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추석 전후 골든크로스” 뒤집기 시도…대세론 윤, 이미 콘트리트 지지층 형성 자신
당시에는 홍준표 의원 말이 실현 가능성 있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8월 말을 기점으로 홍 의원 지지율이 눈에 띌 만큼 가파른 기세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말을 아끼던 윤 전 총장이 홍 의원을 향해 공격의 포문까지 열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쫓기고 있다는 심리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윤석열의 굳히기냐, 홍준표의 뒤집기냐.' 윤 전 총장의 독주로 끝날 것 같던 국민의힘 경선판이 달궈지고 있다.
#홍준표 뒤집기 가능할까
홍준표 의원은 지난 8월 중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추석을 전후해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 민심이 내게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이렇게 되면 야권 대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향에서의 지지세 확보를 통해 뒤집기를 시작한다는 발언이었다.
추석이 있는 9월로 접어드는 8월 30일 홍 의원 말을 받쳐주는 여론조사 결과 하나가 나왔다. 범보수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홍 의원이 선두주자 윤 전 총장을 턱밑까지 바짝 추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8월 27∼28일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범보수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홍 의원이 전주보다 1.2%포인트(p) 오른 21.7%를 기록, 25.9%의 윤 전 총장을 오차범위 내로 따라붙었다(이하 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업체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홍 의원은 자신의 SNS에 즉각 소감을 내놨다. 그는 “그동안 부진했던 보수층에서 대폭 상승했다. 선두와 오차범위 내에 들어갔다”며 “추석 전후로 골든크로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보수층에서는 35.4%가 윤 전 총장을 범보수권 후보로 선택했고 홍 의원이 23.5%로 뒤를 이었다. 홍 의원이 역전의 바로미터로 봤던 대구·경북(TK) 지역에서는 30.1%가 윤 전 총장을, 28.8%가 홍 의원을 각각 선택하면서 윤 전 총장 바로 뒤까지 쫓아갔다. 부산·울산·경남(PK) 역시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은 각각 27%와 24.6%를 각각 기록, 홍 의원이 윤 전 총장을 근소한 격차로 추격했다.
홍 후보 추격세를 나타내는 여론조사 결과치는 잇따르는 중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3일간 전국 18세 이상 1012명에게 조사한 결과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는 25%, 윤 전 총장은 19%로 각각 집계된 가운데 홍 의원은 전주 대비 3%p 오르며 10%를 기록했다.
보수진영 대선후보 적합도에서는 윤 전 총장이 3%p 하락한 22%였고, 홍 의원은 7%p 오른 19%를 기록, 격차가 3%p로 좁혀졌다.
정치권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홍 의원의 선거 전략을 주목하고 있다. 때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거친 말도 내놓지만, 과거처럼 ‘닥치고 거칠게’식으로 상대에 대해 융단폭격식 공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홍 의원은 “달라지려고 많이 노력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많은 지적이 있어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넥타이도 고집스럽게 붉은 색으로 안 하고, 녹색 와이셔츠까지 한다. 그리고 가급적 인터뷰를 할 때는 많이 웃는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당내 일부 대선주자들의 갈등 국면에서 이 대표 손을 들어준 것이 전술적 성공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 대표는 2030 지지세가 강한데, 홍 대표가 최근 이 대표의 손을 맞잡아주면서 홍 대표 자신의 약점인 2030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5선 국회의원, 재선 경남도지사 등 정치와 행정을 모두 경험한 경력이 향후 전개될 경선 주자들 간의 상호 토론 국면에서 그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려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홍 의원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당내 세력이 홍 의원에게로 쏠리지 않는 것은 전세 역전을 노리는 그의 전투력에 마이너스 요소가 되고 있다. 홍 의원 곁을 지키고 있는 국민의힘 현역 의원은 조경태 하영제 의원 등 손에 꼽을 정도다.
