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전부터 대표팀 방역수칙 위반 물의…미국·일본과 전력차 드러낸 데다 ‘강백호 태도 논란’까지
이변의 희생양이 된 게 아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 올림픽 경기를 지켜본 선수 출신 해설위원은 "이제는 근성이나 투지로 야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 선수들도 분명 이기고 싶었을 거고, 간절했을 것"이라며 "다만 상대팀들 전력이 우리보다 강했다. 특히 일본과 우리 야구의 격차가 예전보다 더 벌어졌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수도권 구단의 한 관계자 역시 "한국 야구의 '참사'라 불린 대회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잘나가다 한번 넘어졌다'는 느낌이었다면, 도쿄올림픽은 '앞으로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인상을 줬다"고 아쉬워했다.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던 한국 야구
돌이켜보면 한국은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당연하게 여기던 나라가 아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동메달이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었다. 당장 다음 올림픽인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선 본선 진출도 하지 못했다. 한국 야구사에 첫 번째 국제대회 참사로 기록된 2003년 11월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최악의 결과를 낸 탓이다.
한국은 아테네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한 이 대회에서 2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다. 출전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뿐. 일본은 늘 강적이었지만, 나머지 두 국가는 객관적으로 한 수 아래. 한국과 비교할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올림픽 진출에 필요한 2승은 이미 확보한 듯했고, 한국 야구대표팀은 삿포로를 그저 아테네로 가는 경유지 정도로만 여겼다.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현대를 이끌고 있던 김재박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문제는 선수 선발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는 거다. 송진우, 이상훈, 심정수, 김한수 등 당대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졌다.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구대성 등 해외파 선수들도 각 소속 구단의 방침에 따라 불참했다. 여기에 국내 포스트시즌 일정으로 인해 대표팀 전체가 손발을 맞춘 시간은 단 1주일에 불과했다. 그래도 대표팀은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 대만과 중국에게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구에 '100%'는 없다. 대만전이 그랬다. 대만은 한국보다 절박했다.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을 목표로 해외파 선수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한국전 선발은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던 왕첸밍. 한국 타자들이 쉽게 공략하기 어려운 투수였다. 한국도 그해 한국시리즈 MVP 정민태를 내세웠다. 이승엽와 장성호, 이종범의 적시타를 앞세워 9회초까지 4-2로 앞섰다. 더 많이 득점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루플레이 실수로 번번이 날려버린 게 아쉬웠지만, 일단 승리는 눈앞으로 온 듯했다.
그러나 9회말에 사달이 났다. 5회부터 버티던 불펜 임창용이 두 타자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냈다. 구원 등판한 조웅천은 투아웃까지 잘 잡고도 적시타 두 개를 연이어 내줬다. 4-4 동점.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 10회 구원 등판한 세이부 소속 투수 장즈자는 박한이-이승엽-김동주를 모두 범타로 돌려세웠다. 한국은 결국 10회말 1사 만루서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아 4-5로 패했다.
