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지난 5월 29일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되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른바 ‘은진수 쓰나미’에 정·관·재계는 패닉상태에 빠져들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한때 강직함의 상징이었던 ‘모래시계 검사’에서 일순간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은 전 위원의 롤러코스터 인생을 들여다봤다.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난 은 전 위원은 부산상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이미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이후 행정고시(34회)와 사법고시(30회)에 잇달아 합격하면서 출세가도에 들어섰다. 1991년 부산지법 판사로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으나 1년 만에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경제분야 범죄를 전문적으로 파고들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사 은진수’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김영삼 정부 초기 초대형 권력형 비리인 ‘슬롯머신 사건’ 수사에서였다. 그는 김홍일(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홍준표(현 한나라당 의원), 정선태(현 법제처장) 검사 등이 소속된 슬롯머신 수사팀에 막내 검사로 참여했는데 당시 수사팀은 슬롯머신업계의 대부인 정덕진 씨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정·관계 유력인사 14명을 줄줄이 구속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특히 은 전 위원은 정덕진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이건개 전 고등검사장을 거침없이 구속시켜 주목을 받았다. 위계서열이 엄격한 법조계에서 뇌물을 받은 대선배를 구속시킨 그는 정의감에 불타는 혈기왕성한 젊은 검사였다. 당시의 슬롯머신 사건 수사는 이후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됐으며 수사팀 검사들은 일명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후 은 전 위원은 창원지검 통영지청, 수원지검 성남지청, 전주지검, 서울지검 동부지청 등에서 검사로 근무하며 사회악과 맞섰다. 특히 성남지청 검사로 재직시에는 성남·광주·하남지역의 공직비리에 칼을 대기도 했다. 입이 무겁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그는 검찰 내부는 물론 기자들에게도 평판이 상당히 좋았다.
그의 강직한 성격은 2000년 7월 서울지검 동부지청 근무 시절 그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9년차 검사였던 은 전 위원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제언’이라는 글을 검찰내부 통신망에 올려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여당 정치인 비리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정치인 비리 수사에 대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당시 한 국회의원의 뇌물 사건을 예로 들며 “뇌물을 준 사람은 구속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반면, 돈을 받은 의원은 불구속기소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을 구속할 때 법무장관의 사전승인을 받게 한 법무부 예규는 검찰청법에 위배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저해하므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상명하복이 원칙인 검찰 내부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은 전 위원은 1년 6개월 만에 동부지청에 돌연 사표를 냈다. 집안문제라고 밝혔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 때문에 사퇴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2001년 검사직을 그만둔 그는 한나라당 서울 강서을 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3년 10월 한나라당 수석 부대변인이 된 그는 2003년~2004년 ‘한나라당의 입’으로 활동하며 당시 대여 공격에 앞장섰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그는 서울 강서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6년 12월에는 제이유그룹으로부터 수억 원대 불법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허위 보도로 인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재기의 기회는 찾아왔다. 은 전 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였을 당시 법률지원단장과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팀장을 맡아 ‘BBK 의혹’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여러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들에게 그는 “‘이명박 특검’에서 더 나올 게 없다. 검찰이 완벽하게, 너무도 철저하게 수사했다”고 못을 박았다. 이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던 BBK 의혹과 관련된 공세를 완벽히 막아낸 그는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 그는 BBK 소방수로서의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법무행정분과 상임자문위원으로 기용됐다.
현 정부 실세로 부상한 은 전 위원은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4월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서울 강동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를 만든 힘’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예비후보 명함까지 만들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김충환 의원과의 내부 경쟁에서 패하고 만다.
