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제한 업종인 대형전자판매점에서 지원금 사용 정황…행안부 “자료 없고 환수 법적 근거도 없어”
#자료 제공 법적 검토하겠다더니 돌연…
지난 9월 2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은 전국 각 지자체에 소재한 대형전자판매점의 재난지원금 결제 현황 자료를 행안부에 요구했다. 이에 행안부는 특정 기업만 자료를 주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회신했다. 자료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돌연 같은 달 8일 자료를 갖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8월 18일 일요신문도 관련 자료를 행안부 재정정책과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같은 달 31일 해당 자료를 생산·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정보 부존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허은아 의원실 한 보좌진은 “행안부 관계자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배째라’식으로 나오고 있다”며 “자료가 없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대형전자판매점이 재난지원금 사용 가맹점으로 등록돼 결제가 이뤄졌다고 문의를 받아 확인한 적이 있다”며 “사용제한 업종 기준을 고의적으로 회피해서 가맹점을 등록한 것은 카드사보다는 그런 부정한 행위를 한 곳에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일요신문과 허 의원실에서 관련 자료를 요구한 배경은 재난지원금이 사용제한 업종인 대형전자판매점에 사용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지역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했다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지급된 국민지원금과 달리 지난해 지급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본사 직영점뿐만 아니라 개인 사업자가 대기업과 판매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대리점에서도 사용이 제한됐다.
행안부의 허술한 시스템 구축과 운영이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긴급재난지원금은 8개 카드사를 통해 사용제한 업종을 제한했다. 올해는 사는 곳의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과 연동해서 국민지원금 정책을 시행 중이다. 전국 지자체들은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카드사와 연계해 지역화폐 가맹점을 자동 등록해오고 있다. 카드사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연 매출, 주소지, 업종 등을 통해 재난지원금 정책 관련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대형전자판매점은 본사 직영점과 대리점을 구분하기 위해서 주소지로만 사용처 제한을 해왔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의도적으로 노린 경우 재난지원금을 통한 결제가 이뤄질 수 있다.
재난지원금이 총 25조 3000억 원 규모로 지급된 것을 고려하면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 등 대형전자판매점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 결제됐을 것으로 추론된다. 삼성·LG전자의 100% 자회사인 삼성전자판매와 하이프라자는 각각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을 운영 중이다. 두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3조 2977억 원, 2조 8905억 원에 이른다.
#모르는 걸까, 알려고 하지 않는 걸까
행안부는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과 일요신문에 관련 자료가 없다고 했지만, 지난해 8개 카드사로부터 자료를 받아 홍보 보도자료를 지속적으로 배포했다. 긴급재난지원금 64%가 영세가맹점에서 사용됐고, 전통시장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는 자료가 한 예다. 같은 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긴급재난지원금 등 전례 없는 정책수단을 총동원했고, 이로 인해 지난 2분기에는 소득 분위 전 계층의 소득이 늘어났다”며 “하위계층의 소득 증가율이 더 높아져 분배지수가 개선되는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정책연구용역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했다. 지난해 12월 KDI는 8개 카드사의 자료를 토대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코로나19로 위축된 가계소비가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이후 회복되기 시작했고, 지원금 사용가능 업종에서 전체 투입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보고서 골자다. 이 같은 홍보용 보고서에 세금 1억 4700만 원이 투입됐다.
이와 관련, 행안부 한 관계자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8개 카드사로부터 업종별 사용현황과 가맹점 매출 규모별 사용현황 자료만 받았다. 대형전자판매점 자료를 받진 않았다”면서 “카드사에 대형전자판매점 관련 자료를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잘못 사용된 재난지원금을 환수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에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재난지원금, 국민지원금은 법률적 근거 없이 행정부의 예산안 편성, 입법부의 예산안 확정 등의 절차를 거쳐 지급됐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행안부 다른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부정 사용해도) 대형전자판매점에서 결제된 내역을 파악할 수 없고,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재난지원금을 통해 소비 진작 효과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설명한 정책 취지를 지키진 못한 것”이라며 “행안부는 1차 긴급재난지원금 14조 원을 뿌려놓고, 어디에 쓰였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해서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 조치를 해야 하지만, 어떤 제도 개선도 없이 또다시 11조 원 규모의 국민지원금을 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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