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6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와 대전 시티즌의 러시앤캐시컵 2라운드에서 승부조작이 발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은 포항 스틸러스 홈페이지 동영상 캡처. |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봉이 적은 프로축구 2군 선수들과 은퇴를 앞둔 고참 선수들은 최근 좌불안석이다. 승부조작을 저지르는 선수들이 생활고와 은퇴 후 삶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지면서 애꿎은 선수들만 눈총을 받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승부조작 사건이 알려진 이틀 사이에 선수들 사이에선 수많은 이름들이 오르내렸다. 심지어 성실하다고 소문난 전직 국가대표 선수도 이 일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나돈다. 일이 이 지경까지 확대되다보니 선수들 사이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혹시, 저 선수도?’ ‘아니, 이 놈도?’ 하는 의혹의 눈초리들 때문에 훈련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정말 K리그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 같다.”
승부조작 파문이 일어난 다음날 지방에서 활약 중인 자신의 선수들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에이전트 A 씨는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선수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는 얘기들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경기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않거나 스트라이커가 ‘똥볼’을 찰 경우, 그리고 골키퍼가 다이빙을 늦게 해서 공을 놓쳤을 때는 같은 팀 선수도, 또 팬들도 그걸 승부조작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경기에 졌을 때는 팀 전체가 팬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얼마 전 지방팀에 있다 다른 팀으로 이적한 B 선수는 아는 기자를 통해 승부조작 사건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처음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라고 반문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그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 평소 씀씀이가 헤펐던 B는 카드 빚이 늘어나면서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렸고, 이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하자, 그 대부업체에서 B의 소속팀으로 찾아가 연봉을 차압하겠다고 난리를 폈던 것. 결국 사생활 문제와 실력 부진으로 트레이드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의 이런 개인 사정이 승부조작 시나리오로 이어진다는 얘기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에이전트 C 씨는 승부조작과 관련된 소문들이 지금은 선수를 벗어나 감독, 심지어 구단 관계자한테까지 번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줬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이젠 감독한테까지 번졌다. 내셔널리그의 아무개 감독이 연루가 됐다거나 구단 고위 관계자가 조직과 손을 잡고 승부조작을 벌였다는 황당한 얘기도 나돈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소문이 확대되는 걸 지켜보기만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검찰뿐만 아니라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나서야 한다. 3000여 개가 넘는 불법 도박 사이트가 어떻게 해서 단속에 걸리지 않고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권력을 이용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여러 개 개설하고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누구이고, 누구의 비호를 받고 있는지 파헤쳐야 한다.”
한 축구관계자는 “선수 출신 브로커가 생긴 건 선수들과의 원활한 접촉 때문이라고 한다”면서 “이젠 선수들이 아는 선배나 축구인들로부터 전화를 받거나 만나자는 제의를 받아도 일부러 피하거나 거절하는 일들이 빈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축구인들의 인간 관계가 점점 삭막해질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 프로축구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한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유벤투스 2부리그 강등당해
사실 스포츠 승부조작은 우리나라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승부조작과 얽힌 사례들이 다수 존재한다. 1~2골로 결정되는 종목 특성상, 승부조작은 역시 각국 프로축구리그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했다. 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승부조작 사례는 지난 2006년에 발각됐던 세리아A의 사례다. 당시 승부조작과 얽힌 구단만 명문 유벤투스와 AC밀란을 포함, 피오렌티나, 라치오 등 4팀이나 됐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 구단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33차례의 승부조작 경기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유벤투스는 챔피언 박탈 뒤 2부 리그로 강등됐고, 나머지 구단들도 승점 삭감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었다. 이외에도 남미 브라질리그에서 지난 2005년, 챔피언 코린티아스가 심판을 매수해 승부조작에 나서다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승부조작 사례는 존재한다. 축구만큼이나 불법 베팅의 타깃으로 자주 활용되는 것이 야구다. 메이저리그의 ‘피트 로즈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989년 당시 신시내티 감독이었던 피트 로즈는 자신이 직접 팀 경기에 베팅해 승부조작에 나서다 적발된 바 있다. 역대 최다안타(4256개)의 기록을 보유한 그는 당시 사건으로 여태껏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