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LA 에인절스에서 방출된 정영일. 왼쪽 사진은 정영일이 팬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
5월 27일(한국시간) 미국 야구전문사이트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LA 에인절스가 잦은 부상으로 지난 5년간 33⅔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친 정영일을 방출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이트는 ‘지난해 싱글A에서 22⅔이닝 동안 볼넷이 22개나 됐다’며 정영일의 제구 문제를 거론했다. 제구 문제는 미국 구단이 유망주를 방출할 때 흔히 내세우는 이유다. 한마디로 성장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정영일은 광주 진흥고 3학년 때인 2006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경기고전에서 13⅔이닝 동안 국내 최다인 23개 탈삼진을 기록했던 초고교급 투수였다. 최고 구속 150㎞의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일품이었다. 당시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안산공고 김광현(SK), 서울고 임태훈, 장충고 이용찬(이상 두산)보다 정영일을 더 높게 평가했다.
그 해 KIA는 정영일을 1차 지명하려고 계약금 5억 원을 제시했다. KIA 창단 이래 2002년 김진우(7억 원)와 2006년 한기주(10억 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신인 계약금이었다. 하지만, 정영일은 한기주 수준의 10억 원을 요구했고, 협상은 결렬됐다. 당시 야구계는 “정영일이 무리한 욕심을 부린다”고 평했다. 하지만 정영일의 뒤에 메이저리그팀 LA 에인절스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에인절스는 정영일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100만 달러(약 10억 원)를 제시한 터였다. 결국, 정영일은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었다. 정영일은 미국에 가기 전 기자와 만나 “돈보다 꿈을 이루려고 메이저리그행을 택했다”며 “반드시 4, 5년 내 박찬호 선배처럼 훌륭한 투수로 성장해 빅리그행 티켓을 거머쥐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후, 그가 손에 쥔 건 빅리그행 티켓이 아니라 한국행 비행기 티켓이었다.
#정영일, “실패한 이유는…”
에인절스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은 정영일은 바로 짐을 꾸렸다.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뿌리쳤다. 정영일의 에이전트 이치훈 씨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정영일의 의지가 원체 강해 미국 구단의 영입 제안을 고사했다”고 밝혔다.
정영일은 귀국 후, 현재 광주 고향집에 머물고 있다. 틈틈이 모교인 광주 진흥고를 찾아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정영일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도전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야구를 직접 체험하고, 선진야구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시 미국야구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영일은 솔직하게 “미국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던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먼저 부상이다. 정영일은 고교시절 무쇠팔로 통했다. 그도 그럴 게 2006년 청룡기대회에서 5경기에 등판해 700여 개의 공을 던졌다. 특히나 13⅔이닝 동안 국내 고교 야구 최다인 23개의 삼진을 뽑아냈던 대통령배 경기고전에선 무려 242구를 던졌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정영일을 예로 들어 ‘고교 투수의 혹사는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정영일은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팔꿈치에 통증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고교 시절의 혹사가 원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시 팀 닥터 역시 “19세 투수의 팔꿈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인대가 상당히 훼손된 상태”라며 즉시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정영일은 참고 던졌다. ‘참으면 낫는다’는 고교 시절 지도자들의 말이 미국에서도 통하리라 믿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팔꿈치 인대는 더 손상됐고,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정영일은 수술 이후 재활까지 3년의 세월을 소비했다. 1년이면 마운드로 복귀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선수의 몸 상태가 완전해질 때까지 복귀를 만류한다.
정영일은 “3년 동안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해 방출되긴 했지만, 그 바람에 충분히 재활을 할 수 있었다”며 “방출 통보를 받기 일주일 전, 불펜투구에서 시속 151㎞를 기록할 만큼 지금의 몸 상태는 완벽하다”고 말했다.
정영일이 꼽은 두 번째 실패 원인은 문화 차이였다. 정영일은 고교 때까지 1:1 지도를 받았다. 투구기술은 물론이려니와 일상 생활도 지도자가 짜준 일정에 따라 움직였다.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숙소나 집에서 차려진 음식을 먹는데 익숙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하나부터 끝까지 자율이었다.
“마이너리그는 철저히 자율훈련이다. 코치는 원포인트 레슨만 할 뿐, 선수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쳐야 한다. 투구폼도 코치들이 간섭하는 법이 없다. 특히 단체 훈련이 따로 없어 오후 훈련은 선수가 알아서 해야 한다. 타율야구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에게 미국의 자율야구는 되레 무거운 짐이었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누가 옆에서 지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실패 원인은 미국 생활 부적응이었다. 정영일은 훈련이 끝나면 숙소에 틀어박혀 노트북을 통해 한국 드라마와 한국 프로야구를 봤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동료와 어울리는 게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재활 중이던 정영일은 늘 혼자였다. 외로움을 달래려 한국 프로야구를 보면 볼수록 미국 생활은 그만큼 더 힘들어졌다.
“김광현, 임태훈, 이용찬 등 동기들의 맹활약을 볼 때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싶어 한숨이 나왔다. 그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 동기들처럼 투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에인절스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고 한편으로 잘 됐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영일은 “후배들이 나처럼 꿈을 이루려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건 말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행을 선택하는 건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헐값 미국행 허와 실
1994년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LA 다저스와 계약한 박찬호(오릭스) 이후 지난해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김진영까지 해외 진출에 성공한 유망주는 총 48명이다. 1999년엔 김병현(라쿠텐), 송승준(롯데), 최희섭(KIA), 오철희, 권윤민, 서정민 등 무려 6명이 한꺼번에 미국행을 선택하며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 붐을 이뤘다.
