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룡산에 위치한 작은 암자 ‘심우정사’. 이곳에 기거하는 비구니스님은 소나무 한 그루를 베었다가 계룡산국립공원관리소 측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
과연 계룡산 내 작은 암자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동학사의 말사(동학사에 부속된 절이나 암자)로 계룡산 삼불봉(775m) 자락 해발 600m에 위치한 심우정사와의 첫 대면은 허탈했다. 아무리 깊은 산속의 작은 암자라지만 그 모습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다. 건물이라곤 불상을 모신 인법당 한 채와 채소를 기르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전부였다. 언뜻 보기에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심우정사를 7년째 지키고 있는 법수스님은 “공부하는 스님에게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스님은 “웃자란 나뭇가지들이 건물을 덮칠까 걱정이다”며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소나무를 베어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심우정사에 오기 전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었던 스님은 2004년 겨울에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처음 스님이 이곳에 왔을 때 암자 주변에는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스님은 동학사와 공원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여러 차례 심우정사의 환경정비와 보수를 요청했지만 보수를 하려면 헬기를 동원하는 등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동학사 주지스님을 찾아간 자리에서는 “산이 무너지면 어떠냐. 심우정사 부셔버린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스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동학사 측의 입장을 듣고자 직접 방문했지만 동학사 측은 “심우정사와 동학사는 상관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스님은 보수비용 문제로 동학사에서 사실상 심우정사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동학사 스님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전했다. 그렇게 주변의 무관심 속에 결국 암자 옆 소나무가 문제가 됐다. 절벽으로부터 45도 방향으로 뻗은 소나무는 무게가 늘어나 뿌리가 나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계곡 쪽으로 쓰러져 가고 있었다. 나무가 쓰러질 경우 계곡을 횡으로 질러 지나가는 전선과 급수관을 손상시킬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또 나무 아래의 화장실 건물도 피해범위에 있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나무가 쓰러진다면 나의 생존은 물론 전기사고로 인한 화재위험이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처럼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스님은 관리사무소에 이런 내용을 수차례 알렸고, 그 결과 2008년 3월경 당시 최 아무개 자원보전팀장이 암자를 찾았다고 한다. 스님은 최 팀장이 나무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자체적으로 소나무를 처리하라는 구두 언질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후 2009년 12월경 암자를 찾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소나무를 베어냈다고 스님은 전했다.
그런데도 2010년 1월 1일 공원관리사무소는 법수스님을 무단으로 소나무를 벤 혐의(자연공원법위반)로 공주경찰서에 고발을 했다. 같은해 3월에는 공주경찰서에서 고발건에 대해 경찰서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며 총 세 차례 출석요구서를 스님 앞으로 보내왔다. 그러나 스님은 출석요구서에 의구심을 내비쳤다.
3월 25일까지 출석을 요구한 제1호 출석요구서는 출석요구일보다 하루가 지난 26일자 우편소인이 찍혀 있었고, 3월 26일까지 출석을 요구한 제2호 출석요구서도 26일자 우편 소인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스님은 경찰이 애초부터 출석이 불가능한 날짜에 우편물을 보낸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오 아무개 경사(현 충남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가까운 거리라 그렇게 보내졌나보다. 오래 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경찰조사 후 사건은 검찰로 이첩됐고, 검찰은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후 2011년 2월 충남 공주의 반포파출소 소속 사복경찰관 3명이 암자로 찾아왔다. 이들은 형 집행장을 보여주며 ‘벌금을 빨리 내라’며 메모지에 검찰청 가상계좌를 적어주고 갔다고 스님은 전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07년 7월부터 검찰청 가상계좌로 벌과금 납부가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법수스님은 약식명령에 불복, 공주지방법원에 정식재판을 신청했다.
스님은 “임의로 사용하기 위해 소나무를 벤 게 아니다”며 “나무로 인한 생존과 안전의 위협이 없었다면 베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어 낸지 1년이 넘은 소나무 토막들은 베어낸 자리 옆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 스님은 “물론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동학사나 상원암 주변에는 방화선을 구축한다며 수십 그루의 나무를 베면서 왜 나무 한 그루를 벤 심우정사만 고발하느냐”며 “소나무의 위험성을 알릴 때마다 인력 부족 등을 핑계로 번번이 거절한 관리사무소에도 책임이 있는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