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해군에 이어 육군에서도 한 부사관이 상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2차 피해에 시달렸다. 소속 군인을 보호해야 할 군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못해 폭력적이었다. 그동안 군사법원이 성범죄에 대해 내린 ‘솜방망이 판결’로 볼 때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건들도 적지 않았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5월 공군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된 뒤에도 군사법원의 관대한 처벌은 계속됐다. 일요신문은 3회에 걸쳐 군대의 마초문화 속에서 군사법원이 지금껏 성범죄를 어떻게 단죄해 왔는지 살펴본다.[일요신문]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지난 3개월 동안 군사법원이 판결한 성범죄 사건 가운데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한 죄목이다. 총 69개의 판결문 가운데 미성년자가 피해자로 등장한 사건은 22개로 전체 성범죄 사건의 약 32%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다수는 성착취 영상물을 소지하거나 제작한 혐의였으나 대부분은 벌금형에 그쳤다. 심지어 13세 청소년을 강간한 가해자에게는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성관계 동의 여부를 따져 집행유예가 내려지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성범죄와 군사법원’의 마지막 기사로 군인의 대민범죄, 그 가운데에서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저지른 성범죄에 대해 군사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려왔는지 공개한다.
최근 3개월 사이 군사법원에서 판결한 성범죄 가운데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범행 비율이 전체 성범죄의 약 3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 소지 및 제작 혐의였는데 대개는 벌금형에 그쳤다.
이 가운데에는 텔레그램 'n번방'의 성착취물을 가지고 있는 이도 있었다. A 씨는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갓갓’이 자취를 감췄다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2020년 1월 23일 그가 다시 만든 n번방인 ‘갓갓방’에서 성착취물을 다운 받았다. 판결 내용을 종합하면 A 씨는 13세 피해자와 17세 피해자의 영상 등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 380개를 다운 받았다. 지상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7월 16일 A 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임을 알면서도 이를 다운로드 받아 소지한 행위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제작 행위에 유인을 제공하는 행위로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초범인 점과 연령 성행 가정환경 범행의 동기와 수단 등 여러 사정들을 참작하여 형을 정했다”고 300만 원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의 무게를 단순히 숫자로 나누어 따져볼 수는 없으나 벌금 300만 원을 A 씨가 소지했던 음란물 380개로 나누면 성착취물 개당 벌금은 약 7900원인 셈이었다. 당시 법원이 내릴 수 있는 처단형의 범위는 최대 2000만 원 이하였다.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영상을 찍고 협박해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제5군단 보통군사법원 13세 미성년자와 성관계하고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이를 빌미로 협박까지 한 B 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당시 판결문의 내용을 옮기면 B 씨는 13세에 불과한 피해자에게 읽기 민망할 정도의 음란한 메시지를 수차례 보냈다. 또 협박성 메시지도 지속적으로 보냈으며,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면서 피해자 몰래 그 장면을 사진 촬영까지 했다.
그 뒤에는 이 영상을 인질로 삼아 “학교에서 이 일 때문에 부르면 어떨 것 같냐” “임신해볼래? 임신하면 끝내드림. 까발릴까, 임신할래. 둘 중 골라봐” 등의 메시지를 보내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학대하기도 했다. 피해자 역시 다시는 A 씨를 보고 싶지 않고 합의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B 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있는 점, 피해자 지인으로부터 범행을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하나 스스로 소속대를 통해 수사기관에 범행을 알린 점, A 씨가 아직은 어린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집행유예를 했다. 군사법원은 여전히 관대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이란 19세 이상의 사람이 16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할 때 성립하는 범죄다. 피해자가 설령 성관계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강간죄와 마찬가지로 처벌하는 것인데, 일정 연령 이하의 미성년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가 이를 보호하자는 목적이다.
당초 우리나라에서 미성년자의제강간의 기준 연령은 13세 미만이었으나 적용 연령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와 2020년 5월 19일부터 기준 연령을 16세 미만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한 자나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간음한 19세의 이상의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군사법원에선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 나왔다.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7월 8일, 13세의 미성년자를 간음한 C 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13세의 미성년자이기는 하나 해당 범죄는 미성년자의제강간 적용 연령이 확대된 지 11일 뒤에 벌어진 것으로, C 씨가 범행 당시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미약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명령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에 취업제한명령도 면제됐다.
그러면서 13세 피해자의 성관계 동의 여부와 처벌 의사를 따져 형량을 정했다. 1심 재판부는 “C 씨가 먼저 성관계를 요구한 적은 없으며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모친은 C 씨의 처벌을 원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성숙한 상태의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법 취지와는 맞지 않는 행보였다.
실제로 2020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군 복무 중 성범죄를 저질러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0%로 같은 기간 성범죄를 저질러 민간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비율인 25%보다 크게 낮았다. 이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해서라도 군사법원이 맡던 성범죄 사건을 민간법원에 이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아예 평시 군사법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이러한 요구를 일부 수용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군 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1심부터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수사와 재판을 담당할 전망이다. 이 외에도 사망사건, 입대 전 민간에서 저지른 범죄 등은 군 검찰이나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에서 맡게 된다. 그 외의 군 내 범죄는 기존대로 군사법원이 1심을 맡되, 항소심은 민간 고등법원이 관할하게 된다.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국무회의 상정 및 법안 공포 등 절차를 거쳐 2022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