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 소수노조·비조합원 불만 속출…사측 “교섭대표노조와 회사 간 결정”
포스코 노사는 지난 8월 28일 총 21차례의 교섭 끝에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6일 조합원 6460명 중 6191명이 참여한 찬반 투표에서는 70.73%의 찬성 득표율로 합의안이 가결됐다. 주요 합의 내용은 △기본임금 2.5% 인상 △특별격려금 100% △지역상품권 50만 원 지급 △주택구입 및 임차자금 한도 인상(구입 9000만 원·임차 7000만 원) △복지포인트 129만 원으로 인상 △직책자 간담회비 2020년 4월 이전 수준으로 회복 등이다.
포스코는 현재 한국노총 금속노련 포스코노조(포스코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포스코지회)의 복수노조 상태다. 약 6000여 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포스코노조에는 대졸·관리직인 P직군과 고근속·직책자(파트장급) 중심의 E직군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지회는 E직군의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제2노조로, 조합원 수는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즉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포스코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서 임단협 타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임단협 결과를 두고 포스코지회와 비조합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합의안에 따르면 E직군의 임금구조는 내년 1월 1일부터 크게 바뀐다. 우선 호봉제였던 기존 직원들의 기본임금을 기초급·가산급·조정분·보전급 등으로 쪼개어 지급하도록 했다. 보전급은 임단협 이전 수준과 비교하여 임금의 불이익이 없도록 만든 것인데, 신입 직원에는 지급하지 않는다. 또 신입 직원에 대해선 개인별 성과공헌도에 따라 기본임금 및 임금상승 수준을 차별화하도록 개편했다. 이에 사실상 E직군의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 중심의 연봉제로 전환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포스코지회는 8일 입장문을 내고 “임단협 결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100년 포스코 미래의 주역이 될 아직 입사하지 않은 후배들의 임금체계를 개악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임금개악을 통해 포스코노조는 사측에 더욱 많은 힘을 실어주었다”며 “미래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해 회사의 입맛대로 정해진 인사평가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덧붙였다.
포스코노조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노조 소속 직원 A 씨는 “한국노총에 가입돼 있는 나이 많은 직원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한 것”이라며 “신입 직원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직원들이 한국노총은 가입을 안 하고, 민주노총에는 압박 때문에 가입을 못하는 상황”이라며 “한국노총에라도 가입해서 투표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였다. 임단협 합의를 전후로 포스코노조 게시판에는 “임금협상 행태에 실망했다” “미래 신입사원에 대한 반연봉제·임금 축소안” “노경협의회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포스코노조 관계자는 “호봉제는 사회적 이슈로 타회사에서도 고쳐가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신입 직원들 사이에서는 고참으로 올라갈수록 높은 임금을 받는 것에 대해 능력주의에 맞지 않다는 불만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를 불신하는 마음에 ‘연봉제로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있지만 (거기에 대해선)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며 “능력이 있으면 더 많이 주고, 못하는 사람까지 끌고 갈 수는 없으므로 더 분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개선과 관련해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합의안에 따르면 만 57세·58세·59세 이후 기본임금 지급률을 현행 95%·90%·85% 수준에서 100%·100%·90%로 대폭 개선했다. 이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고근속자의 임금피크제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신입사원의 호봉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이 나온다.
노사는 “향후 10년간 매년 평균 700명 수준으로 고숙련·고근속 인력의 대규모 정년퇴직이 예상되고 있다”며 “후배 직원 양성, 기술력 전수 등을 위해 선배 사원들의 역할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임금상승률에 대한 불만도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임금을 동결했는데, 올해 경영 실적이 좋아졌음에도 임단협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4조 3611억 원, 3조 753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54%, 331% 증가했다. 특히 2분기 영업이익은 2조 200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12.22% 급증하며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 역대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포스코 직원 B 씨는 “작년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임금이 동결되고 연차를 사용하게 하는 등 희생을 강요했지만,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수용하는 분위기였다”면서도 “올해 임원들이 엄청난 성과급을 가져가고 2분기에 최고 실적을 기록하면서 임단협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 C 씨는 “노조원을 제외하고 1만 명이 넘는 나머지 직원들 중 태반은 임단협 소식을 뉴스에서 접했다”며 “임금을 많이 올려주거나 복지를 늘려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통보식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토로했다.
임단협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스코지회 한대정 수석부지회장은 “포스코노조 측에서 8월 28일 토요일 저녁 6시에 공문을 보내 이틀 뒤까지 조합원 명부를 보내지 않으면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며 “선관위 접수일인 9월 1일 명단을 넘기려 했으나, 공문 수신이 안 되도록 팩스와 이메일을 막아 놓고 휴대폰을 꺼 놓는 등 지회의 투표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서류를 제출했지만 CMS(자동이체) 조합원의 경우 신상 공개 여부를 일일이 물어봐야 했기 때문에 시간상 참여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포스코 노조 상황을 잘 아는 한 노무사는 “포스코에는 기존에 조합원 수 10명 내외의 기업별 노조(현 포스코노조)가 있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였는데, 2018년 포스코지회가 생기면서 기업별 노조에서도 조합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며 “이후 조합원이 갑자기 늘어나 교섭 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교섭대표노조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단협 결과의 유·불리를 근로자 입장에서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에서는 호봉제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포스코노조의 이번 임단협은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임단협 결과를 전 직원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의 노무사는 “단체협약은 원칙적으로 조합원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이라며 “포스코노조가 전체 직원의 과반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전 직원에게 시행하기 위해서는 급여 규정이나 취업 규칙 등을 변경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 직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임단협과 관련해 “교섭대표노조와 회사가 협의해 결정한 것”이라는 설명 외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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