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 80% 이상 복제품, 관람객 평가는 극과 극…예술계 “원작자 허락 받지 않은 상업전시는 문제”
지난 8월 25일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더서울라이티움에서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다양했다. 누군가는 전시장에 와서야 복제품이 대부분인 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기에는 매우 좋다고 했다.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이자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전시회를 보러 온 관람객들의 평가다.
2016년 터키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세계 11개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오브 뱅크시’ 전시가 8월 20일 서울을 시작으로 아시아를 찾았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만 원. 2022년 2월 6일까지 열린다. 뱅크시는 1990년대 이후 갑자기 나타난 영국의 가명 미술가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특유의 날카로운 사회 풍자로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됐다. 특히 활동 이후 자신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어 비밀에 싸인 예술가 혹은 괴짜 예술가로 불리기도 한다.
논란은 이 전시에 걸린 작품 80% 이상이 뱅크시의 모작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물론 주최 측에서도 이번 전시에는 복제품이 포함되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뱅크시의 작품과 그의 세계관을 재현한 이 전시의 정식 명칭은 ‘아트 오브 뱅크시:위드아웃 리미츠(Art of Banksy:Without Limits)’다. 즉,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못한 전시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 걸린 150여 점의 작품 가운데 원본은 27점뿐이다. 나머지 90점의 인쇄본과 16점의 설치조각, 그리고 18점의 재현 벽화 등은 모두 복제품이다.
이처럼 모작을 중심으로 한 전시를 '레플리카(Replica)'라고 한다. 이런 전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원본 전체를 가져오기 힘든 거장의 경우 레플리카 전이 왕왕 개최되기도 하는 탓이다. 2020년 7월에는 경남 사천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레플리카 전이 열렸고, 2014년에는 예술의전당에서는 작품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로티시즘의 거장 에곤 실레의 복제품을 전시한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레플리카 명화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더욱이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해외 원작을 국내로 들여오기도 어려운 팬데믹(Pandemic·대유행) 시대에 레플리카 전시는 예술 문화를 즐기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업계에서 이번 전시는 “레플리카 전시로 부르기에도 애매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레플리카는 흔히 ‘복제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렇다고 아무나 임의로 재현한 것을 모두 레플리카라고 말하진 않는다.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동일한 재료, 방법, 기술을 가지고 동일한 모양과 크기로 원작을 재현해야 하며 작가 사후라면, 원작의 디지털 파일 라이선스를 구입해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레플리카로 인정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해석이다.
그런데 아트 오브 뱅크시 전시의 경우 개최 자체를 원작자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이는 뱅크시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뱅크시 측은 “사람들은 최근 열리고 있는 뱅크시 전시회가 예술가와 합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FAKE(가짜)’라는 소제목 아래 여러 국가에서 열린 뱅크시 전시를 나열해 놓았는데 이 가운데에는 아트 오브 뱅크시도 포함되어 있다.
뱅크시 본인도 자신의 복제품을 내거는 전시들에 대한 입장도 밝힌 바 있다. 그는 2018년 8월 16일 팬으로 보이는 익명의 지인과 나눈 대화를 캡처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상대방은 뱅크시에게 전시회 홍보 간판을 찍은 사진과 함께 “당신의 전시가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있있다”며 “가격은 20파운드(약 3만 원)”라고 알렸다. 그러자 뱅크시는 “웃긴다”며 “그 전시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것 알지? 나는 내 작품 관람에 돈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예술계에서는 원작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은 상업 전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전업 작가는 “뱅크시는 상업 예술을 거부해온 대표적인 작가인데, 원작자가 부정한 상업 전시가 5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 모순”이라고 지적했고, 또 다른 전시 기획자는 “불법 그래피티라고 해도 저작물로서의 요건을 갖추었다면 행정법과는 별개로 저작권을 당연히 인정받을 수 있다. 저작권자가 전시 개최에 대해 명확히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음에도 복제품을 통해 상업적 이익을 얻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최사인 LMPE컴퍼니 박봉수 본부장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뱅크시가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전시 허락을 받을 길이 없었다”면서도 “원본 27점은 P.O.W(과거 뱅크시 작품 공식 인증기관)가 인증했으며 나머지는 월드투어 기획사에서 보내준 레플리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관람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뱅크시의 작품을 보고 싶어 일찌감치 티켓을 구매했다는 대학생 김 아무개 씨(23)는 “뒤늦게 모조품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일부 원본도 있다고 해서 관람을 하고 왔다. 그런데 복제품인 인쇄본은 픽셀이 너무 깨져 있었고 설치 작품도 엉성해서 큰 감동을 느끼진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반면 김 씨의 일행은 “뱅크시가 그림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잘 알게 됐다. 코로나19로 문화생활이 많이 줄었는데,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고 너무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고 호평했다.
한편 주최 측은 “개별 작품보다는 뱅크시의 메시지에 주목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트 오브 뱅크시 서울 공식 홈페이지 ‘관람포인트’를 통해 “다른 뱅크시의 전시회와 달리 아트 오브 뱅크시는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가 전달하려 하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은 개별 작품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에 공감하게 될 것”이라는 전시 의도를 전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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