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 취소 불발에 노골적 불만 표시…강경파 김영철 등장에 ‘도발 가능성’까지 솔솔
7월 27일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은 2주 만에 ‘불통’의 길로 접어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의 시작이었다. 북한 입장에선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에 따른 후속조치로 한미연합훈련 연기 혹은 중단을 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북 소식통은 8월 19일 통화에서 “한미연합훈련 지연을 목적으로 한 유화책이 먹혀들지 않으면서 북한이 다시 ‘잠수 외교’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8월 10일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됐고, 이날 김여정이 담화문을 통해 ‘남조선 당국자’를 배신자로 몰았다”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든다면 그 책임은 한국 당국 측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소통의 문을 닫아버린 셈”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연기 혹은 취소를 이뤄내려 심혈을 기울였던 배경엔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면서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되면 북한도 돌발상황에 대비한 대응 기동 훈련을 해야 하는데, 북한 당국 입장에선 그 기동 훈련에 필요한 비용 마련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관련기사 [단독] 한미연합훈련 대응 비용 때문? 김정은 ‘태세전환’ 진짜 이유).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여정 담화문의 ‘배신적 처사’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소식통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배신적 처사를 했다는 김여정 말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면서 “남조선 당국자가 ‘배신자’라는 뜻인데, 배신자라는 말을 언제 쓰나. 같은 편이 신뢰를 저버렸을 때 쓰는 단어”라고 했다. 그는 “적에겐 배신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서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북한 지도부와 적잖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던 당국자를 직접 겨냥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복수 소식통은 최근 남북 통신연락선 복구 협상에 참여한 한국 정부 측 주체를 국정원으로 봤다. 정보기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7월 27일 정전협정일에 딱 맞춘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협상 전면에 나선 것은 통일부가 아닌 국정원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미연합훈련 연기 혹은 취소를 위한 포석으로 통신연락선 복원 협상을 진행했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박지원 국정원장을 이번 ‘배신적 처사’ 언급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조치는 북한이 박지원에게 당근을 내민 것인데, 박지원은 북한이 전제조건으로 내민 한미연합훈련 연기 및 취소라는 과제를 달성하지 못 한 그림이 됐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가 노골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북한 입장에서 박지원 국정원장이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고 판단할 시엔 차기 대선에서 여당이 ‘남북 평화 카드’를 쓰지 못 하게끔 압박할 가능성도 점쳐진다”면서 “북한이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소통을 거부해버리면 대선 정국에서도 여당의 ‘평화 강조’ 카드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게 된다. 북한은 이런 미세한 틈을 비집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8월 10일 김여정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강력한 논조로 비판을 쏟아낸 데 이어 8월 11엔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전면에 나섰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문을 발표한 김영철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 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위협의 말을 전했다.
김영철은 “북남관계 개선 기회를 제 손으로 날려 보내고 우리 선의에 적대 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해 똑바로 알게 해줘야 한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중단 없이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적대 행위란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 시작으로 풀이된다.
이어 김영철은 “(한국 측은) 평화와 신뢰라는 것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 보였다”면서 “기회를 앞에 놓고도 남조선 당국이 명백한 자기들의 선택을 온 세상에 알린 이상 우리도 이제는 그에 맞는 더 명백한 결심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긴장국면이 다시 연출된 데에 대한 책임을 한국 정부 측에 돌리는 발언이었다.
김영철은 북미관계 조율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인사다. 북한 인민군 대장 출신으로 군부 초강경파로 분류된다. 여기다 대미 강경책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각종 군사도발의 ‘기획자’로도 지목된 이다. ‘대남 압박용 소통 채널’ 김여정이 말문을 튼 뒤 김영철이 바통을 이어 받아 한국 정부 측에 위협의 말을 전한 셈이다. 이를 두고 북한 소식통과 전직 군 고위 관계자들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배신적 처사’에 따른 보복 시나리오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8월 16일 통화에서 “만약 북한이 군사 도발을 한다면 서해안과 서해 도서지역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오로지 국군만 존재하는 지역으로 미군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미국과 한국을 철저히 분리하면서 한국을 압박하는 용도로 도발할 수 있다”면서 “김영철이 전면으로 나왔다는 것이 결정적 징후”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측이 단독으로 관할하는 지역에 대한 기습적인 도발 가능성이 최근 들어 높아진 셈”이라고 경고했다.
서해 도서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직 군 장성은 “과거 연평도 포격도발처럼 민간인이 있는 도발을 감행할 만큼의 형국은 아니다”라면서 “만약 북한이 군사 도발을 직접적으로 감행한다면 목표 지역은 민간인이 없는 우도, 대청도, 말도 등을 예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의 북한 소식통은 “내·외부적으로 긴장감이 조성될 때면 북한은 언제나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서 “예전처럼 군사 도발에 나선다면 북한 입장에선 얻을 것이 많은 상황은 아니다”라고 바라봤다. 그는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강도 높은 ‘언어 압박’인데, 결국 긴장 국면을 위협으로 돌파하겠다는 심산”이라면서 “더불어 이런 행보는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내부적인 결속 강화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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