홍 의원은 이런 상황과 관련해 SNS에 “경남도지사 시절 같이했던 철새들은 날아갔지만, 대신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적기도 했다. ‘철새’는 경남 부지사 출신으로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윤한홍 의원 등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윤 의원은 현재 윤석열 캠프의 종합상황실 총괄부실장이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이 될 만한 경험은 지금 후보들 가운데 홍 의원이 단연 최고일 것”이라며 “하지만 수위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팬덤’이 형성돼야 하는데 홍 의원은 당내 현역 의원들조차 팬덤을 형성해주지 못하고 있다. 홍 의원은 줄 세우기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당내 세력부터 홍 의원 쪽으로 모여 줘야 역전극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세론 굳힌다
윤석열 전 총장은 자신에게 ‘보수 세력에 대한 적폐청산 주역’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공세를 펴온 홍준표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 맞대응을 자제해왔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상황인데 굳이 맞대응을 하며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부자 몸 사리기’ 전략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홍 의원의 추격세가 빨라지면서 윤 전 총장은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다. 윤 전 총장은 ‘영아 강간·살해범을 사형시키겠다’고 언급한 홍 의원을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에 빗대면서 저격했다. 윤 전 총장은 9월 1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형사처벌과 관련한 사법 집행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두테르테식”이라고 답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4000명 가까운 마약 용의자를 현장에서 사살하는 즉결처형식 대책을 추진,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홍 의원은 SNS에 즉각 글을 올려 “문재인 대통령이 두테르테이고, 귀하는 두테르테의 하수인이었다”라고 쏘아붙이면서 윤 전 총장에 되치기했다.
정치권에서는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왔던 윤 전 총장이 ‘변화한’ 것은 불안 심리가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한다. 홍 의원의 추격세에 뭔가 액션을 가해야 한다는 방어기제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9월 2일 윤 전 총장에게 또 다른 악재까지 터졌다. 그가 검찰총장 재임 시절 대검이 여권 정치인에 대한 고발을 야당에 청부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오면서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여당 대선주자들이 윤 전 총장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했고, 당내 추격자 홍 의원도 가만있지 않았다. 홍 의원은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총장 양해 없이 가능했겠나. 총장이 양해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좀 어불성설”이라며 “윤 후보가 직접 밝혀야 할 문제”라고 맹공했다.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윤 전 총장이 보수 진영에서는 이미 콘크리트 지지율을 형성,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8월 28일부터 3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보수층에서는 응답자의 47%가, 전체에서는 31%가 윤 전 총장을 범보수권 적합 주자로 꼽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보수층 내 지지율이 전체 지지율보다 16%p 앞서며 보수층에서 뚜렷한 강세를 보인 것이다.
반면 홍 의원은 보수층과 전체에서 전주보다 각각 8%p씩 오른 17%와 17%를 기록, 지지율 차이가 없다. 이에 보수의 핵심 지지층에서는 윤 전 총장을 보수의 적자로 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민주당의 여론조사 1위 후보 이재명 경기지사를 이길 인물이 보수에서는 과연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해 보수 유권자들이 반응하면서 보수 지지층에서 윤 전 총장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오는 것 같다”며 “현재 감지되는 당내 분위기로만 봐서는 대세론을 형성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과거엔 어땠나
한국 보수정당 대선 경선 역사에서 대선 6개월 정도를 남기고 ‘뒤집기’가 일어났던 경우는 없었다. 민주당의 경우 2002년 대선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었던 노무현 돌풍 사례가 있었지만, 보수정당은 대세론이 그대로 유지됐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은 별다른 경쟁 없이 최종 후보가 됐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9명 후보가 나오면서 이른바 ‘9룡 대결’이 됐지만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돼 이회창 후보가 대선으로 직행했다. 2002년 대선 역시 한나라당 경선은 대세론을 이어오던 이회창 후보가 최종 경선에서 최병렬 의원, 이상희 의원, 이부영 부총재 등을 싱거운 승부 끝에 가뿐하게 꺾었다.
5년 뒤인 2007년 17대 대선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대선 1년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대세론을 만들었던 이명박 후보는 그 기세를 이어가면서 박근혜 후보를 최종 경선에서 따돌렸다. 절치부심한 박근혜 후보는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그해 봄 19대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면서 대세론이 아닌 독주체제를 형성, 84.0%라는 역대 대선 경선 사상 최대 득표율을 받으며 보수정당의 최종 후보가 됐다.
2017년 ‘장미대선’은 탄핵 국면에서 후보조차 구하지 못했던 자유한국당이 급조된 후보들로 경선을 치르면서 대세론이 아예 만들어지지 못했고, 갑작스레 뛰어든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명도 덕분에 최종 후보가 됐다.
2007년 이명박-박근혜 경선을 경험했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보수정당은 보수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한번 정해진 경로를 타고 가는 경로 의존성이 진보정당보다 강하다”고 평가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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