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다양한 실험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개척자형과 기존 형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질서를 세우려는 연구자형이 그것이다.
개척자형 예술가는 시대를 이끌어나가기 때문에 당대에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무기는 ‘새로움’이다. 새롭다는 이유로 기존 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것까지도 용서받는다. 이에 비해 연구자형 예술가는 진부해 보이는 기존 형식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주목받기가 쉽지 않다.
서양 예술이 개척자형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면, 동양 예술은 연구자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따라서 서양 예술은 다양한 형식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화려한 발전(?)을 보여준 반면 동양 예술은 과거 형식을 반복하며 진부하게 정체(?)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대비는 서양미술이 인간의 이성을 따르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 다양한 이즘을 변증법적으로 발전시켜온 것에 비해 동양미술은 당·송시대에 확립된 산수화 형식을 중심으로 수 세기 동안 큰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이 된다.
대표적인 개척자형 예술가로는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독일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당대 유럽 최고 스타로 대접받았다. 반면 같은 시대를 살아간 요하네스 브람스는 낭만주의가 시대를 이끌던 시류에 눈 돌리지 않고 고전 양식을 바탕으로 작곡을 했기 때문에 신고전주의자로 불린 대표적인 연구자형 예술가다.
이들의 예술은 한 세기 반이 지나면서 인류의 평가를 받고 있다. 히틀러가 인류 최고 예술로 치켜세웠던 바그너 음악은 날이 갈수록 독일 외의 나라에서 연주 횟수가 줄어드는 데 비해 브람스의 음악은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가 다섯 명 안에 꼽힌다.
이처럼 장황하게 사설을 앞세운 것은 이번에 소개하는 김경희의 그림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나타나는 형식이 전통 채색화를 따르고, 재료나 기법 역시 전통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김경희의 작업 태도는 연구자형에 가깝다.
그는 전통 산수화나 화조화의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현대적 풍경이나 기물이 섞이는 혼성 채색화를 구사한다. 이런 형식에만 눈길을 준다면 전통을 바탕으로 조금의 위트를 조합하는 채색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경희는 전통의 형식을 연구해 회화의 본래 기능에 다가서려는 새로운 실험을 보여준다. 회화가 가진 치유의 의미를 구현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전통 채색화의 심도 있는 색채와 자연 친화적 소재로 행복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행복을 품어내는 채색화’라고 부른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