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파리의 한 남자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성폭행 스캔들이 실린 <리베라시옹>을 읽고 있다. AP/연합뉴스 |
사실 칸의 여성편력은 이미 프랑스 정치판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자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여자를 밝히는 그의 행동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2006년 출간된 정치인들의 성생활을 낱낱이 폭로한 <섹수스 폴리티쿠스>의 저자인 크리스토프 듀보이는 “칸의 불쾌한 태도 때문에 많은 여기자들이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또 어떤 여성 공무원은 ‘내 사무실로 와서 좀 쉬었다 가라’는 칸의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또한 칸의 비서였던 한 여성은 “그는 자신을 통제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항상 새로운 여자를 찾아 다녔다”고 말했는가 하면, TV 뉴스쇼 진행자인 띠에리 아르디송은 “칸의 여성편력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내가 아는 여자친구 14명은 모두들 칸으로부터 유혹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재활원에 가야 한다”고 비난했다.
지금까지 세 번의 결혼을 한 칸은 현재 프랑스 민영방송국 TF1의 유명 앵커 출신인 안느 생클레르와 결혼한 상태며, 앞선 두 부인과의 사이에서 모두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칸은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늘 당당했다. 스스로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호색한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칸이 이처럼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내의 독특한 정서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인들에게 정치인들의 외도나 섹스 스캔들은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서로 동의 아래 저지른 일이라면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간섭하지 않고, 또 손가락질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한 외도가 아닌 ‘폭력’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말하자면 엄연한 범죄행위인 까닭에 아무리 정치인들의 사생활에 관대했던 프랑스인들도 이번에는 쉽게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칸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이번 사건은 어떻게 벌어진 걸까. 뉴욕 경찰이 발표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4일 오후 1시 무렵 맨해튼의 고급 호텔인 ‘소피텔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벌어졌다. 당시 32세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이었던 객실 청소원이 칸이 묵고 있는 방에 청소를 하기 위해 들어갔으며, 마침 알몸인 상태로 욕실에서 나오는 칸과 마주쳤다. 여성은 당황한 나머지 급히 방을 나가려 했지만 칸이 뒤를 쫓아와서 붙잡았고, 강제로 침대로 끌고 가 쓰러뜨린 후 성폭행을 시도했다. 여성이 강력히 저항하면서 도망치자 다시 붙잡아 이번에는 욕실로 끌고 갔으며, 그곳에서 강제로 여성의 가슴을 잡고 속옷과 팬티스타킹을 벗기려 했다. 또한 강제로 오럴섹스를 시도하면서 여성의 입을 그의 성기에 두 차례 갖다 댔다.
가까스로 객실을 도망쳐 나온 여성은 동료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곧 911에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경찰이 출동했을 때 이미 칸은 호텔을 떠난 후였으며, 객실에는 그가 두고 간 휴대전화와 소지품만이 남아 있었다. 이에 뉴욕 경찰은 “아무래도 서둘러서 호텔을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 4시 40분경, JFK 공항의 파리행 에어프랑스 비행기 1등석에 앉아 있던 칸은 갑자기 기내로 들이닥친 경찰 두 명에 의해 연행됐다. 이륙하기 불과 10분 전이었다.
현재 뉴욕 경찰은 칸의 피부와 손톱 등에서 DNA 샘플을 확보한 상태며, 그의 몸에 난 상처자국들을 토대로 범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만일 유죄가 인정될 경우 그는 범죄적 성행위, 성폭행 미수, 불법 감금 등의 혐의로 최대 45년형을 선고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이번 스캔들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프랑스인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아무리 여자를 좋아하는 칸이라고 할지라도 이번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스캔들이 터졌다는 점, 그리고 최근 들어 칸의 사치스런 생활에 대한 보도가 연이어 터지고 있던 마당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섹스 스캔들까지 터진 것이 어째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가령 그는 지난달 400만 유로(약 60억 원)를 호가하는 자신 소유의 고급 아파트에서 나와서 12만 유로(약 1억 8500만 원) 상당의 포르셰 자동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어 구설에 올랐다. 그리고 그가 2만 5000유로(약 3800만 원) 이상의 고급 맞춤 양복만 입는다거나 값비싼 미술품을 수집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뒤를 이었다.
이에 여당 측은 그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것을 비꼬는 의미로 ‘샴페인 사회주의자’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현재 그가 IMF 총재로서 받는 연봉은 42만 930달러(약 4억 6000만 원)다.
한편 이번 스캔들의 진위 여부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마당에 왜 굳이 그런 위험한 일을 저질렀겠는가’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칸이 아무리 여자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강제로 성폭행까지 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두둔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은 칸이 누군가 꾸민 덫에 걸렸다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음흉한 트릭이 난무했던 프랑스 정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들은 이번 스캔들의 배후 인물로 칸의 낙마로 가장 득을 보게 될 사르코지 대통령과 다른 대권 후보들, 그리고 평소 칸의 정책에 반대해왔던 IMF 내부의 반대파들을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칸 스스로도 자신이 언젠가 함정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 그는 지난 4월 28일 일간 <리베라시옹>의 기자와 점심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에서 “나의 약점은 돈, 여자,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점”이라고 말하면서 이 가운데 ‘여자’ 문제가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젠가는 ‘미인계’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또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주차장에서 내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누군가로부터 50만~100만 유로(약 7억 7000만~15억 원)를 받고 이런 이야기를 꾸며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로 그는 엘리제궁을 암시했으며, 자신이 사르코지를 무너뜨릴 확실한 경쟁자이기에 추잡한 선거운동의 목표물이 될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칸 측의 변호인은 현재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몇몇 확실한 증거가 있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먼저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그렇다. 객실 청소원이 주장한 성폭행 시간은 오후 1시 무렵이지만 그 날 칸은 이미 오후 12시 28분경에 체크아웃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행 실패 후 황급히 호텔을 빠져 나왔다는 경찰 발표와 달리 호텔에서 나온 후 딸을 만나 점심식사를 했으며, 식사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공항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평소 미인을 좋아하는 칸이 과연 미인이 아닌 흑인 청소원에게서 성적 충동을 느꼈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한편 프랑스 일간 <르포스트>는 가장 처음 그의 체포 소식을 전한 트위터의 글을 의심하면서 분명히 누군가 덫을 놓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다름이 아니라 칸이 뉴욕 경찰에 체포된 후 불과 15분 만에 조나단 피네라는 파리정치대학의 재학생이 자신의 트위터에 이 사실을 알린 것이다.
조사 결과 피네는 집권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지지자로 사르코지의 측근 인물이었다. 어떻게 체포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그는 소피텔 호텔에 근무하고 있던 친구 한 명이 알려준 정보였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의혹만 쌓이고 있는 와중에 사건 직후 여론조사기관인 CSA의 설문결과, 프랑스인 의 57%는 칸이 음모론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한 절반가량은 그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에도 여전히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과연 칸은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에 유난히 관대했던 프랑스인들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