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1991년 8월 14일 종로의 한 사무실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일본이 부정해오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누군가 증언을 한 것. 피해 사실을 증언한 사람은 바로 고(故) 김학순 할머니였다.
일본군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은 김학순의 증언을 기점으로 뒤집혔으며 숨어있던 더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끌어내는 단초가 되었다. 모두가 위안부 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30년 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최초증언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꺼내본다.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 증언은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기 전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입증하기 위해 떨쳐 일어섰던 윤정옥 교수. 윤 교수는 자신이 운이 좋아서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때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던 소녀들의 억울함을 알리는 것이 평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던 윤정옥 교수는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윤정옥 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내가 위안부라는 말은 알지도 못했는데 어떤 강제징용 나갔던 어떤 아저씨한테 들은 얘기거든. 내 질문은 위안부가 뭐냐였다가 (그 다음에는) 사람이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1988년 윤정옥, 김혜원, 김신실 세 사람은 강제동원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막상 그들이 찾은 피해자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만나주지 않았다.
피해사실을 입증하자면 당사자의 증언이 꼭 필요했던 상황에서 드디어 최초의 증언자가 나타났다. 김학순 할머니였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 낱낱이 증언하였고 이에 용기를 얻어 숨어있던 다른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윤정옥 교수를 비롯한 1세대 활동가들을 통해 위안부 운동의 알려지지 않은 탄생과정과 분투기를 들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증언 4개월 후 1991년 도쿄의 한 강연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정원이 200명이었음에도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일본 사람들이었다.
가해국 그리고 가해국민 앞에서 일제의 모든 만행을 고발한 김학순. 당시 현장에 있던 양정자 대표는 김학순의 증언에 사람들은 충격과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의 분위기가 생생히 담긴 '도쿄에서의 김학순 할머니 증언 영상'이 30년 만에 공개된다.
김학순 할머니가 가해국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가해 국민에게서 열띤 반응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 할머니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오키나와에서 체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말해야만 했던 배봉기 할머니. 배봉기 할머니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김현옥 씨와 배봉기 할머니를 취재했던 작가 가와다 후미코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00년 12월 도쿄 구단회관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에 대해 열린 국제법정이 열렸다. 남한과 북한, 일본 그리고 국제 사회까지 공조하여 히로히토 일본 국왕에게 일본군의 강간과 성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민간법정이었기에 법적 강제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국제연대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법정에 올리고 전시 하에서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단죄할 필요성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21년이 흘렀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은 아직도 앞으로 많이 나아가지 못한 듯하다. '위안부 운동 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심지어 위안부의 역사적 진위 논쟁까지 다시 살아나고 있는 상황.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잊을 건 잊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지금.
30년 전 시대의 금기에 맞서서 인권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 피해자와 운동가들이 보여줬던 불굴의 용기를 다시 소환하여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해 얘기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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