한국은 아마추어 동호회 수준의 중국 대표팀을 이기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아테네에 가려면 1승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상대인 일본은 자국 리그 최고의 스타들로 드림팀을 꾸려서 출전했다. 일본 선발 투수 와다 쓰요시는 5⅓이닝 9탈삼진 무실점으로 한국을 압도했다. 힘 한 번 못 써보고 0-2로 졌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탈락했고, 한국이 아닌 일본과 대만이 아테네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게인 베이징'은 없었다
그로부터 4년 뒤, 한국은 베이징 대회 금메달로 한국 야구의 올림픽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다만 2012년 런던 대회부터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돼 오랜 기간 '마지막 우승팀'으로 남아 있었다. 모처럼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한국 야구대표팀이 큰 관심을 받은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도 선수 선발 과정부터 삐걱거렸다. 베이징 대회에 이어 다시 대표팀을 이끌게 된 김경문 감독이 올림픽 최종 엔트리 24명을 공개하자 몇몇 선수의 발탁과 제외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김 감독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엔트리 교체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지만, 곧 불가피한 사유가 생겼다. NC 다이노스 일부 선수가 서울 원정 숙소에서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한 채 외부인과 술자리를 벌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그 안에 대표팀 내야수 박민우가 포함돼 있던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 자격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마친 박민우는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도의적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박민우는 결국 대표팀에서 사퇴했고, 롯데 자이언츠 신인 왼손 투수 김진욱이 대체 선수로 승선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 키움 히어로즈의 자체 조사 과정에서 국가대표 투수 한현희도 앞서 NC 선수들과 술을 마신 외부인과 추가로 술자리를 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현희 역시 방역 수칙을 위반해 더 큰 비난을 받았고, 자필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대표팀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 결과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 베테랑 마무리 투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 대표팀 막차를 탔다. 가뜩이나 "베스트 멤버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대표팀인데, 선수 두 명이 첫 훈련 소집 직전 야구 외적인 이유로 교체됐으니 분위기가 뒤숭숭한 건 당연했다. '야구계가 뒤숭숭한 시기에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이라도 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짊어지게 됐다. 김 감독은 출국 전 인터뷰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국민의 실망감을 풀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은 끝내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조별리그에서 미국에 패해 조 2위가 된 한국은 도미니카공화국을 끝내기 승리로 꺾고 일본과 맞붙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일본과 2-2로 팽팽하게 맞선 8회말 한국 투수 고우석의 실책이 나오면서 끝나야 할 이닝이 이어졌고, 결국 만루에서 고우석이 야마다 데쓰토에게 주자 싹쓸이 적시 2루타를 맞았다. 일본은 결승에 올랐고, 한국은 패자 준결승에서 미국을 다시 만나게 됐다.
미국은 두 번째 대결에서도 변함없이 강했다. 6회말 원태인을 상대로 연속 안타와 볼넷을 얻어내 만루 기회를 만들었고, 뒤이어 등판한 조상우를 다시 연속 안타로 공략했다. 6회에만 피안타 4개와 볼넷 1개로 5실점한 한국은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2-7로 완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 후에는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마음만 갖고 오진 않았다"는 김경문 감독의 발언이 확대 해석돼 성난 야구팬의 포화를 맞기도 했다.
한국의 동메달결정전 상대는 앞서 한 차례 이겨본 도미니카공화국이었다. 대표팀 전체가 승리를 위해 절치부심했다. 이유가 있다. 동메달은 병역 미필 선수들이 체육요원 대체 복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2년간의 군복무 공백이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사활을 건다. 도쿄올림픽 대표팀 엔트리에서 국방의 의무를 해결하지 못한 선수는 총 7명. 투수 원태인 박세웅 김진욱 이의리 조상우, 내야수 김혜성 강백호였다.
이번에도 경기 중반까지는 팽팽했다. 선발 김민우가 1회부터 홈런 2개를 맞고 4실점하면서 승기를 내주는 듯했지만, 한국 타선이 1-5로 뒤진 5회 동점을 만들었다. 양의지와 김혜성, 박해민의 연속 안타로 2점을 따라잡은 뒤 무사 1·3루에서 허경민의 투수 땅볼로 3루 주자가 득점했다. 계속된 1사 2루에선 2루 주자 박해민이 천금 같은 3루 도루에 성공했고, 상대 투수의 폭투로 홈까지 들어와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김현수와 오재일의 연속 볼넷으로 만든 2사 1·2루 기회에선 강백호가 6-5로 역전하는 적시타를 쳤다.
문제는 그 후였다. 이번 대회 불펜의 핵심으로 활약한 조상우가 6, 7회를 무실점으로 막은 뒤 8회 오승환으로 투수가 교체됐다. 오승환은 앞서 도미니카공화국전 9회초 무사 3루에서 세 타자를 연속 땅볼로 잡고 실점을 막아 한국의 9회말 끝내기 승리의 발판을 놓았던 터다. 김 감독은 오랜 기간 한국 야구대표팀의 뒷문을 지켜온 그의 경험과 배짱을 믿고 다시 한번 1점 리드를 지키기 위한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오승환은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한 뒤 폭투로 동점을 허용했다. 계속된 1사 2·3루에서는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내줬고, 계속된 1사 1루에선 2점 홈런까지 얻어맞았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5실점. 교체된 뒤 망연자실한 채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오승환의 벌건 얼굴이 한국 야구대표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경기는 결국 그 점수 그대로 끝났다. 6-10으로 패한 한국은 빈손으로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떠났다.
