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르지만 당시 정상급 남자기사를 상대로 어려운 시합을 하던 여자기사들과 전성기를 보낸 시니어 기사를 붙여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게 됐다. 예선을 통해 선발된 신사 팀, 숙녀 팀 각 12명 선수들이 농심배처럼 이기면 계속 두는 승발전 방식으로 대국을 펼친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는 ‘시니어 vs 여류’가 대회 명칭이었으나 2016년부터 시니어 기사들의 출전 제한 연령을 만 45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낮추면서 ‘신사 대 숙녀’로 이름이 변경됐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7시 바둑TV를 통해 생중계 되는데 팬들을 웃고 울리는 해프닝이 자주 발생해 ‘반상(盤上)의 월화드라마’라고도 불린다.
#3연승 챙기고 순산까지…김윤영 돌풍
올해는 시작부터 김윤영 4단이 돌풍을 일으켰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2017년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내고 캐나다 몬트리올로 훌쩍 건너가 바둑 보급 활동을 펼쳤다. 2019년 현지인과 결혼해 임신 중인 김윤영은 출산 겸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도 피할 겸 한국으로 잠시 들어왔다가 지지옥션배 출전 기회를 잡은 것.
그런데 출산이 임박해 1번 타자를 자원했다는 김 4단이 오랜만에 출전한 대회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중후한 기풍의 김수장 9단을 첫 대국에서 날려 보내더니 두 번째 대국에선 신사팀의 주요 전력 중 하나인 유창혁 9단을 조기 퇴출시켰다. “유창혁 사범님께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던 김윤영은 과거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불렸던 유창혁의 대마를 초반부터 맹공격, 대국 시작한 지 1시간 40분, 150수 만에 불계승으로 끝내버렸다.
4년간 공식대국이 없었던 그녀의 활약에 해설자 양상국 9단은 “캐나다에서 전지훈련 하고 온 것 같다”고 했고, 백성호 9단은 “도를 닦고 온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이후 이성재 9단까지 꺾고 3연승을 달성, 200만 원의 연승상금을 챙긴 김윤영은 서무상 9단에게 패한 뒤 바로 득남, 최고의 여름을 보냈다.
#한종진 연승가도 막은 제자 오유진
서울 왕십리 한국기원 근처에서 본인의 이름을 걸고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종진 9단은 지지옥션배가 낳은 스타다. 한 9단은 2019년 13기 지지옥션배에서 이영주 3단, 오정아 4단, 김혜민 9단, 박지은 9단, 김채영 7단을 차례로 꺾고 5연승을 올렸다. 제자 오유진 7단에게 연승이 저지당했지만 한 9단의 맹활약 덕에 신사팀은 3년 만에 우승컵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한 9단은 올해 다시 힘을 냈다. 2연승을 달리던 조혜연 9단을 꺾더니 이영주 3단, 허서현 2단, 박지은 9단 등 숙녀팀 주력을 연거푸 네 명이나 잡아냈다. 숙녀팀으로서는 2년 전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 그런데 공교롭게도 또다시 오유진 7단이 한종진 9단이 앞길을 막아섰다.
6일 열린 제13국에서 오유진이 255수에 스승으로부터 항서를 받아냈다. 계가로 갔으면 반집이나 1집반 차의 미세한 승부였지만 스승은 선선히 돌을 거둬들였다. 제자가 스승의 연승을 두 번이나 저지한 것.
한종진 9단은 “유진이는 초등 5학년 때 처음 만나 입단할 때까지 가르쳤다. 아시다시피 여자바둑의 강자 아닌가. 패배가 아쉽기는 하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승부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지옥션배에서 성적이 좋은 건 평소 도장에서 아이들과 같이 연구하고 복기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따로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다”면서 “아직 우리 팀이 한 명 더 많지만 숙녀팀엔 최정, 조승아, 오유진, 김채영 등 주력들이 버티고 있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리 팀에 이창호 9단과 최명훈 9단, 안조영 9단이 남아 있으니 기대하며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대국에서 오유진이 김승준 9단을 꺾으면서 5 대 5 대결로 압축됐다(숙녀팀은 오유진·오정아·조승아·김채영·최정, 신사팀은 차민수·최규병·안조영·최명훈·이창호).
지지옥션배 연승대항전의 우승상금은 1억 2000만 원. 3연승 시 200만 원의 연승상금이 지급되며, 이후 1승당 100만 원의 연승상금이 추가로 지급된다. 그동안 14번의 대결에서는 숙녀 팀이 신사 팀에 8승 6패로 앞서 있다.
선수 명단
신사팀
이창호·최명훈·차민수·최규병·안조영(탈락-김승준·한종진·김동면·서무상·이성재·유창혁·김수장)
숙녀팀
최정·김채영·조승아·오정아·오유진(탈락-유주현·김윤영·조혜연·강다정·이영주·박지은·허서현)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