요.”
상대역인 구교환도 그랬지만 함께한 ‘대선배’ 김윤석, 허준호와도 조인성은 첫 호흡을 맞춘 것이었다. 현장에서 어느 정도 긴장이 됐을 법도 했지만 4개월간 모로코 올 로케이션으로 지내는 동안 어느 가족 못지않은 끈끈한 정을 나누게 됐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이미 앞선 인터뷰 자리에서 김윤석과 허준호는 조인성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는 조인성의 차례였다. 다만 그는 두 선배들이 자신의 앞에서는 직접적으로 칭찬을 해주지 않은 것에 살짝 서운함이 묻어 나는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선배들의 닮고 싶은 점을 욕심이라고 말했지만 조인성 역시 연기자로서 활동한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를 닮고 싶어 하는 후배들도 적지 않을 터다. 어느새 데뷔 23년차를 지나고 있는 그에게 혹시라도 아직 닿지 못한 꿈이나 목표 같은 것이 있진 않을까. 이 물음에 조인성은 소탈하고 단순한 답을 내놨다.
“앞으로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없어요…(웃음). 인간 조인성으로서도 그런 건 없어요. 제가 위대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냥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중들을 더 자주 뵀으면 좋겠다 이 정도죠. 뭔가를 대단하게 생각하기보단 지금을 만족스럽게, 문제 없이 지내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대중들에게 기억이 되지 않을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