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짜기 위기 개그맨 그만둔 격” 비아냥…차기 총리 후보 3인방에 아베가 미는 다카이치 가세
#스가 총리의 퇴진 각계각층 반응
“죄송합니다만 일본어가 어려워서. ‘코로나19 대응에 전념하기 위해 총리를 그만두겠다’는 것은 ‘개그 소재 짜기에 몰두하려고 개그맨을 그만두겠다’와 같은 의미입니까?” 미국인 방송 프로듀서 데이브 스펙터는 트위터에 이렇게 비꼬았다. “감염증 확산 와중에도 올림픽을 감행했던 스가 총리가 이제 와서 코로나 대응을 내세우며 ‘불출마하는 이유’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가 총리의 퇴진이 발표되자 일본 트위터에서는 저명인사들의 투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 도쿄 도지사 마스조에 요이치는 “흑막의 비선실세에게 스가 총리가 이용당하다 버림받았다”며 ‘고용된 마담(지배인)이었다’는 표현을 썼다. “코로나 대책을 비롯해 거의 모든 정책이 아베 전 총리의 것을 답습했을 뿐”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병원에 입원할 수 없는 자택요양자가 전국에 13만여 명이다. 이 가혹한 숫자가 스가 총리를 퇴진시키는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스가 총리의 노고를 위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뇌과학자 모테기 겐이치로는 “언변과 홍보력이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1년 동안 공약을 잘 지켰고 그때그때 적절한 판단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누가 총리를 하든 힘든 상황 속에서 애썼고 수고했다”라는 글을 남겼다.
실제로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7월 말까지 고령자 접종 완료, 하루 100만 회씩 접종 달성’ ‘히로시마 검은 비(방사능 비) 피해자 구제 결정’ ‘탈탄소 선언’ ‘휴대요금 인하’ 등 취임 당시 내세웠던 주요 공약 중 상당수를 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과의 소통 부족이 매번 도마에 올랐다. 그의 측근인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의원은 “스가 총리는 결과가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라며 “정책 과정에 있어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는 스가가 매우 취약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스가 총리의 대국민 발언이 끝나면 SNS에서는 “무미건조한 관료의 브리핑 같다” “남이 써준 원고를 기계처럼 읽기만 한다” “인간적 매력이 없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외신들도 스가 총리의 퇴진 소식을 발 빠르게 보도했다. 미국 CNN은 스가 총리의 인기가 급락한 요인에 대해 “느리고 우유부단했던 코로나19 대응과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쿄올림픽을 강행했던 것”을 꼽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르몽드 특파원은 스가 총리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이렇게 밝혔다.
“총리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야망은 있었을지 모른다. 자민당, 나아가 한 나라의 정권 안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의욕이 느껴졌다. 다만 ‘일본의 비전을 그렸던 인물인가’ 하면 의문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고 본다.”
#‘포스트 스가’ 레이스 대혼전 양상
이제 관심은 ‘새 총리직에 누가 앉을 것인가’로 쏠린다. 아사히신문은 자민당 총재 선거 양상에 대해 “총리 자리를 노리는 후보자가 난립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당초 유력 후보로는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64),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58),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64) 등 3파전이 예상됐다. 하지만 최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60)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내비치면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여론조사에서는 고노 담당상이 우세한 형국이다. 요미우리신문이 9월 4부터 5일까지 전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 총리직에 어울리는 정치인’은 고노 담당상이 23%, 이시바 전 간사장이 21%, 기시다 전 정조회장 12% 순으로 나타났다. 아베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아 출마의 뜻을 굳힌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3%에 그쳤다. 교도통신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도 순위는 동일하다.
‘총리감으로 어울리는 이유’를 묻자, 고노 담당상을 선택한 유권자의 경우 “발신력(메시지 전달 능력)이 있다”가 88%로 가장 높았다. 고노는 SNS를 적극 활용해 일반 국민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위터 팔로어 수만 237만 명에 달하며 언변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인품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 비중이 78%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시바는 아베 전 총리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온 인물. 국민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것이 아킬레스건이다. 일각에서는 “이시바가 출마 대신 고노 담당상을 지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개혁의지가 있다”라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최근 기시다는 “자신이 총재가 되면 자민당 간사장의 임기를 1년으로 정하고, 연속으로 3기 동안만 간사장을 맡을 수 있도록 한다”는 개혁안을 제시한 바 있다. 5년 넘게 자민당 ‘실세’로 군림해온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아울러 기시다는 자민당 내에서 비교적 온건한 역사 인식을 가진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아베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발언을 비롯해 분명한 우파 성향을 지녔다. 네 명의 후보들 가운데서도 가장 극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경제평론가인 모리나가 다쿠로는 9월 6일 닛폰방송의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제적 측면에서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지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경제 정책이라면 다카이치를 주목할 만하며, 기시다는 본질적으로 긴축 재정파, 고노와 이시바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제 쪽에서는 조금 약하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차기 총리로 어떤 인물을 바라고 있을까. 아사히TV 뉴스가 거리로 나가 시민들과 인터뷰를 했다. 60대 남성은 “코로나 사태를 잘 수습하고 이후 위드 코로나로 원활하게 전환, 경제를 제대로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30대 직장인 남성은 “친숙하게 정책을 설명해줬으면 한다. 아무래도 스가 총리는 부족했기 때문에…”라고 말을 이었다. 50대 여성은 “이제 일본에서도 여성 총리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다카이치에게 응원을 보냈다.
한편,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 소속 국회의원 383표와 전국 당원·당우 383표를 더한 766표 중 과반을 얻는 후보가 당선된다. 9월 17일 고시를 거쳐 29일 투·개표를 진행하는 일정으로 치러진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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