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딛고 ‘모가디슈’, ‘D.P.’까지 연이은 흥행 가도…“새로움·낯섦이 연기의 원동력”
“한호열은 원작 웹툰에 없는 인물이어서 캐릭터 구축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오히려 오리지널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을 더 떨칠 수 있었죠. 한편으론 한호열이 안준호와 공동체라는 생각도 했어요. 이게 저한테는 특별한 경험이기도 한데, 한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상대역조차 나라고 생각하고 인물에 다가갔던 것 같아요.”
Deserter Pursuit,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전담조라는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소재를 다루는 ‘D.P.’에서 구교환이 맡은 한호열 상병은 능글맞고 능청스럽게 굴면서도 자신이 정한 ‘선’은 결코 넘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지닌 캐릭터다. 군대 내 부조리가 주요 테마인 작품의 특성상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을 수 있는 스토리에서 그는 경쾌한 변주를 주는 감초 같은 인물로 활약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의 전사와 속내를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행동과 대사들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제작진에게 ‘빨리 시즌 2를 내놓아라’ 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이기도 하다.
“그저 한 장면, 한 장면에 충실하려 했어요. 한호열을 만들 때만의 방법이 아니고 모든 인물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인물을 정의 내리게 된다면 저는 많이 경직되더라고요. 많은 전사들을 만들어 놓고 순간순간 꺼내서 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한호열의 첫 등장은 약간 초자연적으로 등장하는 느낌이 들죠. 마침 모두가 위기를 겪고 있을 때 내가 ‘짜잔!’ 그렇게 등장하는 장면도 있고, 반대로 어쩔 땐 또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인물을 한 가지의 형태로 가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순간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요.”
‘D.P.’가 공개되고 나서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가 한호열이었던 만큼 연기한 배우의 입장으로서는 어깨가 치솟을 법도 했다. 그러나 구교환은 모든 애정과 인기를 제작진, 특히 한준희 감독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다. “한호열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는 연출적인 부분이 제일 크고, 저는 그저 그걸 리듬감있게 옮겼을 뿐이거든요.”
“한준희 감독님은 이 ‘D.P.’라는 세계관과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셔서 제가 의지할 수 있고 질문할 수 있는 멘토 같은 사람이었어요. ‘한호열 박사님’이라고 말씀드리는 게 가장 정확한 것 같아요. 한호열 박사와 함께 떠나는 어드벤처라면 두려울 게 없었거든요(웃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었어요. 모든 인물들의 박사이셨던 것 같아요.”
한준희 감독이 한호열 박사라면 구교환은 석사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한호열의 이야기가 많이 풀리지 않은 지금, 그의 이야기는 제작진과 배우만이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런 구교환이 현 시점에서 밝힐 수 있는 한호열에 대한 해석은 ‘외강내유’라고 했다.
“호열이는 여유 있어 보이지만, 매 순간이 두렵고 매 순간 용기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쓰러운 마음도 있고 반대로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는 마음도 들어요. 언젠간 호열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발을 뻗고 푹 자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이처럼 속으로는 두려움을 감추고 있으면서도 함께 하는 파트너이자 후임인 안준호 이병(정해인 분)의 앞에서는 선임으로서, 또 유일무이한 친구로서 앞장서 감싸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시즌 1에서는 한호열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안준호를 볼 수 있었다면 시즌 2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으로 또 한 번 시청자들의 눈물을 빼진 않을까.
“한호열을 연기하면서 제가 중점을 둔 부분은 ‘준호를 웃게 하는 것’, 그게 가장 초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준호를 안심시키는 것’, 이건 가장 중요했던 거고요. 제가 명장면으로 꼽는 신이 버스에서 내릴 때 안준호의 미소인데, 그 미소를 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저는 호열이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준호의 친구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작품 내에서의 끈끈한 브로맨스도 설렜지만, 작품 밖 구교환과 정해인이라는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도 여간한 볼거리가 아니었다고. 심하게 낯을 가리는 두 사람이 함께 했더니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만나 플러스가 된 셈이었다. 말을 많이 하는 구교환과 말을 많이 들어주는 정해인의 시너지는,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제가 굉장히 말을 많이 했습니다(웃음). 해인이는 들어줬는데, 아마 해인이 귀에서 피가 났을 거예요. 사실 농담이고요. 서로 유머로 친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너네 어떻게 친해졌어?’라고 할 때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같은 반이 된 친구고 짝궁이었는데 ‘어, 서로 잘 맞네?’ 하다가 자연스럽게 언제부터 친해졌는지 모를 정도로 갑자기 친해졌어요.”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가 남들과 살짝 달라서 정해인과도 유머로 친해지진 못했지만, 그는 항상 유머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유머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는 구교환은 한호열과 자신의 공통점으로도 “항상 유머를 추구하는 스타일”을 꼽았다.
“저는 강력한 유머를 하진 않았지만 잔잔하게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마 유치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관계에 있어서도 유머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장 위기의 순간에 모든 것을 구하는 것도 유머라고 보거든요. 저한테 유머 감각이 있다고 해주시면 너무 기분 좋아요. 그런 감각이 있었으면 했는데…. 유머를 추구하는 비결이 있다면 ‘억지로 하지 말자’입니다. 낄 때 끼자가 제 유머의 철학이에요.”
그런 구교환의 유머 감각을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계속 볼 수 있게 될까. 2020년 ‘반도’, 2021년 ‘모가디슈’와 ‘D.P.’, 내년 상반기에는 연상호 감독의 티빙 오리지널 웹드라마 ‘괴이’의 공개까지 앞두고 있는 그에게 당분간 휴식은 없을 것 같다. 취미인 달리기처럼 끊임없이 구교환을 달리게 만드는 열정의 근원이 문득 궁금해졌다.
“호랑이 열정 덕인가(웃음)? 사실 저는 지금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아직 쉬고 싶지 않은가 봐요. 저한텐 모든 게 신기하고 모든 게 새로운 일이거든요. 작품이 끝난다 해서 같은 작품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제작진, 새로운 상대 배우를 만나는 게 계속 낯설고 재밌어요. 그게 저로 하여금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고, 용기가 생기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아마 반복되는 일이었다면 많이 힘들었겠죠.”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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