패전투수가 된 오승환은 경기 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응원해준 모든 분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의 참패는 오승환 한 명만의 책임이 아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7경기를 치러 3승 4패를 기록했다. 3번의 승리와 4번의 패배 모두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깨닫게 한 경기들이었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이 미국으로 떠난 뒤 그 자리를 대체할 국가대표 에이스가 나타나지 않았고, 타선은 폭발력과 짜임새 모두 부족했다. 고액 연봉자와 스타 선수가 출전한 덕에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지만, 도리어 가장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자 비난의 후폭풍도 그만큼 거셌다.
반면 에이스 김연경을 앞세운 여자배구 대표팀을 필두로 수영 경영의 황선우와 다이빙의 우하람, 육상 높이뛰기의 우상혁, 근대5종의 전웅태 등은 각각 자신의 종목에서 역대 한국 선수 최고의 성적을 냈다. 평소 야구, 축구 등 인기 프로스포츠에 밀려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묵묵히 땀을 흘려 최상의 결실을 얻었다. 야구의 '노 메달'은 이들의 활약과 대비돼 더 씁쓸해 보였다.
#감독의 사과로까지 확대된 강백호의 '껌 씹기'
대표팀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메달결정전에서 역전을 허용한 직후, 이번 대회에서 부진했던 강백호가 더그아웃에 멍하니 앉아 껌을 질겅질겅 씹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포착됐다. 이 경기를 해설하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 KBS 해설위원은 "강백호 선수의 모습이 잠깐 나왔는데, (저런 태도로 있으면) 안 된다. 더그아웃에서 계속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비록 질지언정 우리가 보여줘선 안 되는 모습이 있다. 계속해서 미친 듯이 파이팅을 해야 한다. 끝까지 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코멘트가 나온 뒤 끝내 한국이 패하자 강백호의 '껌 씹는 장면'에 야구팬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국가대표로 나온 만큼 승부가 기울었어도 흐트러지는 모습은 자제했으면 한다", "한 장면만으로 선수를 평가할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 야구 원로들까지 가세해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에서 근성이나 절박함이 보이지 않았다. 요즘 선수들은 몸값도 높고 인기도 많아졌는데, 모두 정신을 차리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쓴소리를 더했다.
심지어 일부 야구팬은 강백호의 소셜미디어(SNS)와 여러 커뮤니티 게시판에 지나치게 원색적인 욕설이나 비아냥을 퍼부었다. 마치 강백호가 대표팀의 성적 부진에 대한 분노의 희생양이 된 모양새였다. 강백호는 결국 자신의 SNS 댓글창을 일시적으로 닫아야 했고, KBO리그 복귀 첫 경기에 얼굴을 눈 밑까지 가리는 검정 마스크를 쓰고 나와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이 논란은 끝내 대표팀 감독과 소속팀 감독이 모두 사과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김경문 감독은 지난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지금 야구계가 여러모로 안 좋은 점만 크게 부각되고 있다. 강백호에게 (그 상황에 대해) 물으니, '경기에서 이기고 있다가 역전되는 순간이라 나도 그 순간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앞으로 선배들과 지도자들이 잘 가르치고 주의를 주면 될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이강철 KT 위즈 감독 역시 10일 재개된 후반기 첫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강백호 본인이 가장 힘들겠지만, 그 상황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본인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여러 사람이 하는 말과 달리, 그런 (승부를 포기하거나 근성이 없는) 마음은 전혀 아니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을 거다. 앞으로 더그아웃이나 평소 생활에서도 행동에 주의를 할 수 있게 백호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 역시도 내가 지휘하는 팀 소속 선수의 행동이라 관리자로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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