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캠프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 하다가 경선 끝난 11월 대선판 휘저을 듯
마지막 '킹메이커 대전'의 막이 올랐다. 차기 대선판을 진두지휘할 두 백전노장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33년 악연(관련기사 킹메이커로 마지막 승부…이해찬-김종인 ‘30년 질긴 인연’)이 대선판에 또 소환된 셈이다. 하지만 같은 듯 다르다. 이해찬 전 대표가 그립이 강한 ‘상왕 스타일’이라면, ‘츤데레(상대에게 애정은 있지만 겉으론 쌀쌀맞게 행동하는 성격을 일컫는 말)’ 김종인 전 위원장은 훈수를 두다가 전격 등판하는 구원투수에 가깝다. 마지막 승부에서 승리할 킹메이커는 누구일까.
‘이해찬의 힘과 김종인의 노련미….’
대선 정국에서 드러난 두 킹메이커에 대한 평가는 이 한 줄로 요약된다. 이 전 대표 위상은 이른바 ‘황교익 인사 사태’가 일단락된 8월 정국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8월 여권 경선 최대 이슈는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대선 예비후보 측의 갈등이었다. 특히 이 후보 측 신경민 전 의원이 8월 17일 한 라디오에서 황 씨를 향해 “일본 도쿄나 오사카관광공사에 맞을 분”이라고 친일 프레임을 덧씌우면서 양측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황 씨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낙연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데 집중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비주류인 송영길 민주당 대표조차 “금도를 벗어난 과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 측에 합류한 친문(친문재인)계는 부글부글 끓었다. 내부에선 “이쯤 되면 막 나가는 것”이란 날 선 반응이 쏟아졌다. 대선주자들도 “자신의 임명권자를 욕보이는 일(정세균)”, “섬뜩한 표현으로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박용진)” 등의 비판을 앞세워 이 지사에게 임명 철회를 압박했다.
이때 나선 이는 친노(친노무현) 좌장인 이 전 대표였다. 그는 8월 19일 황 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너그럽게 마음을 풀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앞으로도 늘 함께해 주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이낙연 정치생명’까지 거론했던 황 씨는 다음 날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직접 언급을 삼가던 이낙연 후보도 “캠프의 책임 있는 분이 친일 문제를 거론한 것은 지나쳤다”고 한발 물러섰다. 여권 내부에선 “이해찬 전 대표가 이 지사와 황 씨 등 퇴로를 열어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황교익 프레임’에 갇혔던 두 인사를 전화 한 통으로 정리하면서 극한 갈등을 잦아들게 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정치 원로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게 한 사건”이라며 “확실히 승부사 기질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이 전 대표가 당 갈등을 봉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6월 친문계를 중심으로 대선 경선 연기론이 부상했을 당시에도 이 전 대표는 막후에서 당내 자중지란을 막는 데 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패색이 짙던 4·7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도 막판 등판, 판을 흔들었다.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덧씌워진 ‘MB(이명박 전 대통령) 키즈’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자의 ‘10만 원 상당 디지털 재난위로금’은 그의 작품이다. 반이재명 전선을 흔든 명·추(이재명·추미애) 연대의 밑 작업도 이 전 대표가 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민주당 복수 관계자들은 “이 전 대표가 이 지사를 돕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친문 상왕이 아닌 친명(친이재명) 상왕”이라고 했다.
‘승부사 김종인’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전 위원장은 범보수진영 ‘대권 후보 감별사’ 역할을 자처했다. 한동안 ‘별의 순간’을 언급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깎아내린 김 전 위원장은 7월 말 자신이 구상한 야권판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나와 무관하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비대위 시절 당직을 맡았던 이들을 대거 윤석열 캠프로 보냈다. 대변인과 상근 정무보좌역을 각각 맡은 김병민 전 비대위원, 윤희석 전 대변인, 함경우 경기 광주갑 당협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윤석열·김종인’ 교감설이 흘러나왔다. 김병민 대변인도 이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이) 극구 반대했다면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의 ‘윤석열 도구론’이 대선판에 튀어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윤 전 총장이 정치 입문 이후 연이은 ‘1일 1실수’로 아마추어 행보를 하자, 보다 못한 김 전 위원장이 ‘정권교체만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막후 지휘자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구상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보다는 민주정부 4기만은 막자’에 가깝다는 게 야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윤 전 총장은 다음 날 서울 광화문의 김 전 위원장 사무실을 찾아 비공개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은 대선 행보 관련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역할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내 갈등에 대해서도 시그널을 보냈다. 다만 이해찬 전 대표보다 당과 거리를 둔 만큼, 직접적인 중재보다는 ‘훈수 정치’에 가까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의 녹취록 공방에선 “며칠 사이에 진정될 것”이라고 확전을 경계했다. 이준석 대표의 ‘대선 5% 패배’ 발언에 대해선 “큰 실수”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김 전 위원장은 앞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열세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단일화 판세를 뒤집은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야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 전 위원장은 막판까지 3자 승리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는 ‘국민의힘 자강론’이 힘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야권 단일화판을 좌지우지하면서 안 대표와의 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관전 포인트는 이들의 등판 시기다. 여야 캠프 관계자들 전망을 종합하면,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시기는 여야 대선 후보 선출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나 김 전 위원장의 조기 등판 가능성은 낮다. 김 전 위원장도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조기 등판론에 대해 “관심이 없다”며 일축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최종 후보는 10월 10일(결선투표가 없을 경우)과 11월 9일에 각각 선출한다. 현재로선 ‘11월 대전’이 유력한 셈이다.
두 킹메이커는 그전까지 이재명·윤석열 캠프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야 대선 경선이 ‘이재명 vs 윤석열’ 구도가 아닐 때도 이들이 직접 나설지는 미지수다. 다만 여야 캠프 관계자들은 “민주정부 4기를 원하는 여당과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야당 모두 두 책사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11월 정국에선 ‘이해찬 vs 김종인’ 전쟁이 대선판을 휘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명 지사가 여당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면, 이해찬 전 대표 공간은 한층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막후 지휘자에서 여당 대선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감독 역할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권에선 이 전 대표가 사실상 이재명 캠프를 장악했다는 보는 시각이 많다. 이재명 캠프 핵심 민주평화광장도 이 전 대표의 조직인 광장에서 따왔다. 조정식 의원을 비롯해 우원식 의원 등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도 이재명 캠프에 합류해 있다. 대선 정국에서 ‘이해찬 역할론’이 부상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야권에선 김종인 역할론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국민의힘에 지분이 없는 김종인 전 위원장은 친박(친박근혜)도 친이(친이명박)도 아니다. 여의도 문법인 특정 계파의 강한 그립을 통해 조직을 좌지우지하지도 않는다. 정치인과 거리가 먼 ‘츤데레 스타일’에 가깝다. 야권 한 관계자는 “김종인 역할론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김재원 국민의힘 의원은 “당에 어른이 필요하다”며 김종인 전 위원장을 치켜세웠다. 이른바 ‘윤석열·이준석’ 갈등 과정에서도 김 전 위원장은 완충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제1야당이 위기에 빠지면 빠질수록 김 전 위원장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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