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불신’ 이준석-윤석열 갈등에 원희룡까지 참전…선관위원장 누가 맡느냐가 관건
#개전에서 휴전까지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준비했고, 이준석 대표가 여름휴가를 떠난 8월 9일 토론회가 공식화된 일정으로 언론에 뜨기 시작했다. 8월 18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후보들이 참여하는 정책토론회를 열겠다는 계획이었다. “부동산과 사회 분야를 주제로 한 토론회로 현 정부 실정을 부각하면서 주자들의 정책 역량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하지만 이내 포성이 울렸다. 각종 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예비후보 측은 토론회가 공식화되자 즉각 발끈하고 나섰다. 윤 후보 측은 “과거에 경준위가 그런 토론회를 개최한 전례가 없고, 후보 등록도 안 한 상태에서 10명 넘는 주자가 한 자리에 모여 토론회를 하는 것은 형식상으로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대표와 날을 세우면서 ‘유력 후보 보호론’을 지속적으로 펴온 김재원 최고위원도 윤 후보 측 입장을 거드는 모양새를 나타냈다. 그는 라디오방송과 SNS 등을 통해 “토론회를 포함한 경선 프로그램은 당 선관위가 정해야 한다. 대선 후보에 관한 사안은 최고위 의결로 정한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경준위 자체 계획으로 실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준석 대표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주장에 대해 “최고위에서 경준위는 당헌·당규 변경이 필요한 사안 이외의 모든 경선 과정을 정하도록 의결했다”고 반박하자, 김 최고위원은 다시 “경준위 역할인 경선 기획안에 토론회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재반박했다. ‘이준석 당대표·경준위 대 윤석열 후보·일부 최고위원’이 맞붙은 전선에 원희룡 예비후보까지 윤 후보 측에 가담하면서 참전, 갈등은 당 구성원들 간 전면전으로 확전됐다.
원희룡 후보는 토론회를 두고 “경준위의 독단적 결정”이라며 이 대표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원 후보는 8월 13일 SNS에 글을 올려 “이 대표는 당대표 선거 성공의 기억과 권력에 도취해있다”며 “자신의 성공 기억을 절대화해 손바닥 위에 대선 후보들을 올려놓고 자신이 기획 연출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려 한다”고 맹공했다.
친윤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재선급 의원 16명도 전선에 투입됐다. 이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는 대선주자 모두가 공감하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경선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이 대표와 경준위가 주도하는 토론회에 반발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 대표는 전면 부인했지만 8월 15일 또 다른 전투가 벌어졌다. 이 대표가 윤 후보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녹취했고, 실무진에 녹취록을 작성하도록 했다가 유출됐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윤 후보는 8월 15일 기자들에게 “국민의힘부터 먼저 공정과 상식으로 단단하게 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 윤 후보가 이 의혹을 사실로 전제하고 이 대표를 ‘불공정과 비상식’이라 우회 비판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8월 16일 통합을 추진하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마저 독자행보를 전격 선언하자, 사면초가에 빠진 이 대표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8월 17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18일 대선주자 토론회를 취소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8월 25일 예정됐던 토론회 역시 비전발표회로 대체해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최고위에서 이 대표는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노출하면서 모두발언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국민의힘이 내전이 봉합에 접어드나 했지만 바로 그날 새 국면을 맞았다. 이 대표가 8월 10일 원희룡 후보와 통화에서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전선의 포문이 다시 열렸다. 이 대표는 원 후보와 당내 불협화음 문제에 관해 얘기하던 중 “저거 곧 정리됩니다”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로서 윤 후보의 지속성이 곧 소멸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였다는 원 후보는 “불공정의 시비와 회오리 속에 당대표가 있어서 너무 위험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이 대표는 한밤중에 SNS를 통해 녹취록 일부까지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녹음 파일 전체를 공개하라”는 원 후보의 요구는 거절했다. 그러자 원 지사가 8월 18일 “녹음파일을 공개 안 한 이 대표가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짓고, 이 대표는 원 후보에 대해 추가적인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단 8월의 국민의힘 내전은 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마구잡이 전화 녹취를 따는 이 대표 행태에 대한 지적에다 당대표가 앞장서 내부 혼란까지 부추긴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언론도 국민의힘을 향해 “정권 탈환 포기했나”라는 야유를 날리면서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왜 이리 격분할까
정치권에서는 당의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졌다고 본다. 우선 당권을 쥐고 있는 이준석 대표 측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여러 행태를 목도했을 때 대선 관리 주도권뿐만 아니라 대표 권한에 대한 근본적 위협을 체감, 윤 후보에 대한 집중견제가 필요하다는 경계의식이 발동한 것으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공격적 방어를 위해 토론회 정국을 만들어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윤 후보는 입당 때부터 이 대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에 전격적으로 들어온 7월 30일 입당 원서를 받은 상대는 이준석 대표가 아닌 권영세 대외협력위원장이었다. 이 대표는 이날 호남 방문으로 당 대표실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언론은 이를 두고 ‘기습 입당’ ‘빈집 입당’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대표를 패싱했다는 의미였다.
