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 결과 놓고 신 회장과 어피너티 다른 해석…어피너티, 투자금 회수 위해 상장 후 매각 추진 가능성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된 재무적 투자자다.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교보생명 지분 24%를 매각할 때 신창재 회장이 '백기사'로 끌어들인 투자자들이다.
어피너티는 신 회장이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상장)를 하기로 한 약속을 어겨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며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하고 그 다음 달에 주당 가격 40만 9912원(총 2조 122억 원)에 사달라고 요청했다. 신 회장은 당시 어피너티의 풋옵션 행사를 무효라고 주장하며 주식가치 평가를 거부했다. 이에 어피너티가 2019년 3월 ICC 국제중재를 신청했다.
ICC 중재법정은 어느 한쪽이 주식가치 평가기관을 선정하지 않을 경우, 이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 계약에 명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 현행법을 따를 때 신창재 회장에게 어피너티가 제출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하라고 명령할 권한이 없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 측과 어피너티 측은 각자 서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결을 해석하고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ICC 중재는 비공개 단심제로 운영되고, 중재결정의 실질적 이행은 각국 법원의 집행력에 의존한다. ICC가 어피너티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 회장에게 주당 40만 9912원에 지분을 매수하라고 주문하더라도 한국 법원을 통해 이를 강제할 수 없다면 중재 결정이 휴지조각이 된다. 결국 신 회장이 풋옵션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IPO 외에는 어피너티가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문제는 어피너티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등 다른 기관 투자자들도 투자금 회수가 장기간 어려워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현재 다른 상장 생명보험사 시장가치를 감안할 때 교보생명이 IPO를 하더라도 20만 원대를 넘는 주당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낮아지는 셈. 이에 따라 일단 IPO를 추진하고 이후 기관투자자들이 연합해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드는 방법이 가능할 수 있다.
교보생명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5명, 기타비상무이사 1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내년 초 주총에서는 사외이사 3명의 임기가 종료된다. 모두 신창재 회장 측에 우호적인 이사로 분류된다. 신 회장 일가의 교보생명 지분은 36%다. 기관투자자들이 연합한다면 과반 의결권도 가능해 내년 주총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사외이사 선임을 시도할 수 있다. 사외이사 3명이 기관투자자에 유리한 인물로 바뀌면 이사회에서 신 회장 측 의결권은 4석으로 과반에 미달하게 된다.
풋옵션 행사가 어렵다면 일단 이사회에서 상장을 밀어붙이고 새로운 대주주에 시가 대비 30~5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기관투자자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지다. 신창재 회장으로서는 경영권을 잃게 되는 시나리오다. 생명보험업계 경영환경이 쉽지 않지만, 교보생명은 업계 2~3위를 다투는 데다 수익성 면에서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하나금융이나 우리금융, 한국금융지주 등 대형 생보사를 갖지 못한 금융그룹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매물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우리금융의 경우 교보생명을 인수하면 자회사인 교보증권까지 가져올 수 있다. 증권사가 없는 우리금융으로서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한편 중재에서 원하는 결론을 얻어내지 못한 어피너티 측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다만 소송이 길어지는데 따른 어피너티 측의 기회비용도 상당할 수 있다. 설령 소송에서 일방적인 풋옵션 행사를 인정받더라도 적정 가격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역시 다른 대주주와 연합해 상장 후 경영권 매각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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