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지 않은 소시민 캐릭터 인간 차승원 녹아나…운동복 입어도 모델핏 “우월한 기럭지 덕”
“재난 상황 속에서 웃픈(웃기고 슬픈) 코미디를 계속 유발하죠. 저는 단순한 건 별로 안 좋아해요. 누아르가 됐든 뭐가 됐든 비틀어져 있는 상황이 좋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재난 상황이 아니라 제가 만든 만수라는 캐릭터가 이런 웃픈 상황을 계속 유발하는, 그런 게 참 좋더라고요.”
‘싱크홀’ 속 차승원이 연기한 만수는 소심하지 않은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 승태(남다름 분)와 단 둘이 살아가면서도 ‘쓰리잡’을 뛸 정도로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제 일이 아니더라도 괜히 선 넘어 참견하고 말 한 마디라도 더 얹으려고 하는 오지랖까지 갖췄다. 거주지인 빌라에 싱크홀의 전조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제일 먼저 주민들 앞에 나서서 입에 침이 마를 만큼 열변을 토할 정도로 현실적이기도 하다. 차승원의 말대로 마냥 코믹한 캐릭터라기보다는 그 속에 감춰진 서글픈 현실까지 합쳐지며 ‘웃픈 캐릭터’로서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만수라는 캐릭터에 딱 정해진 캐릭터 성보다는 ‘왠지 그 사람은 그럴 것 같아’ 이런 특징을 넣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할 것 같아라는 느낌 있잖아요. 오래도록 빌라에 월세로 살고, 직업은 또 세 개나 있고… 기본적으로 뭐라고 할까요, 모질다고 할까? 삶을 참 모질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싫은 소리도 하고 그렇지만 기본적으론 열심히 삶을 사는 사람이다. 만수는 딱 그 점을 부각시켰죠.”
그런 만수의 캐릭터에는 차승원이 군데군데 묻어 있다고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 차승원과의 차이점을 부각시켜 캐릭터를 만들어 왔다면, 조금씩 느리게 걷고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는 자신과 캐릭터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점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아무래도 제가 이제 나이가 좀 있잖아요. 연기라는 게 어떻게 보면 캐릭터와 저를 동떨어지게 보이도록 하는 건데, 저는 저 자신을 좀 많이 투영해서 연기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될 수 있으면 캐릭터를 ‘만드는 걸’ 걷어내고, ‘만들지 않은 걸’ 해보자 싶었어요. 그게 ‘싱크홀’에서의 만수로서 연기하는 데 중점을 둔 거라면 둔 거겠죠. 만수랑 저랑 요소요소가 좀 비슷한 점도 있어요. 싱크홀이 생기기 전 전조 증상, 벽이 막 갈라지고 그런 걸 보면서 만수가 막 두서없이 설명하잖아요. 그 모습이 진짜 저랑 비슷해요(웃음).”
삶에 치인 소시민의 모습을 연기한다지만 차승원은 차승원이었다. 싱크홀 속 흙더미를 뒤집어쓰고, 후줄근한 운동복 하나만 걸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보여주던 그에게 감탄하는 여성 팬들도 많았다고. 이 영광(?)을 의상과 헤어팀에게 겸손하게 돌리면서도 “나의 탁월한 신체 덕”이라는 너스레를 잃지 않는 것이 또 차승원의 매력이다.
“만수의 모습은 우리 의상팀하고 헤어팀이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들어 주셨죠. 의상팀장이 저랑 또 코드도 잘 맞거든요. 깨알 같은 설정인데, 영화 속 사진관에서 만수가 쓴 모자에 ‘설악산’ 이런 디테일이 살아있는 배지라든지, 신발도 그가 신을 법한 시그니처 신발을 아주 기가 막히게 설정해 줬어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어도 잘 어울리는 건 뭐, 탁월한 신체 덕. 그런 거죠(웃음). 오늘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또 하네. 절대로 (그런 아우라가) 그냥 나오지 않는 외모? 그런 게 있어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아우라가 흘러넘치는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지만 현장의 육체적인 고달픔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모든 배우들이 힘겨워했던 현장에서 몸을 쓰는 신이라면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익숙했을 차승원은 어땠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답변에 김지훈 감독에 대한 솔직한 원망이 살짝 섞여 들기도 했다.
“아, 고달팠죠(웃음). 성균이가 자기는 흙으로 얼굴을 덮으면 공포심이 너무 유발된다 그랬는데 실제로 흙을 얼굴에 덮어야 했어요. 광수는 우스갯소리로 그 진흙 속에서 개구리가 나왔다고 그러는데, 그건 거짓말이에요. 근데 나뭇가지는 나왔어요(웃음). 그 촬영 현장이 또 그렇게 소리를 많이 질러야 하는 현장이었거든요. 아휴, 내가 감독님한테 몇 번을 ‘소리 좀 그만 지를 수 없냐’고 그랬는데, 한 번도 목이 그냥 간 적이 없어. 싱크홀 속에 있는 장면을 찍을 때면 무슨 대사를 하더라도 다 소리를 쳐야 하니까 그런 게 좀 힘들었죠(웃음).”
고된 촬영을 넘어서 동료 배우들과 끈끈한 정을 나눈 차승원은 ‘싱크홀’을 통해 ‘집’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다고도 했다. 내 집이 갑작스런 재난에 휘말려 지하 500m 싱크홀 아래로 떨어진다는 설정,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가정과 가족애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최근 차승원에게는 새 식구가 생겼다. 반려견 두 마리가 가정에 더해지면서 차승원에게 있어 집과 가족은 그의 안에서 이전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제게 있어서 집은 가장 중요한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그 안에 살고 있고, 제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90% 이상이라고 봐요. 좋은 집이란 게 크고, 뭐가 가득하고, 그런 것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화목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요즘 생각하는 건데 ‘가화만사성’이란 말만큼 좋은 게 있나 싶어요. 아무도 없고 휑한데 펜트하우스 이런 데서 살면 뭐하겠어요. 가족들의 온기가 아주 훈훈한, 그런 집이 좋은 집이죠.”
가족들의 존재가 그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이전에 느꼈던 번 아웃(번 아웃 증후군, 정신적 탈진) 이후의 일이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힘들다거나 지쳤다는 등의 어두운 이야기를 공식 석상에서 거의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동료들도 알지 못했던 사정이었다. 다만 차승원은 이미 다 해결된 일이라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완전히 번 아웃 된 적이 몇 번 있어요. 뭐 때문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 드린 적은 없는데 그런 시점들이 종종 있었죠. 누구나 그런 위기에 봉착하는데 역시나 해결점은 시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가족들, 그런 것들이 참 위로가 되고 힘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저를 지탱하는 힘은 가족이고, 저를 지탱하는 뼈대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존감이에요. 자존감이 허물어지면 저는 아무 것도 못할 거니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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