윤 후보 측은 “이 대표 일정을 몰랐다”고 했지만, 정치권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윤 후보 입당을 계속 압박하고 때로는 거세게 비판하던 이 대표를 두고 윤 후보 본인 혹은 주위의 불편한 심기가 작용했기에 이 대표 패싱이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8월 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형식에 있어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다. 원래 8월 2일 입당하는 것으로 사전 양해가 있었고 중간에 정보가 유출됐다고 해서 일정을 급하게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랬더라도 저와 다시 상의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를 비롯한 일부 대선주자들이 봉사활동 등 당 주최 행사에 잇따라 불참하면서, 이 대표의 윤 후보에 대한 불만이 겹겹이 쌓여갔다는 후문이다.
이 대표는 8월 6일 SNS에 ‘윤 후보 측 핵심 인사가 다른 주자에게까지 봉사활동 보이콧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언론보도를 소개하며 “이건 갈수록 태산”이라고 적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러고서 나온 게 ‘후쿠시마 발언’”이라며 사실상 조롱했다. 윤 후보는 봉사활동이 있던 날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 대표를 관찰해온 윤 후보 측은 토론회 개최를 이 대표의 공격적 방어가 아니라 상대하기 버거운 ‘1위’ 윤 후보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켜놓으려는 정면 공격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8월에 계획됐던 토론회는 맛보기였을 뿐 향후 경준위를 동원하거나 곧 출범할 선관위도 서병수 전 경준위원장을 선관위원장으로 앉히는 방법으로 이 대표가 경선 전반을 장악, 수십 차례의 융단폭격식 압박 면접을 기획할 계산이라는 것이다.
이 모두가 정상적 경선 검증이 아니라 윤 후보 면박주기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상당수 윤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특히 윤 후보 측은 이 대표가 직접 나서는 토론회도 비일비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책 검증이 아닌 상대를 주눅 들게 하려는 이 대표 특유의 앞뒤 가리지 않는 속사포성 거친 질문이 동반돼, 윤석열이라는 특정 주자를 겨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는다.
이러한 윤 후보 측 의심은 뒤늦게 불거진 이준석 대표의 유튜브 방송 발언과도 맞닿아있다. 지난 3월 ‘매일신문 프레스18’ 유튜브 방송에서 이 대표가 했다는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 되면 지구를 떠야지”라는 언급이 윤 후보에 대한 이 대표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휴전인가, 종전인가
이준석 대표가 절대 물러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국민의힘 내부 갈등이 종전으로 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국민의힘 의원들의 한목소리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전 상황을 일시적 휴전이 아닌 적어도 휴전 협정으로까지는 연결지어야 한다는 것이 일치된 의견이다.
휴전 협정의 단초는 ‘경선 심판’을 맡을 선거관리위원장 인선(8월 26일 선관위 출범)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개최를 관철하지 못해 지도력에 타격을 입은 이 대표는 자신의 의중대로 선관위원장 인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대선주자들과 당 상당수 지도부도 중립성을 갖춘 인사가 ‘심판’을 맡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대표는 당내 반발이 심한 서병수 전 경준위원장의 선관위원장 발탁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 전 위원장은 8월 20일 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 “선관위원장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8월 17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관위원장) 지명권은 대표에, 추인 권한은 최고위에 있다”며 “어떤 후보든 (선관위원장 인선과 관련한) 의견을 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당대표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궁지에 몰려 있는 이 대표가 역선택을 하면서 수세 국면을 탈출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립 성향 선관위원장을 추대, 휴전 국면을 통해 숨을 좀 돌릴 심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나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황식 정홍원 전 국무총리, 황우여 정병국 의원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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