이때만 해도 그는 ‘클린정치’를 갈망한 ‘정치신인’이었다. 은 전 위원은 도덕성을 강조하며 한나라당의 쇄신을 주장했고, ‘독설’도 아끼지 않는 등 소신을 펼치기도 했다. 친박계와 친이계 간의 공천갈등으로 시끄럽던 한나라당을 두고 그는 “공천의 제1 기준은 도덕성으로 문제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친박이든 친이든 도덕성에 문제가 있으냐 없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도와줬다고 해서 지저분한 사람이 공천받고 국회의원이 되면 국민이 좋아하겠느냐. 뭔가 비리가 많은 것 같은데 뭔가 많이 처먹은 것 같은데 쉽게 드러나지 않고 지역구를 도는 사람에게 공천을 주면 안된다는 원칙적인 합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은 전 위원은 “한나라당에는 소금역할을 하는 40대 지도자가 없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소금은 짜야 맛이 난다. 비토할 건 비토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하는데,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 하고… 나는 이런 한나라당이 건강하지 못한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이 끝난 후 7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대표를 뽑아야 하는데 기껏해야 나오는 이름들이 정몽준, 이재오, 박근혜인데 다 옛날 사람들이다”며 당 거물급들을 겨냥해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은 전 위원이 당초 부산 지역 출마를 검토하다 서울 강동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은 전 위원은 “너무 ‘따뜻한 곳’에 있으면 사람이 나태해지기 쉽다. 적당한 고민과 긴장이 필요하다. 앞으로 ‘수도권-40대-화이트칼라’의 마음을 잡지 못한다면 정치 지도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힘들더라도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는다는 의미에서 강동 지역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살리겠다는 야심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천을 받지 못했고, 여의도 입성의 꿈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2009년 2월 은 전 위원은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BBK 대책팀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코드 인사’ 논란이 제기됐지만 그는 명실공히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확실히 도장을 찍었고, 추후 ‘여의도 입성’이라는 그의 꿈도 점차 가시화되는 듯 보였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강직한 그의 성품을 들어 “소신을 지킨다면 참 괜찮은 정치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감사위원이 된 후부터 그에게는 미확인 루머와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감사위원 임명 직후 여권 핵심인사들과의 잦은 회동이 구설에 올랐으며 작년 저축은행 감사 때부터 검은 커넥션 루머가 돌았다. 또 지난해 야당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감사하는 주심위원 자리에 있던 그가 부실 감사를 했다며 사퇴를 촉구했지만 감사원은 보직 교체에 그쳤고, 청와대도 사실상 이를 묵인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은 전 위원의 비리가 국민을 격노케 하는 이유는 그가 범죄를 척결하는 검사였을 뿐 아니라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부패방지위원과 국가청렴위원으로도 활약한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회의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척결하는 자리를 거쳤던 그가 이제는 ‘심판’을 받는 처지가 된 셈이다.
한솥밥을 먹었던 선배들과의 기구한 인연도 새삼 화제다. 18년 전 슬롯머신 수사팀에서 활동했던 김홍일 중수부장은 당시 팀의 막내이자 아끼는 후배를 수사해야 하는 처지가 됐고, 당시 주임검사였던 홍준표 의원은 ‘대의멸친’(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죽인다)이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강직과 청렴의 상징인 감사위원의 비리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은 전 위원이 부산저축은행 비리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신을 임명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깔끔하게 물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판에서의 야무진 각오를 피력하며 화려하게 부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은 전 위원은 2003년 <정치야, 맞짱 한번 뜨자! 소신검사 은진수 정치 입문기>를 펴냄으로써 ‘정치인 은진수’로서의 용트림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여의도 입성을 노리던 그의 꿈은 물방울 다이아몬드와 수 억 원대의 금품 수수 의혹으로 인해 이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관보에 따르면 은 전 위원은 지난해 기준 51억 6816만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학창 시절 헌책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감사원 고위 간부 중 최고 자산가로 이름을 올렸다. 화려한 스펙에 더해 그 정도의 자산을 가진 그가 고작 수억 원의 뇌물에 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한순간의 유혹이 결국 자신의 사회생명과 정치생명의 발목을 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마음의 짐’이 버거웠나
기자는 최근 서울 ○○동에 소재한 법당에 다니는 한 신도로부터 은 전 위원이 지난 겨울 법당을 찾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지친 표정이 역력한 모습으로 와서 유명한 법사로부터 보왕삼매경을 공부했다는 것이었다. 이 신도는 “당시 120명가량이 늦은 저녁에 모여 보왕삼매경을 공부했다. 이름이 특이한 데다가 말쑥한 외모가 유독 눈에 띄었다. 이번에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그 사람이 은진수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은 전 위원은 천주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법당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보왕삼매경은 마음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지침을 담고 있는 글이다. 세상사에 지친 이들, 걱정 근심으로 고통받는 이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이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자식걱정을 비롯해 갖은 인생고에 허덕여 법당을 찾은 이들 사이에서 은 전 위원은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은 전 위원이 뜬금없이 보왕삼매경 강의를 들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로 짐작해볼 때 그는 이때부터 상당히 불안해했으며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가 금품수수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으며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오는 것을 느끼고 좌불안석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앞으로 벌어질 사태들을 알고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더욱이 은 전 위원이 법당을 찾았을 때는 부산저축은행 감사 발표를 앞두고 있었던 때였다. 당시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이 지난해 5월 금감원 간부를 통해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 대한 감사원 감사 내용을 입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감사원이 공식적으로 감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올 3월이다.
은 전 위원이 감사원의 감사 정보를 사전에 유출하고 감사결과 발표 시기를 늦추는 데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도 받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그가 엄청난 심적 부담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이때는 2개의 통장에 들어있던 5000만 원을 인출한 뒤 다시 이를 손녀 두 명의 이름으로 명의를 변경해 재예치해둔 무렵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공부를 마친 후 한결 밝아진 표정을 보였다고 한다. “마음이 더없이 무겁고 괴로웠는데 보왕삼매경을 공부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