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해군에 이어 육군에서도 한 부사관이 상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2차 피해에 시달렸다. 소속 군인을 보호해야 할 군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못해 폭력적이었다. 그동안 군사법원이 성범죄에 대해 내린 ‘솜방망이 판결’로 볼 때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건들도 적지 않았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5월 공군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된 뒤에도 군사법원의 관대한 처벌은 계속됐다. 일요신문은 앞으로 3회에 걸쳐 군대의 마초문화 속에서 군사법원이 지금껏 성범죄를 어떻게 단죄해 왔는지 살펴본다.[일요신문] 2021년 5월 공군의 이 아무개 중사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과 회유‧협박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거듭 고개를 숙였다.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군 내 성폭력 사건의 뿌리를 뽑으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석 달 뒤인 8월, 이번에는 해군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육군에서도 상관의 성추행과 스토킹에 시달리던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서 “고치겠다”고 했지만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은 이어졌다.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군은 이미 신뢰를 잃은 곳이었다. 군은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 했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은 피해자가 숨지자 다음날 국방부에 단순 변사 사건으로 보고했다. 육군 피해자의 담당 상담관은 증거자료 일부를 유실하기까지 했다. 해군 피해자는 성추행 발생 74일 만에 가해자와 분리됐다. 국민들에게 알려진 이 세 사건은 재판대에 오르지도 못 한 사건이다.
#대부분 집행유예와 벌금형
만약 이 사건들이 군사법원으로 넘어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러나 2021년 5월 이 중사의 사망 사건 이후에도 군사법원의 관대한 판단은 이어졌다. 일요신문이 6월부터 8월까지 군사법원이 선고한 성범죄 관련 판결문 69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2건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사건에는 벌금형과 집행유예 등이 선고됐다. 실제로 감옥살이를 하는 실형과 달리 수감생활을 미뤄주다가 일정 기간이 끝나면 이를 면제해주는 집행유예가 선고될 경우 폐쇄적인 군대 내에서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방부 군사법원 확정 판결문 열람 서비스에 따르면 6월부터 8월까지 전체 군사법원이 확정 판결을 내린 사건은 총 194건으로 이 가운데 69건이 성 관련 사건이었다. 전체 사건의 약 36%를 차지했다. 죄목은 미성년자의제강간‧유사강간‧군인등강제추행‧성매매알선‧불법촬영 등으로 다양했다.
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다. 각각 미성년자성매매알선과 특수강제추행 사건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 5월 공범 3명과 공모하여 정신지체를 가진 미성년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시키고 알선비용을 챙겼다. 보통군사법원은 “A 씨의 죄질이 매우 나빠 실형선고가 불가피하다”면서도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권고형 범위에서 가장 낮은 형량이었다. 군 검사가 형이 가볍다며 항소했으나 고등군사법원은 “부당하지 않다”며 기각했다.
또 해병대 소속 군인 3명이 공모하여 후임 1명을 강제 추행한 건에 대해서는 주범 1명에게만 특수강제추행 등으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주범이 피해자를 추행한 횟수는 134회이며 폭행은 70회에 달했다. 범행에 가담한 2명에게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이 2건이 지난 3개월 동안 실형이 선고된 유이한 사례다.
이 외 대부분의 사건에 대해서는 선고유예 1건을 포함해 집행유예가 17건, 9건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심지어 미성년자를 강간해도 집행유예를 받았다. 취재 결과, 고등군사법원은 7월 8일 14세의 미성년자를 강간한 병사 B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 씨는 채팅앱을 통해 피해자를 알게 됐으며 상대가 14세임을 알고도 교제 신청을 했다. 이후 한 모텔에 데려가 이틀에 걸쳐 유사강간과 강간을 했다. B 씨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성기와 얼굴이 나온 나체 사진 4장, 강간 직후에는 가슴이 나온 사진을 1장 촬영했다. 군사법원은 B 씨가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판시했다. 피해자는 성폭행 피해 이후 B 씨와 결별했다.
이후로도 범행은 계속됐다. B 씨는 피해자의 사진을 동의 없이 “이게 강제로 당해서 싫어하는 사람 얼굴인지 아닌지 잘 봐봐”라며 피해자의 친구(여‧14)에게 전송했다. 이 밖에도 평택시 소재의 한 역에서 탑승한 버스 내에서 불특정 여성 12명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도 받았다.
당초 원심은 B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인 고등군사법원은 피고인의 범죄전력과 피해자와의 합의 등을 이유로 “원심의 형이 다소 무겁다”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유사강간이나 강제추행 등의 사건 등이 이와 비슷하게 집행유예를 받았다.
설사 법원이 가해자에 대해 엄벌을 내렸다고 해도 알 길이 없었다. 성 관련 판결문 가운데 절반 이상의 열람이 제한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2월 1일부터 판결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군사법원 판결서 인터넷 통합열람·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본 결과, 상당수의 판결문이 비공개 처리돼 국방부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6월의 경우 성 관련 재판 27건 가운데 19건의 판결문이 비공개됐다. 7월에는 32건의 판결문 가운데 절반 이상인 18건이 열람 제한 대상이었다. 8월에도 10건의 확정 판결 가운데 4건이 비밀에 부쳐졌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성범죄 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열람 제한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면서도 “민간법원 판결문에 비해 (군사법원의) 비공개 판결문이 많아 보이긴 한다”고 말했다.
#군 성범죄 이제 민간에서 재판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7월에 실시한 군 사법개혁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평시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을 폐지하거나 비군사범죄를 민간 법원·수사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장성을 제외한 일반 군인들과 시민 사이에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군사법원법 개정 논의에 영향을 미칠까봐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의혹을 제기한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국방부와 민관군합동위원회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놓고도 국방부가 희망하는 ‘평시 군사법원 및 군수사기관 존치’ 결론이 나오지 않아서 시민들에게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후퇴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국방부와 민관군합동위에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앞으로는 군에서 성범죄나 군인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1심부터 군 검찰이나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수사와 재판을 담당할 전망이다. 최근 군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군 검찰과 법원에 대한 불신도 팽배해진 탓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8월 24일 ‘군내 성범죄와 구타·가혹행위 등에 따른 군인 사망사건 관련 범죄’, ‘군인이 입대 전 저지른 범죄’ 등에 대해선 1심부터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이 관할토록 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해당 개정안은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국무회의 상정 및 법안 공포 등 절차를 거쳐 2022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