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 대한 판단미스, 안철수에 대한 과소평가…지도부와 후보 간 내홍 대여투쟁력 약화도
#상대에 대한 ‘오판’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비율이 정권연장보다 더 높다는 것은 여야 모두 인정하는 견해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8월 3일부터 5일까지 전국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권연장론은 39%, 정권교체론이 47%였다(여론조사 자세한 사안은 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아래 동일).
민주당이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직후엔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정권연장 응답자에 비해 21%포인트(p)나 높았다. 최근 국민의힘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권교체 희망비율이 재보선 때보다 확연히 떨어지긴 했지만, 정권교체론이 여전히 정권연장론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들이 내놓는 통계수치에, 형수 욕설·음주운전 경력 등 각종 구설이 많은 이재명 지사가 여당의 여론조사 지지율 1위 후보라는 점이 국민의힘에게 잘못된 신호를 쏴준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먼지털이식 검증이 본격화하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 보고, 정권연장을 실현시켜줄 강력한 후보로 바라보는 경계심이 약했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 지지율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맹추격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이재명 대세론은 점점 굳어가는 분위기다. 이재명 지사가 지난 6월 경기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당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와 ‘먹방’을 촬영한 것을 두고 큰 논란이 일었다. 이 지사가 8월 21일 사과까지 한 초대형 악재였는데도 불구, 이 지사 지지율은 고꾸라지기는커녕 더욱 탄탄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8월 20일부터 21일까지 실시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 이재명 지사는 전주보다 0.6%p 오른 26.8%를 기록했다.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8월 21~22일 이틀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27.7%를 나타내, 한 달 전보다 3.9%p 올라갔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 지지율은 좀처럼 10% 초중반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지사가 이미 과거 대통령들이 만들어냈던 ‘콘크리트 지지층’을 형성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지난 민주당 예비경선 당시 ‘바지 발언’ 때도 이 지사 지지율이 휘청거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그의 지지율은 꺾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재명 지사에 대한 분석, 과거 정권연장 사례에 대한 연구가 지극히 부족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권교체 분위기에 취해 이대로 가면 정권교체는 시간문제라는 자만이 당 내부를 온통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유권자들 머릿속에 있는 ‘정권교체’ 의미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정당과 정당 간 이뤄지는 고전적 의미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당 내부 리더십 형태의 변화 역시 정권교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최근 20여 년간의 한국 정치 조류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의 분석이다.
“민주당이나 우리 국민의힘이 정권연장을 했을 때 새로운 대통령은 직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 당선됐다. 민주당은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정권연장을 했지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인물이 바통을 이어받음으로써, 사실상 많은 유권자들이 정권교체 느낌을 가졌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넘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재명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이 지사가 집권하면 정권연장이지만 정권교체 분위기도 충분히 낼 수 있다. 이 지점을 분명히 경계해야 하고 국민의힘이 분위기를 잘 읽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공약 등에 대해 사탕발림이라며 비판은 하지만, 국민의힘 측에서 정작 유권자들이 솔깃할 만한 대안적 공약은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8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는데, 이는 이 지사가 지속해서 주장해온 사안이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회창 총재가 노무현 후보와 2002년 대선에서 맞붙었을 때 노 전 대통령의 실력을 아래로 보다 패했다. 국민의힘은 상대가 강하다는 전제를 깔고 대선 준비에 임해야 하는데, 지금 보면 이재명 지사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이 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제3지대에 대한 ‘오산’
적을 줄이고 동지를 늘려야 하는데 국민의힘 최근 행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통합후보’의 위력을 감지했는데도 ‘다 된 밥’이라 예상됐던 국민의당과의 합당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 저변에는 3석짜리 정당에 대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과소평가가 있었다.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당을 향해 내놨던 “소값 후하게 쳐드리겠다” “통합, 예스냐 노냐 답만 하라” 등의 조롱성 발언은 이런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준석 대표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힘을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여러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 대선후보 지지도는 2~5% 사이를 오가는 수준이다. 여당과 제1야당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중도 표심이 분명 존재한다는 결과로 읽힌다. 안 대표는 지난 2017년 대선에서 21.4%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제1야당 후보를 위협할 만한 지지도를 보였다.
