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언론, 정부부처, 한나라당조차 짐작하지 못했던 ‘깜짝 카드’다. 뉴시스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지만 그 인연은 그렇게 길지 않다. 박 장관은 성균관대학교 교수 시절이던 2004년 탄핵역풍에 시달리던 한나라당의 영입 케이스로 비례대표 9번을 받고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 대통령과 인연의 시작은 박 장관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아 한나라당 대선 경선 규정을 다듬는 일을 하면서 몇 번 스쳐지나간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교수 시절부터 연구실에 간이침대를 두고 생활해올 정도 일벌레인 데다 윗사람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뛰어난 점 때문에 이때부터 이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 정치권 인사들의 평가다. 실제 그는 강 대표의 딸 결혼식 당시 한 방송사가 유명 하객들을 찍는 것을 보고 국회의원답지 않게 기자들과 대판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또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촛불시위에 대해 “민주화의 적폐”라고 비난하는 등 ‘주군’을 위해 총대를 메는 스타일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부혁신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 팀장에 박 장관이 내정됐다는 점이 이 대통령이 그 전부터 박 장관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면서 “이 정부 출범 직후 정부부처 개편과 각종 규제개혁이 핵심 정책이었는데 이 일을 외부사람이나 다름없던 박 장관에게 맡겼다는 것은 이미 이 대통령이 능력을 인정하고 내 사람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사 발표가 더디기로 소문난 이 대통령이 정권 출범 당시 청와대 수석들을 놓고 고민할 때도 이미 박 장관의 국정기획수석 내정은 확정됐다고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그때부터 신망이 두터웠다”면서 “칭찬에 인색한 이 대통령이 박 장관이 만들었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찬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에 대해 이 대통령이 박 장관을 자신과 비슷한 기억이나 성향을 공유하는 인물로 보고 친밀함을 느낀다는 해석도 있다. 박 장관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름난 일벌레다. 아침밥을 5시 30분에 먹고 퇴근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 주말도 없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청와대 근무 당시 단 하루도 쉬지 않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을 맡고 있는 요즘도 주말에 비서진에게 연락 없이 나와 일하기로 유명하다.
이 대통령 역시 지금도 하루에 몇 시간 자지 않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해외 순방시에는 비행기 탑승 때부터 아예 목적지 시간에 맞춰 생체리듬을 바꿔 시차를 최소화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무한 신뢰를 보낸다. 이번에 기획재정부 후보자 물망에 올랐던 한 인사는 능력은 출중하지만 이러한 이 대통령의 성향과는 달라 탈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박 장관도 이 대통령과 비슷한 빈농 출신이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23회)를 합격하고, 미국 하버드대 정책학 박사를 따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유신반대 투쟁으로 두 차례 수감 생활을 하는 등 당시 시대정신과 동떨어지지도 않았다. 박 장관은 1997년 11월에는 명동성당 구국성명서 작성 배포 혐의로, 1975년 4월에는 서울대 4·3 가두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수감됐다. 이 대통령도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을 맡았을 당시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를 이끌었다가 국가 내란 선동죄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살이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무한 신뢰로 박 장관이 재정부 장관에 내정됐지만 재정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박 장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재정부의 핵심인 ‘모피아’(옛 재정경제원)나 EPB(옛 경제기획원) 어느 쪽도 아닌 인물, ‘재정부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인물이라는 뜻이다.
박 장관은 관료 생활 자체가 길지 않다.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들어선 뒤 서기관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여기에 재정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12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재무부 세제실 사무관으로 2년간 근무한 것이 유일하다. 공직생활 전체를 놓고 보면 수습사무관 시절을 경남도청과 창원군청에서 보낸 뒤 총무처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거쳐 감사원에서 일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받은 뒤 재무부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온 뒤에는 산업자원위원회과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을 해와 재정부와는 인연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당초 재정부 장관 후보자 명단이 회자될 때 박 장관은 포함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애초 거론됐던 유력 후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줄줄이 제외되면서 당초 6일 오전에 발표하려던 개각 명단이 오후에서야 발표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발표 당시 재정부 관료들의 첫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 장관이 거시경제 전반을 조율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정책에 정통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아니냐. 경제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세제실 경력밖에 없고 하버드대 박사학위도 정책학이라는 점에서 박 장관의 재정부 장관 내정은 뜻밖”이라면서 “재정부 장관은 국가 경제 사령탑인데 박 장관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달라서 윤증현 장관만 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정부 당국자도 “경제정책뿐 아니라 주요20개국(G20)을 둘러싼 국제금융 업무도 다뤄야 하는 것이 재정부 장관의 자리인데 과연 이러한 이슈를 잘 다룰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부하 직원들도 박 장관이라고 하면 경제정책보다는 정부부처 개편이나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등을 주도했던 정치인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반면 박 장관 정도 돼야 현 상황에서 재정부 장관직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재정부 장관은 과거 경제부총리를 겸임했을 정도로 경제부처의 큰 형님 역할을 맡고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경제정책조정회의 의장도 재정부 장관이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면서 국가 경제정책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정권의 핵심인사가 아니면 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첫 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현 산은지주 회장의 경우 이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받는 인물인 데다 행시 8회로 연륜도 높아 장악력이 높았다. 