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연기·1군 확진자 발생·도쿄올림픽 등 ‘하루 6시간’ 뛰어도 빠듯한 일정…팀에 악영향 불 보듯
여기에는 '더블헤더(Double Header)'라는 지뢰가 숨어있다. 더블헤더는 두 팀이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연달아 두 경기를 치른다는 의미의 야구 용어다. 프로야구는 폭우나 폭설 등 불가피한 사유로 경기가 순연되거나 노게임이 선언된 경우, 정규시즌 일정을 무사히 치르기 위해 더블헤더를 편성하곤 한다. 더블헤더는 일반 경기 요금의 1.5~2배를 받기 때문에 미국에선 '트윈 빌(Twin Bill)'이라 부르기도 한다.
KBO리그도 코로나19 여파로 올 시즌 유독 많은 더블헤더를 치르고 있다. 8월 중순까지는 혹서기 날씨를 고려해 더블헤더를 편성하지 않았지만, 8월 말부터는 한 팀이 일주일에 최대 한 번은 치를 수 있게 했다. 일정이 더 뒤로 밀리는 걸 이대로 방치할 수 없어서다.
#부랴부랴 끼니 때우고 또 경기
9월 1일 일요일 잠실구장. 이날 맞대결을 펼친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이른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2경기를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홈팀 두산 선수단은 낮 12시경 모여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직은 뙤약볕이 뜨거운 시간이었지만, 하루 2경기를 치르려면 제대로 된 워밍업이 필수다. 원정팀 KIA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 오후 1시 넘어 구장으로 출근해 각자의 루틴대로 경기를 준비했다.
오후 3시,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과 함께 시작된 1차전은 두산의 5-0 완승으로 끝났다. 선발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9회초 2사까지 노히트노런 호투를 하면서 경기가 빨리 진행됐다. 비록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놓고 KIA 김선빈의 안타가 나와 대기록은 무산됐지만, 미란다는 완봉승을 달성했다.
이날 1차전이 끝난 시간은 오후 5시 54분이었다. 경기 시간이 3시간도 안 걸렸다. 평소 같으면 빠른 종료에 기뻐하며 짐을 싸고 퇴근해야 하지만, 양 팀 선수들은 그럴 수 없었다. 더블헤더 2차전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은 미란다의 완벽에 가까운 투구와 그로 인한 승리의 기쁨을 금세 지우고 새 경기를 시작하는 상황. KIA 역시 '하루에 2패'를 당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심기일전해야 했다.
다음 경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 정도. 선수들은 부랴부랴 끼니를 때웠고, 코칭스태프는 2차전 선발 라인업을 작성하며 새로운 전략을 구상했다. 그리고 오후 6시 30분 2차전이 속개됐고, 약 3시간 뒤인 오후 9시 40분 KIA의 3-2 역전승으로 마무리됐다. 두 팀의 경기 전 준비와 경기 후 정리 시간을 빼더라도 하루에 치른 경기 시간만 총 6시간 4분에 이른 셈이다.
이런 풍경이 잠실구장에서만 벌어진 건 아니다. 이날 인천 SSG랜더스필드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도 더블헤더가 열렸다. 인천에선 NC 다이노스와 SSG 랜더스가 사이좋게 1승 1패를 나눠 가졌고, 대구에선 삼성 라이온즈만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1승을 가져갔다. 2차전이 급작스러운 비로 취소된 탓이다. 심지어 9월 12일에는 잠실(두산-LG 트윈스), 광주(KIA-NC), 수원(KT 위즈-SSG), 대전(한화 이글스-삼성), 부산(롯데 자이언츠-키움) 등 5개 구장에서 모두 더블헤더가 편성돼 KBO리그 사상 최초로 하루에 10경기가 펼쳐진다.
#역대 가장 힘든 시즌 예고
더블헤더는 야구팬에게 심심치 않은 화젯거리를 제공한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하루에 두 번이나 볼 수 있다는 게 큰 즐거움일 수 있다. 문제는 반복되는 더블헤더가 선수단의 체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KBO가 웬만하면 '더블헤더' 카드를 꺼내지 않고 '월요일 경기'를 비롯한 다른 대안을 먼저 찾았던 것도 이런 이유다.
그렇다면 KBO리그는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더블헤더를 치르게 됐을까. '코로나19'라는 전 세계 공통의 변수가 첫 번째 이유다. KBO리그 역시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지난해부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지난해 정규시즌 개막은 원래 예정됐던 3월 28일에서 한 달이 더 밀린 5월 5일로 변경됐다.
문제는 '144경기 완주'였다. 유·무선 중계권료와 구장 광고료, 입장 수입 등 여러 이슈를 고려했을 때, KBO리그 각 구단은 144경기 체제의 페넌트레이스를 모두 마쳐야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개막이 늦어지면서 늦가을 혹은 초겨울까지 정규시즌이 끝나지 않을 위기에 놓였다. 경기 수 축소를 막고 싶었던 KBO와 10개 구단은 결국 더블헤더를 되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올 시즌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정규시즌은 정상적으로 개막했지만, 각 구단 주축 선수들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해 7월 말부터 3주 동안 리그를 중단해야 했다. KBO는 개막 초반부터 우천 취소 경기를 더블헤더로 진행해 추후에 새로 편성해야 할 경기를 줄이는 데 힘썼다.
