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 등이 스타들 관련 관리 감독 강조…연예인 순위 발표 금지 등 통제 시작
중국 최대 SNS 시나웨이보(웨이보)는 8월 23일 BTS 멤버 지민의 팬클럽 계정 운영을 60일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민의 팬클럽 웨이보 계정엔 11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이 가입돼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60일간 새로운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없다. 웨이보 측은 “지민의 팬클럽이 회원들을 상대로 불법모금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지민의 중국 팬클럽은 지난 4월부터 모금을 시작했다. 지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이벤트를 위해서였다. 모금 시작 3분 만에 100만 위안(1억 8000만 원가량)이, 1시간 후엔 230만 위안(4억 2000만 원가량)이 모였다. 팬클럽은 이 돈으로 전세계 유수 언론에 생일 축하 광고를 낼 계획이었다. 또 특정 항공사와 계약을 맺어 비행기 기체, 티켓, 종이컵 등에 지민의 사진을 게재하기로 했다. 이를 놓고 초호화 논란이 일었고, 많은 누리꾼들이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팬들이 이런 식의 기념행사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웨이보는 “스타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추종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또 심각하게 다룰 것”이라고 했다. 이어 웨이보는 한국 연예인 팬덤 21개 계정을 30일 동안 금지했다. 매체들은 “한국 아이돌 팬덤에 대한 규제는 K-팝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놓고 온라인상에선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한 누리꾼은 “한국 문화와는 교류해선 안 된다.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는 중국으로부터 건너간 것이다.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확대해석 할 필요가 없다.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것은 좁은 속내일 뿐이다. 웨이보는 그저 중국 연예계 문제점인 팬덤 문화를 다루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K-팝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주한 중국대사관은 이례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대사관 대변인은 “많은 팬덤이 욕설과 비방, 악성 마케팅을 일삼고 있다. 미성년자들 피해가 크다”면서 “내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문화교류와 협력을 장려하겠지만 저속한 것은 자제하겠다”고 했다.
웨이보의 이번 조치는 중국 당국의 방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그동안 기업, 문화, 종교, 교육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여기엔 청소년들에게 영향이 큰 스타들에 대한 관리 감독이 포함돼 있다. CCTV 등 공공방송은 얼마 전부터 과도한 화장 또는 선정적인 옷차림의 연예인들의 경우 출연을 금지했다. 또 아이돌 양성 프로그램도 중단했다. 팬덤 단속도 그 일부분이다.
중앙인터넷 통신 판공실 비서국은 8월 25일 팬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지문을 발표했다. △연예인 순위 발표 금지 △스타 기획사 감독 강화 △팬덤 계정 규범화 △팬 소비 유도 금지 △규정 어기는 팬덤 해산 △미성년자의 팬덤 참여 통제 △예능 프로그램 관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방침에 영향을 준 결정적인 사건이 몇 달 전에 있었다. 지난 4월 한 유제품 회사는 병뚜껑에 새겨진 바코드 스캔 횟수에 따라 아이돌 순위를 매기는 마케팅을 했다. 스캔을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아이돌의 순위가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그러자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의 바코드 제품을 대량으로 산 뒤 병뚜껑을 따서 스캔만 하고는, 먹지도 않고 버렸다. 심지어 사람을 고용해 이 유제품들을 강물에 쏟아붓는 사례까지 나왔다.
중앙인터넷 통신 판공실 비서국이 팬덤 관련 통지의 제일 앞부분에 연예인 순위 발표 금지를 내세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팬들이 스타를 지지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순위를 올리고, 이 과정에서 도를 넘는 경쟁이 벌어져 온라인 환경이 오염되고 있다는 등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방책인 셈이다.
베이징대 중문과 장이무 교수는 “팬덤 문화는 어느새 사회의 주류 문화가 됐다. 매우 강력한 힘으로 연예 사업을 좌우하는 지경까지 왔다. 미디어와 SNS(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팬덤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기획사도 눈치를 보게 됐다”면서 “하지만 팬덤 문화는 현재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자청 베이징시 부주석은 “팬덤의 저속화는 반드시 고쳐야 할 지경에 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영화문학학회 부회장 왕하이린은 “인터넷 사용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팬덤 속 미성년자 비율이 높아졌다. 이들은 자본의 선동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기획사는 사회적 경력과 판단력이 부족한 이들이 인터넷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시간과 돈을 쏟아붓도록 하고, 아이돌 관련 상품 구매를 통해 자금을 모은다”고 했다.
중국예술연구원 손가산 부연구원은 팬덤에 대한 규제와 함께 경제적 이익을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연예 산업 건물은 크게 3층으로 이뤄져 있다. 스타 연예인이 1층, 기획사가 2층, 그리고 팬덤이 3층이다. 연예인은 소속사뿐 아니라 주요 팬덤과도 경제적 이익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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