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의 금지의 금지’ 요동치는 중국 연예계…“미국·유럽·일본 등 다각도 진출, 한한령 때와는 다를 것”
이전의 제재 조치가 한류 등 해외 연예계를 집어서 겨냥했었다면 이번엔 자국이 중심이고 해외는 ‘곁다리’로 영향권 안에 놓인 셈이다. 그럼에도 한한령으로 전례가 있었던 만큼 중국의 조치에 국내 연예계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연예계에 ‘칼춤’이 처음 감지된 시점은 2021년 5월로 아이치이 아이돌 프로듀서 시리즈 ‘청춘유니3’의 투표 과정에서 발생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에 투표하기 위해서는 메인 스폰서 멍뉴(蒙牛, 중국의 유명 유제품 회사)가 판매 중인 요거트 제품을 구매해야 했다. 제품 한 개에 붙은 QR코드를 통해 멤버에게 투표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제품들이 투표권만을 위해 구매 된 뒤 먹지도 않고 버려졌다.
일부 멤버의 극성팬들은 거액을 들여 제품을 구매하고는 투표를 마치고 제품을 대신 버려주는 일꾼을 고용하기도 했다. 당시 버려진 제품들만 대략 30만여 병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베이징광전총국은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 중단을 명령했다. 결국 ‘청춘유니3’은 파이널 미션 방송과 데뷔조 선발을 앞둔 상태에서 모든 녹화를 중단했다.
‘청춘유니3’ 사태를 시발점으로 중국 당국은 본격적인 자국 연예계 검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연예인 팬덤이 단순히 과한 애정을 표현하는 데에 그쳤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하기 시작하면서 연예인을 중심으로 군대 같은 집단행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이에 8월부터 중국은 오디션 프로그램 통제 강화에 들어갔다. ‘인기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좋아하는 멤버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가 팬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들의 결집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목격한 중국 당국이 아이돌 팬덤을 최우선적으로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7월에는 중국판 ‘연예계 미투(Me Too) 운동’의 가해자로 몰렸던 엑소 출신의 가수 크리스 우(우이판)의 사건이 불거지면서 중국 당국의 경계심에 불을 지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연예인 지망생, 일반인 여성들을 다수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그의 사건을 두고 일부 극성팬들이 비밀 단체 대화방에서 집단행동을 모의한 사실이 적발됐던 것.
크리스를 체포한 경찰서 앞에서 석방 시위를 벌이거나 그가 이송될 때를 덮쳐 탈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글들이 공개되면서 팬클럽에 대한 중국 당국의 제재가 이뤄졌다. 중국의 대표적인 소셜미디어(SNS)인 웨이보에서 크리스 및 그의 소속사의 공식 계정과 대형 팬 페이지 계정까지 모두 폐쇄하는 한편, 초반에 그를 옹호하는 글을 썼던 동료 연예인에 대해서도 계정 삭제 조치를 내렸다.
8월부터는 연예인과 기획사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검열을 진행했다. 국내에서는 이른바 ‘기록말살형’이라고 불리는, 중국 당국이 지목한 문제 연예인들에 대한 정보가 온라인상에서 모두 사라진 것이다. 먼저 2019년부터 라이징 스타로 주목 받아왔던 인기 배우 겸 가수 장저한(장철한)이 2018년 야스쿠니 신사에서 찍은 사진으로 뒤늦게 논란이 일면서 ‘국가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는 낙인이 찍혔다.
이에 그를 모델로 기용했던 수많은 브랜드가 전속 계약을 해지했고, 그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 목록에서 장저한의 이름이 사라졌다.
드라마 ‘황제의 딸’의 제비로 유명한 배우 자오웨이(조미)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1993년부터 꾸준히 쌓아올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자오웨이의 이름이 모두 사라졌다. 장저한과 달리 자오웨이의 경우는 명확한 이유조차 밝혀지진 않았다. 그러나 평소 친분이 있고 재산 형성에 도움을 준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기 시작하면서 자오웨이도 이 사태에 얽힌 것이 아니냐는 추측만 난무했다.
9월 2일 광전총국에서는 이 같은 연예계 제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 가운데 불법을 저지른 연예인을 퇴출하거나 고가의 출연료 금지, 종사자 관리에 대한 강화 정도는 바람직한 지시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과 스타 자녀들이 출연하는 예능 및 리얼리티 방송의 전면 금지와 팬덤의 ‘과한 오락성 추구’를 배격한다는 문구였다. 여기서 과한 오락성이란 K팝을 포함해 중국 연예인 팬덤이 선호하는 ‘예쁜 남자(娘炮‧닝파오)’의 유행과 이를 토대로 한 브로맨스, BL 등의 장르 소비를 가리키며 이를 정책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또 연예인을 상대로 진행하는 조공(생일이나 앨범 발매, 신작 공개 등을 앞두고 팬들이 선물을 전달하거나 홍보 광고를 하는 일) 등 팬덤 문화를 정면으로 겨냥해 이 역시 금지의 대상으로 올랐다. 9월 5일 116만여 개에 달하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팬클럽 웨이보 계정이 정지된 것도 그의 생일을 맞아 ‘축하 비행기를 띄우자’는 팬들의 모금 활동을 감시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이튿날인 9월 6일에는 아예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EXO, NCT, 블랙핑크, 아이유, 태연 등 K팝 스타들의 웨이보 팬클럽 및 팬페이지 계정이 대거로 정지되면서 중국 당국의 제재 여파가 K팝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한 차례 한한령으로 몸을 사렸던 국내 엔터업계는 중국의 이 같은 조치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주로 배우들에게 타격이 있었던 한한령과는 달리 이번엔 K팝 그룹에 집중 포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중국 시장을 노리고 중국 멤버들을 대거로 영입하거나 아예 중국 활동만을 위한 그룹을 따로 만들어왔던 엔터사들은 현 상황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다면 대량 구매를 금지한 음반 판매량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그 외엔 아직까지는 중국 내 팬클럽에 대한 조치가 더 강한 만큼 단기간에 K팝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팬덤의 위축이 곧 중국 시장 내 한국 연예인들의 위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브랜드 모델 기용 같은 연예산업 외의 분야에는 장기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실제 국내 엔터 사업 자체에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전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연예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정부 정책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중국 시장을 떠나 미국·유럽·일본 등 다각도로 진출을 모색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 최근까지 국내 엔터업계는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중국 외 국가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 온 4세대 K팝 그룹을 중심으로 한 새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둬 왔다.
일부 지역에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앞선 관계자는 “중국 시장만을 겨냥한 엔터사라면 타격이 불가피하겠지만 한한령과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방송·연예계가 다양한 생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이전처럼 쉽게 (중국에) 휘둘리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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