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약식기소와 같은 벌금 1000만 원 구형…선고 형량에 관심↑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박설아 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은 마약 취급자와 공모해 프로포폴을 상습투약했고 타인의 인적사항을 건네주는 등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했다"며 벌금 1000만 원을 구형하고 추징금 8만 8749원 상당을 명령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하정우 측 변호인은 "피고인은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며 "대부분 범행이 시술과 함께 이뤄졌고 의료인에 의해 투약됐다는 사실을 참작해 달라"고 밝혔다.
하정우는 지난 2019년 1~9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향정신성 의약품인 프로포폴을 19차례 가량 불법 투약하고, 매니저나 가족의 명의로 진료 내용을 허위로 기록하도록 한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에 약식기소됐다. 약식기소는 정식 재판 없이 형량이 정해지는 간이 재판 절차로, 검찰이 피의자가 저지른 범죄를 벌금형에 처하는 게 적당하다고 판단할 때 법원에 약식 절차로 사건 처리를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피고인이 받고 있는 혐의의 최고 법정형이 벌금형 이하이거나 징역형 등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라 하더라도 검사의 판단에 따라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피고인의 죄질이 가벼운 경우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을 달리 봤다. 정식재판으로 회부해 좀 더 면밀한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파악한 것. 약식기소는 법원이 서류만 검토해 벌금이나 과태료 등을 부과하지만 정식재판은 재판부가 정해진 범위에서 자유롭게 형량을 정할 수 있다. 법원이 정식재판으로 사건을 넘기는 경우는 피고인이 법원에 요청하는 경우, 또는 사건이 중하거나 공판절차에 의한 신중한 심리를 필요로 할 경우에 해당한다.
형종상향의 금지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이 법원의 약식명령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은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하지 못하게 돼 있다. 선고되는 벌금형의 액수가 증가할 수는 있지만, 약식기소에서 벌금형이 선고됐다가 정식재판에서 징역형으로 변경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하정우가 아닌 법원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한 만큼 이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할 것인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통상적으로 검찰의 구형보다 선고의 형이 더 높은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약식기소에서 정식재판으로 이어진 만큼 약식기소 형량과는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재판에서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으나 앞서 수사 단계에서 하정우는 프로포폴 투약이 "여드름 흉터로 피부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레이저 시술과 같은 고통이 따르는 경우 수면마취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며 치료 목적에 해당하는 행위였음을 주장해 온 바 있다. 그러나 2013년 연예계 불법 프로포폴 투약 사건에서 법원은 "병원 내에서 의사의 미용성형시술, 통증 등 치료 목적 시술과 병행된 프로포폴 투약 행위라 하더라도 그 투약 행위가 오로지 질병예방 또는 치료 등이라는 의료 행위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술을 빙자해 프로포폴을 투약하는 행위도 불법 투약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레이저 등 여드름 흉터 치료를 위한 피부과 진료에서 프로포폴 사용을 지양하고 국소 마취 또는 마취 크림을 이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의료계의 상황에 비춰 봤을 때 하정우에게는 불필요한 프로포폴 처방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소 80회 이상 투약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2013년 연예계 불법 프로포폴 투약 사건의 피고인들과 달리 하정우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적은 횟수로 투약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선고 형량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하정우의 선고 공판은 오는 9월 14일 열린다.
한편 이날 검은 양복 차림으로 재판에 참석한 하정우는 최후진술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얼마나 주의 깊지 못하고 경솔했는지 뼈 저리게 후회하고 깊이 반성한다"며 "많은 관심을 받는 대중 배우가 좀 더 신중하게 생활하고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제 잘못으로 동료와 가족에게 심려를 끼치고 피해를 준 점을 고개 숙여 깊이 사죄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변호인 측은 하정우의 현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변호인은 "이 사건이 언론에 드러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상황으로 배우로서 활동도 못 하고 경제 손실이 크다"며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이 선고되면 영화 제작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고 밝혔다.
하정우는 지난 2020년 초 크랭크업 한 영화 '1947 보스톤'과 올해 초 촬영을 마친 신작 '야행'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리남'의 주연을 맡고 있기도 하다. 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의 주연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만큼 이번 재판 결과가 각 작품의 흥행에도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부분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에 말 그대로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그 이유로 볼 수 있다. 하정우는 약식기소에서 정식재판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국내 최정상 로펌으로 꼽히는 율촌, 태평양, 바른, 가율 등 4곳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10명을 선임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이들 중 일부는 부장검사 또는 부장판사 출신이며 대검찰청 마약과장을 지낸 인물도 포함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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