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들 완주 의지 ‘반이재명 연합군’ 무산 가능성…“정세균의 이재명 지지 원하는 이들도”
“역시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바람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지난 9월 4~5일 충청 경선 직후 “지지도가 조직력 위에 있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후발 주자들의 뒤집기가 쉽지 않다”며 “결선투표제 변수가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노(친노무현)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도 9월 6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격차에 대해 “아마 더 벌어지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
이재명발 충청 쇼크의 충격파는 컸다. 가장 내상을 입은 쪽은 이낙연 전 대표다. 첫 번째 순회 경선인 충청권에서 20%대에 그친 이 전 대표는 9월 6일 일정을 취소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는 당일 오전 금융노조 간담회를 제외한 전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MBC 방송 인터뷰는 녹화 1시간 전에 불가를 통보했다. 특히 이 전 대표가 두 번째 순회 경선 지역인 대구·경북(TK)의 발전전략 발표 일정조차 취소하자, 여의도 안팎에서 ‘이낙연 중도 하차설’이 흘러나왔다. 핵심 관계자는 “너무 나간 얘기”라며 중도 하차설을 일축했다. 내부에선 “충격이 크다. 선거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이 전 대표가 들고 나온 것은 국회의원직 사퇴였다. 이 전 대표는 9월 8일 광주광역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과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의원직을 버리고 정권 재창출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우리는 5·18 영령 앞에 부끄럽지 않은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며 사실상 이 지사를 직격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의 최대 변수인 호남 경선(광주·전남 9월 25일, 전북 9월 26일)을 앞두고 ‘정치 1번지’ 종로를 포기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배수진이 경선판을 뒤바꿀지는 미지수다. 당 내부에선 “뜬금포”라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 대선 캠프 한 관계자는 “승부수가 될지, 자충수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비문(비문재인)계 인사도 “종로 보궐선거를 노리는 이들만 좋을 판”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캠프 관계자도 “이 전 대표가 사퇴해도 어대명은 어대명”이라고 말했다.
당 내부에선 “‘이낙연 침몰’은 예견된 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충청권 경선 전까지 이 전 대표 측이 내세운 것은 기승전 네거티브였다. 정치권 안팎에선 “제2의 손학규밖에 더 되겠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2012년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친노 패권주의 비판’을 제1 선거 전략으로 삼았다. 결과는 과반(56.5%)을 얻은 문재인 대통령의 본선 직행. 손 전 대표는 22.2%에 그쳤다. 민주당 충청권 경선 결과(이재명 54.7% vs 28.2%)와 엇비슷하다.
이번 경선판도 ‘명낙(이재명·이낙연) 대전’으로 불린 만큼, 네거티브 선거전이 극에 달했다. 이 전 대표 측에선 “네거티브가 아닌 본선을 위한 검증”이라고 했지만, 이 전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 지사가 본선에 진출하면 국민의힘을 찍겠다”는 말도 있었다. 9월 7일 대선 일정을 재개한 이 전 대표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 묘역을 참배한 자리에서 “네거티브 선거로 오해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겠다”며 포지티브 선거 전환을 명명했지만, 양 지지층 간 화학적 결합이 될지는 미지수인 셈이다.
관전 포인트는 중반을 향해 가는 민주당 대선 경선 구도의 변화 여부다. 애초 여권 내부에선 광주·전남을 비롯한 호남 경선 직후 일부 후보 간 합종연횡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제기된 '명추 연대'의 두 축인 이재명 지사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지사 측 일부 인사는 정 전 총리의 행보에도 촉각은 곤두세웠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정 전 총리가 이 지사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는 그림을 원하는 이들도 있더라”라고 말했다.
변수는 어대명으로 끝난 초반 경선 결과다. ‘이재명 과반 득표 실패’와 ‘이낙연 선전’이 맞물렸을 경우 후발 주자의 중도 하차 공간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한 자릿수 득표율 주자의 경우 1∼2위 후보와 합종연횡에 나서면,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식이다. 합종연횡 주자들이 사실상의 러닝메이트 관계로 전환해 ‘이재명 대통령·추미애 국무총리’ 조합 등에 대한 국민적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재명 대세론의 재확인은 민주당 경선 구도의 변수를 짓눌렀다. 이 전 대표의 부진과 맞물려 ‘정세균·추미애’ 간 3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후발 주자들의 기류도 변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앞선 것으로 평가받던 정 전 총리가 아슬아슬한 3위에 올랐는데, (이는) 추 전 장관의 강성 팬덤이 확인된 것”이라며 “추 전 장관 측 내부에 ‘이참에…’라는 기류가 강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복수 관계자들도 “추 전 장관이 완주할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추 전 장관 측은 “3등으로 마무리할 것”이라며 완주 의지를 드러냈다. 추 전 장관이 정 전 총리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설 경우 포스트 대선 국면에서 활동 공간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추 전 장관은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에도 올랐다. 박용진·김두관 의원은 애초 당선 가능성이 낮았던 만큼, 합종연횡보다는 완주하는 게 더 정치적 실익이 크다. 박용진·김두관 의원 측 관계자들은 일제히 “중도 포기는 없다”고 완주에 힘을 실었다.
고심이 깊은 쪽은 정 전 총리다. 그는 세종·충북 경선에서 4위에 그치면서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민주당 의원실 한 보좌관은 “한 달 간 공을 들인 노력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득표율”이라며 “‘조직의 정세균’이 현역 지지가 제로(0)인 추 전 장관에게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를 지지하는 민주당 현역 의원은 20∼30명에 달한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사실상 언택트 경선이 된 점도 조직력에서 우위를 보인 정 전 총리 측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9월 7일 자가격리에서 풀린 정 전 총리는 외교·안보 공약을 발표하며 다시 신발끈을 동여맸다. 정 전 총리는 현장 행보 재개 직후 “이재명 리스크는 크다”며 완주에 방점을 찍었다. 이 전 대표와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없다”고 일축했다.
정 전 총리의 단일화 거부의 불똥은 이 전 대표에게 튀었다. 정 전 총리가 완주 여부와 관계없이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면 ‘반이재명 연합군’은 공수표에 그친다. 결선 투표 가능성이 작아진 상황에서 합종연횡을 통한 반이재명 전선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이 지사와 일대일 구도를 목표로 한 이 전 대표의 구상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발 충청 쇼크 이후 ‘이낙연 고립설’이 흘러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 전 총리 측 내부에서도 “(어떠한 경우든) 이 전 대표와의 단일화는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이 전 대표로선 첩첩산중인 셈이다.
친문 분화의 가속화도 이 전 대표에게 악재다. 어대명 확인 직후 ‘부산 친문’ 전재수 의원은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을 실현할 사람은 이재명”이라고 공개 지지했다. 이광재 의원을 돕던 전 의원은 정세균 캠프 대변인을 맡았었다. 전 의원은 ‘정세균·이광재’ 단일화 이후 자연스럽게 캠프를 이동했지만, 그간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않은 채 거리두기를 해왔다.
당 내부에선 친문발 대선 경선 연기론을 주도한 전 의원이 이 지사를 공개 지지함에 따라 당 주류의 분화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지사로 친문 쏠림이 가속할 경우 문 대통령 영향력이 감소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마저 하락할 땐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먹구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이 전 대표는 ‘지지도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대표적 관계였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문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면 이 전 대표도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이낙연 대안론 운명은 호남 경선이 예정된 9월 25∼26일 결정될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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