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눈을 압도하는 굉장한 볼거리만이 여행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소소한 풍경에도 감동을 하며 일상과는 다른 정신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쪽이라면 다양한 숲길이 매력적인 전남 담양을 부담 없이 추천하겠다.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다. 대숲이 주는 특별함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나무는 숲을 이루어 소리로 마음을 치유한다. 음이온 발생량이 높고 이산화탄소 제거 능력이 좋아서 대숲에 들어가면 상쾌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한여름의 대숲은 습도가 높아서 끈적끈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대숲에서 시원함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 비밀은 소리에 있다. 대나무잎을 훑고 지나는 바람의 소리. 그것을 듣노라면 봄의 노곤함도 여름의 무더위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담양에는 큰 대숲이 두 개 있다. 죽녹원과 봉서리대숲이다. 죽녹원은 담양군에서 성인산 자락에 조성한 대숲이다. 2003년 5월 문을 연 이 대숲은 ‘철학자의길’과 ‘죽마고우길’ 등 여러 주제의 길들을 만들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서 둘러보는 재미를 높였다.
반면 언론계에 종사했던 신복진 씨가 30여 년 전부터 고지산 골짜기에 대나무를 심어 만든 봉서리대숲은 죽녹원에 비해 다소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자연미가 느껴진다. 봉서리대숲은 죽녹원과는 달리 읍내와 다소 떨어져 있는 산골에 자리해 보다 한적한 편이다. 사색을 즐기기에는 봉서리대숲이 낫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지로도 유명한 봉서리대숲에는 요즘 죽순이 한창 올라올 때다. 왕죽과 맹종죽 등 여러 종의 대나무들이 이 숲에 자리를 틀고 있는데,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죽순이 불쑥불쑥 솟아나서는 며칠 후면 수 미터 높이로 키를 키워 버린다. 그래서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어쨌거나 죽순의 성장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용소로 방향을 잡는다. 담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바로 여기다. 용소는 영산강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장소다. 영산강은 이곳 용추봉(523m) 용소에서 발원해 담양, 광주, 나주, 영암 등을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낙동강과 함께 오염이 많은 강으로 지적되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그 시원인 용소의 물은 깨끗하기만 하다.
용소가 자리한 용추봉 일대는 가마골생태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가마터가 많아서 가마골이라고 한다. 용소는 이 가마골계곡 최상류 폭포수가 만든 깊은 웅덩이다. 그 폭포수가 떨어지는 벼랑이 용이 꿈틀대는 모양처럼 생겼기에 자연스럽게 그 웅덩이에 용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소 옆에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서부터 시작하는 트레킹이 일품이다. 용소 바로 위로 시원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그곳이 기점이 된다. 출렁다리를 건너 사령관동굴을 돌아 용소로 돌아오는 길과 시원정에서 뒤편으로 신선봉과 용연1·2폭포를 돌아오는 길이 있다. 모두 2㎞ 안팎의 거리로 2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 요즘 가마골계곡 일대는 산철쭉이 피어 아주 아름답다. 산철쭉은 우거진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3~4m 높이까지 자란다. 보통의 철쭉과는 달리 꽃잎이 연분홍으로 맑은 점이 특징이다.
또한 용소를 찾아가는 길은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담양호를 지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담양호를 따라 1㎞ 남짓 달리는 도로가 서정적이다. 담양호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철쭉이 흐드러졌다. 담양호를 지난 후 용소까지 이어지는 시골길도 일품이다. 논에는 자운영이, 과수원에는 복사꽃이 만발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이제 완연히 푸르러졌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숲길이 아니라 가로지만, 이 길에 발을 들이면 마치 큰 숲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담양읍에서 순창 방면으로 향하는 24번 국도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름드리 30m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2열로 도열을 하며 무려 8㎞나 늘어서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1970년대 초반 시범가로로 지정되면서 조성되었다. 나무가 자라면서 볼품없던 길은 어느덧 담양의 자랑이 되었다. 그런데 이 길은 자칫 없어질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도로확장 명목으로 나무들이 다 잘릴 뻔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결사반대로 나무를 지킬 수 있었다. 현재는 이 길 바로 위쪽으로 신작로가 나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속도를 버리는 길이다. 가속페달을 누르고 있던 발에서 힘을 덜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도 이곳에서는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 이 길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다. 바퀴가 아니라 두 발이 이 길의 진정한 주인이다. 자동차를 길 가장자리에 세우고 걷는 일, 그것이 이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해야 할 ‘의무’다.
담양이 자랑하는 관방제림을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관방제림은 메타세쿼이아 길과 가까운 천변에 자리하고 있는 숲이다. 사단법인 ‘생명의 숲’에서 주최한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지난 2004년 대상을 수상했다.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된 관방제림은 담양읍 남산리 동정마을부터 대전면 강의리까지 담양천을 따라 조성돼 있다. 관방제림에는 푸조나무와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등 185그루의 고목들과 그 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제법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제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심은 이 나무들은 이제 단순히 치수의 역할을 넘어서 숲을 이루며,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나무 울창한 제방을 걷다가 벤치에 걸터앉아 한담을 나누는 곳. 거기가 바로 관방제림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호남고속도로 장성JC→고창담양간고속도로→담양JC→88고속도로→담양IC→29번 국도→담양
▲먹거리: 담양 하면 떡갈비인데, ‘담양愛꽃’(061-381-5788)이라는 식당이 아주 잘 한다. 떡갈비가 간이 세지 않고 담백하다. 음식에 전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손님상마다 따로 밥을 지어 대접한다. 배깍두기, 물갓김치, 떡잡채, 간장게장, 단호박범벅, 장떡 등 달려 나오는 정갈한 반찬에 배가 다 부르다. 담양에서 광주 방면으로 29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현대자동차 담양출고장을 지나 SK주유소 옆에 있다.
▲잠자리: 금성산성 가는 길에 담양온천리조트(061-380-5000)가 있다. 담양경찰서 부근에는 골든리버모텔(061-383-8960)과 뉴캐슬모텔(061-383-9669) 등이 있다.
▲문의: 담양군청 문화관광과 061-380-3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