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말로 중요한 사회다. 가족이 중요한 이유는 태어나 만난 최초의 사회거나, 자기가 일군 사회인 그곳에서 그가 인간관계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가고 어떻게 인간애를 배워왔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도 믿기 힘들다. 가족만 강조하는 사람,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의 ‘가족’은 공동체로, 국가로 확대되지 않는다.
요즘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가족 중의 가족인 배우자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 풍경에서 성품 혹은 지향성의 중요한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아, 저이는 정말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이겠구나, 저이는 연출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불편하기도 하고 때론 민망하기까지 하다.
물론 ‘가족애’가 공동체로 확대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공동체와 가족을 감동적으로 연결해서 잊을 수 없는 리더가 내게는 오바마였다. 2004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의 연설은 단순한 연설이 아니라 인간학이었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내게 중요한 사실입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있다면 그이가 내 할머니가 아니어도 그것이야말로 내 삶이 가난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제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나는 내 형제를, 자매를 지키는 자이고, 이것이야말로 이 나라가 작동하는 원리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으로 꿈을 꾸지만, 이것이 국가라는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힘입니다.”
정적에 대한 비난밖에 없는 싸움꾼의 말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리더의 말이었다. 나만 따르라는 권력의 말, 아집의 말이 아니라 힘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게 만드는 자비의 말이었다. 그때 나는 국가가 전체주의적 폭력기구가 아니라 국가라는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힘이 있을 수 있다고 느꼈다.
얼마 전 그 오바마가 우리나라의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여전히 인간적이었다. ‘국가의 이익과 개인의 가치관이 충돌했을 때가 있지 않았는가. 그때 당신은’이라는 물음이 던져지자 그는 그 질문이 좋은 질문이면서 어려운 질문이라는 것을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그가 예로 든 것은 중동문제였다. 중동문제가 터졌을 때 인권을 중시하는 그의 가치관과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이익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거나 인권이 우선이라거나 하지 않았다. 문제에 답을 하지 않고 문제를 문제로 남겨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쩌면 어정쩡해 보일 수도 있고 우유부단해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고뇌할 줄 아는 품격 있는 지도자 상을 본 것이다.
점점 더 정치 환경이 품격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작은 빌미만 생겨도 만들어지는 가짜뉴스. 아니,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게 만드는 무차별적인 공격판이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억울할 일이 많겠는가. 그럴 때일수록 말하는 방식, 말의 내용, 말을 듣는 태도에서 그의 살림살이가 드러난다. 그가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인지, 철학이 있는 사람인지, 독선적인 사람인지,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인지, 안하무인인지, 이기적인 사람인지, 탐욕스런 사람인지,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인지,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인지….
공동체의 살림을 책임져야 할 리더의 성품은 정말로 중요하다. 함께 꿈꿀 수 있는 진실한 인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인간학적 고뇌가 있는 인간, 그런 인간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지.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