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려면 평화로운 사랑을 해야지 왜 전쟁 같은 사랑이야. 사랑이 전쟁 같은 사람은 삶도 전쟁 같은걸! 전쟁 같은 사랑은 드라마에서나 보고, 삶에서는 드라마를 만들지 말아야지.”
그리고 동생네 집에 들어갔는데 동생이 컴퓨터를 켜서 ‘너를 위해’와 ‘여러분’을 부르는 임재범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노래를 듣는데, 바닥 없는 곳을 짚었을 때처럼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노래는 유리디케를 잃어버린 오르페우스의 노래였다.
노래도 잘 부르지만 그의 노래가 감동적인 것은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리라.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눈빛은 상처 입은 표범의 눈빛이었고, ‘여러분’과 함께 무릎을 꺾는 그는 온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사랑한 후에 스스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된, 상처 입은 야수였다. 소화되지 못한 과거가 체증으로 걸려 있는 게 아니라 노래로 터져 올라오고 있는 이 시대의 오르페우스를 보며 내 속에서도 속울음이 터졌다.
오르페우스가 누구인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비탄에 잠겨 비탄의 노래만 부르다 마침내 슬픔 자체가 된 존재 아닌가. 아, 사람들이 임재범, 임재범! 하고 환호하는 이유를 알겠다.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하면서 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그의 노래는 슬픔은 억압하고 가둬야 할 부끄러운 죄가 아니라 느끼고 사랑하고 위로받음으로 흘려보내야 할 에너지임을 알려준 것이다.
그렇게 멋진 임재범이 친구가 없단다. 진짜로 거칠고 고독한 생을 살아왔나 보다. 인생의 한 고개를 넘어야 할 나이에 울어주고 웃어주는 친구 하나 없다는 건 잘못 살아왔다는 증거라기보다는 독특한 운명의 증거겠다고 생각하다가 내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에게 진짜 친구인가, 하고. 그러고 보니까 현대인들이 임재범에게 빠져드는 이유가 분명히 보인다.
어렸을 적부터 경쟁에 익숙하고 점수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업무를 떠나서는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하고, 먹고 사는 일과 관련되는 사람 앞에서는 속마음을 열어 보이기를 어려워한다. 당연히 현대인들에게는 친구가 없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한 사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사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하고 함석헌 선생이 물어보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