그럼에도 전반기가 끝나가던 시점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왔다. 7월 초 NC 일부 선수가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숙소에서 외부인과 술자리를 하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사건이 터졌다. 이로 인해 NC 1군 선수단이 대거 밀접접촉자로 분류됐고, 두산 1군 선수단에서도 또 다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파장이 더 커졌다. 결국 KBO가 전반기를 일주일 당겨 마감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전반기 조기 종료로 인해 후반기 일정이 더 빠듯해진 건 물론이다. KBO리그는 결국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말부터 더블헤더를 강행하기로 방침을 수정했다. 대신 모든 경기에서 연장전을 없애고 정규이닝만 치르는 대안을 마련했다. 선수들의 체력 소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의도다. 후반기 들어 '9이닝 무승부' 경기가 속출한 이유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블헤더 수가 더 늘었다. 지난 시즌엔 총 17번 더블헤더가 열렸지만, 올해는 벌써 지난해 숫자를 넘어섰다. 심지어 이미 더 많은 더블헤더가 편성돼 있고, 추후 우천 취소 경기가 나오면 더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체력적으로 역대 가장 힘든 시즌을 예고한 모양새다.
#깜짝 선발 등장은 장점이지만…
연일 계속되는 더블헤더를 바라보는 현장 야구인들은 하나같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언급한 대로 더블헤더는 적지 않은 체력 소모를 필요로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경기 시작 2~3시간 전부터 야구장에 나와 몸을 푼다. 그리고 평균 3시간 정도 걸리는 경기를 소화한다. 이런 일정을 일주일에 6일씩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울 수 있다. 대장정의 끝을 향해 달리는 시즌 후반에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런데 더블헤더가 있는 날에는 더 일찍 야구장에 나와 더 늦게 퇴근해야 한다. 타임아웃이 없는 야구의 특성상 시간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도 알 수 없다.
물론 더블헤더는 일주일에 팀당 최대 한 번까지만 편성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선수들을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럼에도 현장 야구인들은 더블헤더가 달갑지 않다. '루틴의 스포츠'인 야구에서 더블헤더는 선수들의 일상적인 루틴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여파로 컨디션에 악영향을 미쳐 전체적인 경기 수준까지 떨어뜨리는 장애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KBO리그는 일주일 중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빠짐없이 6경기를 소화한다. 리그에서 정한 공식 휴식일은 월요일뿐이다. 선발 로테이션은 물론이고, 불펜 투수의 투구 수나 기용 간격, 주전 야수들의 체력 안배 등 팀 운영 계획이 모두 그 전제 아래서 짜인다. 그런데 더블헤더가 편성된 주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체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일단 마운드 구성이 까다롭다. 보통 화요일 등판한 선발투수는 나흘 휴식 후 일요일 경기를 책임진다. 그렇게 해서 5인 선발 로테이션이 돌아간다. 하지만 더블헤더가 편성된 주에는 선발 한 명이 더 필요하다. 감독이 임시 선발을 투입해야 한다.
물론 예비 선발 투수가 많은 구단이라면 큰 걱정은 없다. 6~7명 로테이션을 짜거나 선발 경험이 있는 다른 투수가 대기하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팀이 수준급 국내 선발 투수 기근에 시달리는 게 KBO리그 현실이다. 선수층이 얇은 팀일수록 자연스럽게 볼멘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깜짝 선발의 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례로 롯데는 9월 7~12일 7연전이 편성되자(12일 더블헤더) 8일 대구 삼성전 선발로 신인 왼손 투수 김진욱을 투입했다. 올해 신인 2차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데뷔한 김진욱은 전반기에 선발 투수로서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김진욱에게 임시 선발 중책을 맡겨 가능성을 테스트했다. 도쿄올림픽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열아홉 살 루키 김진욱이 선발 투수로 깜짝 복귀했다는 점만으로도 야구팬들에겐 화제가 됐다.
더블헤더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선수들의 등장과 활약을 선물하기도 한다. 특히 1군 확대 엔트리가 시행되기 전인 8월까지는 '더블헤더 특별 엔트리'가 운영됐다. 더블헤더가 진행되는 날에 한해 선수 1명을 1군 엔트리에 추가로 등록할 수 있는 제도다. 2군에서 맹활약했지만 1군에 자리가 없어 못 올라왔던 선수가 대부분 이 제도를 통해 출전 기회를 얻었다. 더블헤더의 순기능 중 하나다.
그래도 이런 장점은 어디까지나 야구팬들의 시각일 뿐이다. 현장에선 어떻게든 더블헤더를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다만 올 시즌 전 구단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는 게 문제다. 벌써부터 역대 가장 늦은 정규시즌 종료를 예고하고 있어서 더 그렇다. 일각에선 "이러다가 11월에도 야구를 하겠다", "한국시리즈가 12월에 열리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규시즌 종료를 앞당기려면 더블헤더를 늘리는 게 답인데, 현장은 "더는 물러설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해결책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난제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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