그러나 200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한 동의대 정성기를 끝으로 유망주의 미국행은 끊겼다. 빅리그에서 성공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극소수였던 까닭이다. 실제로 48명의 도전자 가운데 두 시즌 이상 풀타임 메이저리그로 뛰고, 1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은 선수는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클리블랜드) 3명뿐이다. 대부분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은퇴하거나 한국 프로야구로 복귀했다.
하지만, 2009년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되자 해외 진출 붐이 다시 일었다. 그 해에만 13명의 고교 유망주가 한꺼번에 미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들의 미국행은 과거와 다른 양상이었다. 100만 달러 이상을 받고 미국행을 택했던 선배들과는 달리 13명은 예외 없이 80만 달러 이하의 계약금을 받았다.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한 배명고 강인균의 계약금은 10만 달러에 불과했다. 국내 구단의 모 스카우트는 “헐값 미국행은 결국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영일의 지적대로 많은 미국 진출 선수들이 부상과 문화 차이, 미국 생활 부적응으로 고생한다. 100만 달러 이하의 계약금을 받는다면 여기다 생활고까지 겹친다. 충분한 영양 섭취와 최상의 훈련 상태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행에 올랐던 한 선수는 계약금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 그러나 2년도 안 돼 돈이 바닥났다. 돈 관리를 하던 아버지가 아들이 힘겹게 번 돈을 탕진한 것이었다. 야구계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은 국내로 유턴한 모 선수는 생활고 때문에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다. 개인훈련은 고사하고, 일 때문에 경기에 빠진 적도 있다. 그 역시 “헐값으로 미국에 진출했다간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진출 막으려면
야구계는 유망주들의 미국행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이유가 있다. 프로야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과거 1차 지명 당시에는 지역 내 유망주한테 글러브나 용돈을 주는 식으로 이른바 ‘어장 관리’를 했다. 덕분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유망주를 낚아채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면드래프트제 시행 이후 연고지 선수 관리가 불필요해지며, 메이저리그 파상 공세가 시작됐다. 전면드래프트제가 유지되는 이상 유망주의 국외 진출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야구계 일각에선 “8개 구단이 유망주 스카우트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해 200억 원이 넘는 구단 운영비 가운데 스카우트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사이다. 2010년 신인들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구단당 평균 7억 원을 스카우트비로 썼다. 그해 대어급 신인이 적은 까닭도 있었지만, 많은 야구인은 전면드래프트 시행 이후 선수들의 계약금이 대폭 낮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반대로 유망주들의 미국행이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도 있다. 최희섭, 류제국의 미국행을 주선했던 에이전트 이치훈 씨는 “2009년 유망주 13명이 미국 땅을 밟았지만, 지난해엔 컵스에 입단한 김진영이 유일했다”며 “올해는 아예 미국 진출 유망주가 없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유는 뭘까.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망주들이 더는 메이저리그를 꿈의 무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제외되며 병역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줄어든 것도 한 이유다. 특히나 미국에서 실패해 한국으로 유턴 시 2년간 선수생활을 할 수 없도록 제재한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영일은 이 제재조항 때문에 입대를 준비 중이다. 어차피 국내 프로야구에서 2년간 뛰지 못할 바엔 병역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유망주들의 메이저리그행이 반드시 실패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김진영은 컵스로부터 ‘올해의 성실한 선수상’을 받았다. 개인 훈련에 충실하고,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 김진영을 구단이 높게 평가한 덕분이었다. 컵스는 2, 3년 내 김진영의 빅리그행을 자신하고 있다. 김진영의 부모는 아들의 계약금을 10원도 쓰지 않은 채 고스란히 통장에 보관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발 없는 말 멀리가니 ‘대략난감’
야구계 안팎에서 SK 김성근 감독의 재계약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 ‘설’이라고 하는 덴 이유가 있다.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발단은 이렇다. 6월 2일 모 스포츠전문지에선 ‘SK 김성근 감독 재계약 확정’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엔 ‘SK가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진출을 이끈 김 감독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해 결국 재계약으로 방향을 확정지었다’며 ‘역대 감독 최고 대우의 재계약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야구계 일부에선 ‘김 감독의 재계약이 확정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즌이 한창인 시점에서 감독 재계약을 발표하는 구단이 어디 있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구단 대부분이 시즌 종료 후, 감독 재계약 사실을 발표한다. 일종의 관행이다. 자칫 시즌 중 발표해 선수단에 혼란을 초래하거나, 감독이 나태해질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평소 SK는 김 감독의 재계약 여부와 관련해 함구로 일관하던 차였다. 이것을 SK와 김 감독의 결별 수순으로 이해한 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야구계엔 “지난해 SK그룹의 원로 실력자가 김 감독에게 ‘우리 함께 2선으로 후퇴해 후배 지도자를 육성하자’고 제의했다”며 “SK그룹에선 김 감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렇다면 사실은 무엇일까. SK 고위 관계자는 “김 감독과의 재계약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맞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시리즈 3회 우승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기엔 명분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단 차원의 고려일 뿐, 그룹으로부터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며 김 감독의 재계약에 아직 변수가 남아있음을 시사했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SK는 김 감독 재계약 확정설로 곤혹스러운 처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룹과 상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계약이 확정된 것처럼 알려졌기 때문이다. SK그룹의 모 임원은 “구단으로부터 정식보고를 받으면 그룹 차원에서 신중히 (재계약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며 “시즌 종료 시점에서 재계약 여부를 발표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