두 번째 재정부 수장이었던 윤증현 장관은 이 정부에서는 비록 지분이 없지만 ‘따거’(큰 형님)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점과 여당은 물론 야당 등 정치권의 선호도가 높고, 시장의 신뢰가 크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박 장관의 경우 이러한 강점은 없지만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이 최대 장점이라는 것이다. 실제 현재 경제부처 장관들은 대부분 박 장관보다 행시 선배이거나 나이가 많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행시 22회이고,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행시 22회로 박 장관보다 행시 1기수 위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3회지만 박 장관보다 나이가 두 살 많다. 여기에 최중경 장관과 김석동 위원장은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가장 아끼는 후배로 영향력이 적지 않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보면 알겠지만 각 경제부처 수장들의 정책 관련 발언들이 혼선을 이루는 일이 많을 정도로 각 장관들의 각개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유가나 물가, 환율을 놓고 정부가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을 정도”라면서 “이렇게 혼선이 심해진 경제부처들 간 회의를 주재하고 이견을 모아서 한국 경제의 큰 틀을 짜는 재정부 장관을, 이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있는 박 장관 외에는 맡을 수 있는 인물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박 장관이 청문회를 순탄하게 통과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 야당이 박 장관의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를 호락호락 채택시켜주지 않겠다며 벌써부터 칼을 갈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병역기피와 위장전입, 논문 이중게재 의혹이 제기됐으나 경과보고서가 채택되면서 장관에 취임했다. 박 장관은 고혈압을 이유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점 때문에 지난 청문회에서 병역기피 의혹을 받았다. 박 장관은 당시 정밀검사 결과 격한 훈련시 어려움이 있다는 병무청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1996년에 5개월 사이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와 강동구 명일동 아파트로 주소를 여러 번 옮긴 것에 대해 위장전입 논란이 제기되자 주민등록 정리가 늦었다고 설명했고,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대해서는 동일 논문도 이중 언어(한국어·영어)로 된 논문은 출간 가능하다는 학회장의 서명을 받아서 넘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에도 야당이 박 장관의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를 채택해준 것은 당시 함께 내정됐던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와 신재민 문화체육부 장관 내정자,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 등이 대거 낙마한 영향이 컸다. 김 총리 내정자는 박연차 회장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과 거짓말, 신 장관 내정자는 부동산투기와 위장전입, 정당법 위반, 특혜시비, 이 장관 내정자는 부인의 쪽방촌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다. 이들이 대거 낙마하면서 상대적으로 ‘흠’이 적었던 박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만큼 야당의 총구가 모두 박 장관을 겨누고 있다. 개각 발표가 나자마자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일제히 ‘회전문 인사’, ‘측근인사’, ‘함량미달 인사’라며 박 장관을 겨냥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인사청문회를 통해 철저한 검증에 나서겠다며 박 장관의 아킬레스 건 찾기에 돌입한 상황이다. 박 장관으로선 ‘대임’을 수행하기 전 넘어야 할 산이 높은 셈이다.
김서찬 언론인
안 맞는 코드 빼고 총선주자 빼고…
애초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로 맨 처음 청와대와 정부부처, 언론에서 돌아다닌 이름은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백용호 정책실장, 윤진식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박 전 수석의 경우 전형적인 EPB 출신으로 경제정책과 예산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이 대통령의 의중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백 실장은 이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지만 교수 출신으로 관료 경험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국세청 정도는 다룰 수 있지만 재정부를 컨트롤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유력한 카드는 윤 의원이었다. 윤증현 장관(행시 10회)과 비교해 행시 기수 차이가 별로 없는 12회인 데다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재정부 출신에 재정부 관료들이 존경하는 선배로 인망도 높다. 하지만 다음 총선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역구가 단단한 윤 의원을 빼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에 이 대통령이 윤 의원 카드를 접었다는 후문이다.
이들 세 사람의 이름이 사라지면서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허경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이 물망에 올랐다. 모두 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어서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경우 금융위원장을 맡은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데다 저축은행 사태 때문에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이유에 밀렸다. 허 대사의 경우 이 대통령의 의중을 아는 청와대 경제 핵심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약점에 발목이 잡혔다.
임종룡 차관도 막판에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행시 24회로 재정부 장관을 맡기에는 조금 젊다라는 지적에 제외됐다. 특히 임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할 경우 재정부 1급이 대거 물갈이되는 사태가 발생해 재정부 내부에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재정부 1급 중에서 강호인 차관보(24회), 구본진 차관보(24회), 박철규 기획조정실장(24회) 등이 임 차관과 동기다. 주영섭 세제실장도 23회로 임 차관보다 1기수 선배여서 이 경우 사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1급 중에서는 최종구 차관보(25회)와 김동연 예산실장(26회), 김익주 FTA국내대책본부장(26회) 등 세 명만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히 류성걸 2차관이 23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 차관 승진시 재정부 2개 차관직마저 공석이 되는 등 지도부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