안 대표가 제3지대에서 대선을 준비 중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손을 잡는 등의 형태로 세력을 키우면 국민의힘은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합당 결렬 이후 국민의힘에 여러 악재가 생기자 안 대표는 낯빛을 달리하고 비판의 화살을 국민의힘으로 날리고 있다. 거대 여당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 국민의힘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실제 안 대표는 국민의힘이 부동산 관련 법령 위반 의혹이 제기된 의원 12명 중 6명에 대해서만 제명 또는 탈당요구를 한 것과 관련, 8월 25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이준석 대표를 정조준했다. 그는 “무관용, 민주당보다 엄격한 기준을 공언했으나 읍참마속이 아니라 용두사미로 끝났다. 집권여당과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안 대표는 “이번 부동산 관련 의혹에 대한 대처를 바라보며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께서 4월 재보선에서 만들어준 야권 태풍이 벌써 찻잔 속에 빠져 맴도는 것 같다”고도 지적했다. 야권통합 결단을 내려줬던 자신을 국민의힘이 배신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1+1=2인데 국민의당과의 합당 협상에서는 1+1=1이라고 잘못된 계산을 한 것 같다. 합당 효과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더욱이 국민의힘이 줄곧 고압적 태도로 나가다 야권통합을 못했다는 책임론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크게 밑지는 장사를 하고 말았다”고 토로했다.
#고질병 ‘오만’
국민의힘은 8월 한 달 내내 싸우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8월 23일 당내 대선 경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내 분란 상황에 대해 공식 사과함으로써 내전 상황은 일단 휴전으로 가는 모양새지만, 당이 입은 상처는 컸다.
국민의힘이 벌인 내전의 가장 큰 원인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30대 당대표는 “나를 따르라”고 외쳤고, 일부 대선후보들은 “내가 왜 따르냐”로 응수했다. 일부 최고위원들도 당대표와 툭하면 겨루기에 나섰다. 특히 이 대표가 보수야권의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 측과 벌인 치열한 신경전은 정당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국민의힘이 내부 다툼에 몰두할 만큼 국회가 한가한 상황도 아니다. 여당이 밀어붙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제1야당으로서는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할 사안이었지만, 국민의힘은 집안싸움을 하느라 제대로 된 대여 투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더좋은세상으로(마포포럼)’는 8월 26일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힘의 최근 내홍에 대해 “당대표와 대권후보들, 최고위원들이 수준 낮은 공방을 벌이며 분열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참담한 심정”이라고 비판했다. 더좋은세상으로는 이준석 대표를 향해 “대권후보들을 향해 직접 언쟁을 벌이는 것을 중단하고 강경한 대여투쟁과 반문 야권후보 단일화에 온 힘을 쏟아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국민의힘 고질병인 구성원들의 오만은 국민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적 판단도 만들어냈다.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농지를 매입해 보유한 부친과 관련, 의원직 사퇴 카드를 꺼낸 윤희숙 의원에 대해 국민의힘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끼워맞추기식 조사 결과를 내놨다”며 윤 의원을 방어했다. 이준석 대표는 윤 의원의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장을 직접 찾아 의원직 사퇴를 눈물로 만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투기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져가자 국민의힘은 난감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준석 대표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윤희숙 의원 부친 땅 문제에 대한 당 차원의 대처가 미흡했고 의원직 사퇴도 돌발 상황이었다. 의원직 사퇴로 인해 더 큰 여론의 주목을 받아버렸고, 결과적으로는 대형 악재로 번져버렸다. 우리 당에 불리한 것이 터졌을 때 상대의 정치적 의도로 돌려버리는 프레임으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는데, 목소리를 높이면 여론이 따라올 것이라는 옛날 사고에 여전히 젖어있다”고 우려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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