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미래사업 기대감 높지만 주력 정유사업 전망 부정적…2대주주 아람코 반응도 변수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는 등 그룹 내 위상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증권가에서도 현대오일뱅크의 주력인 정유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만큼 미래 먹거리를 추가로 발굴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늦어도 내년 중 기업공개(IPO·상장)를 추진할 예정이다. 신사업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있어야 투자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CO₂로 시멘트 원료 만든다”
현대오일뱅크는 친환경 사업으로 수소를 낙점하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 대부분 정유공장은 탈황공정(불순물 처리 과정)에 투입하기 위해 LNG(액화천연가스), 납사 등을 원료로 수소를 제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수소 제조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CO₂)가 배출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에 현대오일뱅크는 태경비케이, 신비오케미컬 등과 제휴를 맺고 CO₂를 탄산칼슘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탄산칼슘은 건축자재인 시멘트 등의 원재료로 쓰인다.
이를 위해 현대오일뱅크는 하반기 중 300억 원을 투자해 충남 대산공장 내에 연산 60만 톤(t) 규모의 탄산칼슘 생산 공정을 완공할 계획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시설이 완공되면 금전적으로 연간 약 100억 원 정도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한다”며 “하지만 돈보다는 친환경 블루수소를 만든다는 점에서 ESG 관련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최근 증권사 연구원 대상 컨퍼런스콜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CO₂를 분리막 방식으로 포집해 탄산칼슘으로 만드는 방안을 연구개발 중으로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해 테스트하고 있다”며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의 자회사 현대케미칼은 올해 11월 가동 예정인 충남 대산 화학단지(HPC콤플렉스)에서 매년 18만t의 에틸렌초산비닐(EVA)을 생산하기로 했다. EVA는 에틸렌과 초산비닐을 섞은 합성수지로 태양광 패널 겉면 보호재로 사용된다. 현대케미칼은 사업 시작과 동시에 한화토탈에 이은 국내 EVA 생산 2위 기업이 된다. 이외에도 현대오일뱅크는 HPC콤플렉스 내 오일 보일러를 LNG 발전으로 대체하고, HPC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기반으로 2차전지 소재 사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 분야를 넓힐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오일뱅크의 신사업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블루수소, 화이트 바이오, 친환경 화학 등은 현대오일뱅크의 HPC 상업 가동과 함께 가속화될 것”이라며 “현대중공업지주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가치는 현대오일뱅크의 IPO가 본격화될 경우 재평가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양 산업 인식 넘어서야
이처럼 현대오일뱅크의 신사업은 순항 중이지만 IPO 전망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현대오일뱅크의 주력인 정유 사업이 ‘지는 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은 2차전지 업체로 탈바꿈 중이다. 또 에쓰오일(S-Oil)은 올해 상반기 매출 12조 558억 원, 영업이익 1조 2002억 원이라는 호실적을 거뒀지만 증권가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NH투자증권은 에쓰오일에 대한 투자의견을 ‘보유(Hold)’로 지정하고, 목표주가는 현재보다 15%가량 낮은 8만 2000원을 제시했다. 현재 에쓰오일의 주가는 9만 원 중반대 수준이다. 한화투자증권도 에쓰오일의 목표주가를 현재 주가와 비슷한 10만 원으로 제시했다. 전우제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에쓰오일을 비롯한 정유업의 완전한 시황 회복은 2024년은 돼야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2년 IPO를 추진했다가 철회했고, 2018년 재추진했지만 금융당국의 회계 감리를 넘지 못해 좌초됐다. 현대오일뱅크는 2019년 지분 17%를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에 매각한 후 다시 IPO를 추진해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오일뱅크 대신 현대중공업부터 상장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5일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고, 9월 중 상장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중공업의 상장 순서가 바뀐 과정에는 “정유 기업이 상장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느냐”라는 내부 회의론이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약 10조 원의 기업가치를 기대하지만 현대오일뱅크보다 매출이 30~40% 많은 에쓰오일의 시가총액도 10조 원 수준이다. 당장 올해 상반기만 해도 현대오일뱅크의 매출은 9조 4805억 원이지만 에쓰오일의 매출은 12조 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기업가치가 낮게 측정되면 현대오일뱅크 2대주주인 아람코의 반발이 예상된다. 아람코는 2019년 말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를 8조 1000억 원으로 측정해 1조 4000억 원을 투자했다. 아람코 입장에서 투자 금액보다 낮거나 조금 넘는 수준의 공모가격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가 뜨면서 정유 사업이 사양 산업 취급을 받고 있지만 당분간은 원유 수요가 견조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정유업이 워낙 변동성이 높아 (신사업 장착 없이는) 투자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현대오일뱅크 한 관계자는 “내년을 목표로 IPO를 추진 중이지만 상세한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다”라며 “신사업이 투자를 받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IPO를 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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