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서바이벌 데스매치 게임’…K팝, K좀비 이은 ‘K게임’ 신드롬도 기대
15일 열린 '오징어게임' 제작발표회에는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 박해수, 정호연, 허성태, 위하준이 참석했다. '오징어게임'은 인생의 막장에 몰린 456명의 사람들이 456억 원이라는 거금을 놓고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서바이벌 데스매치 게임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
도박빚으로 사채까지 뒤집어 쓰고 있지만 딸을 위해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아빠이고 싶은 기훈(이정재 분), 그런 그와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며 친형제처럼 지낸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지만 실체는 투자사 고객의 돈까지 손을 댔다가 거액의 빚을 지게 된 상우(박해수 분)가 공통의 목적을 두고 서로 협력하고 또 반목하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 소매치기로 먹고 살던 새터민 새벽(정호연 분), 폭력조직의 일원이었으나 조직의 돈에 손을 댔다 벼랑 끝에 몰린 덕수(허성태 분), 실종된 형의 비밀을 캐기 위해 게임 운영진 사이에 잠입한 강력계 형사 준호(위하준 분)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을 엿볼 수 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제목의 모티브가 된 '오징어'는 한국 골목 놀이 중 하나로 1980년대까지 많은 어린이들이 즐겨하던 놀이다. 맨 땅에 커다랗게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도형을 그려놓고 공격과 수비를 나눠 그 안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식이다. 황동혁 감독은 "우리가 어릴 적 골목이나 운동장에서 하던 어릴 적 놀이에 성인이 된 뒤 경제적 빈곤과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모여서 큰 상금을 걸고 참여하는 내용"이라며 "'오징어게임'을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제가 어릴 때 하던 놀이 중 가장 격렬한 육체적 놀이이기도 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면서 현대 경쟁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은유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 역할인 기훈 역의 이정재는 "굉장히 낙천적이면서도 고민이 많은 인물"이라고 캐릭터를 소개했다. 이제까지 멋있고 과묵하면서, 중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을 주로 맡아온 이정재는 기훈을 통해 긍정적이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없이 헐렁한 모습을 보여준다. 늙은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고 통장을 몰래 털어서 도박 자금을 마련했다가 한 번에 날려버리기도 하고, '싸대기'와 10만 원이 걸려있는 딱지치기에 목숨을 거는 철없는 아저씨 그 자체다.
이정재는 "기훈의 부모님은 몸이 편찮으시고 돈벌이는 시원치 않다. 그래서 상금이 크게 걸려 있는 이런 게임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럼에도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며 "사실 저도 작품을 다시 보고 한동안 너무 웃었다. '내가 저렇게 연기를 했나?' '쟤(기훈)는 뇌가 없나?' 하면서 봤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한동혁 감독도 "항상 너무 멋있게 나오셔서 한 번 망가뜨려보고 싶은 못된 마음이 들었다"면서도 "멋있는 연기를 할 때도 가끔씩 보이는 인간미를 본격적으로 제대로 드러내보면 어떨까 해서 특별히 모시게 됐다"며 그의 연기변신을 치켜세웠다.
기훈과 같은 동네에서 형제처럼 자랐지만 명문대와 증권가 엘리트라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되면서 조금 소원해 졌던 상우도 '오징어게임'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고객의 돈에 손을 댔다가 막심한 손해를 보게 돼 이를 만회하려 애쓰는 그를 기훈과 '이란성 쌍둥이'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는 게 황 감독의 이야기다. 상우 역의 박해수는 "사실 작품을 계속 연기하면서 제가 연기해야 하는 상우의 속마음을 읽기 어려워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그러면서 느낀 것은 상우가 오직 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과 결정을 따라갔다는 것, 그리고 상황이 발전하면서 상우가 심리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에 집중하시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 감독은 "이란성 쌍둥이는 한날 한시 같은 배 안에서 나왔지만 생긴 모습은 다르다. 상우와 기훈도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그 시절에 추억을 쌓은 한 가지 기억을 공유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라며 "그러나 결국 이들이 이 게임장 안에 결국 같은 추리닝을 입고 모이게 되면서 또 다시 같은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극도의 경쟁사회에서는 모두가 약자이며 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들을 두고 이란성 쌍둥이라는 말을 사용해 설명하려 했다"고 부연했다.
이번 '오징어게임'에서 첫 연기에 도전한 정호연은 미국 뉴욕에서 패션위크를 준비 중이다가 오디션 소식을 듣고 모든 일정을 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디션 영상을 보고 "실물을 보고 싶다"는 황 감독의 말에 곧바로 한국으로 달려 왔다고.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듯 첫 화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호연이 맡은 새벽이 한때 속해있던 폭력조직의 일원인 덕수 역으로는 조폭 연기로 유명한 허성태가 맡았다. 2011년 SBS '기적의 오디션'에 참가, 안정적인 연기 실력을 보여주며 35살의 나이에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그의 선택 역시 '오징어게임'에 맞먹는 도전이었다. 허성태는 "사실 '오징어게임'을 촬영할 때는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적의 오디션' 때도 한 스테이지를 떨어질 때마다 끝이었다"며 "그런 면에서 지금 '오징어게임'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 "제가 황 감독님과 '남한산성'을 같이 했었는데 그때 만주어 연기를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어 연기를 할 때 감독님이 어떤 디렉션을 주실까 궁금했다"라고 작품 출연을 결정하게 된 다소 독특한 계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감독님을 처음 뵀을 때 제게 '조폭 연기를 너무 많이 하셨는데 또 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하셨는데 제가 안할 이유가 없었다. 흥분을 가진 채로 작품에 임하게 됐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해 '오징어게임'의 운영진에 잠입하게 된 강력계 형사 준호 역의 위하준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가면남'들 사이에서 목소리만으로 시청자들을 홀릴(?) 수 있다는 장점으로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진과 참여자들이 잘 부딪치지 않는 특성상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제대로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던 위하준은 "준호가 등장하는 신들이 쉬운 신들이 없어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기도 했지만 다른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셔서 저는 약과였다"며 "다만 혼자 신을 이끌어가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들이 많아 부담이 됐지만 감독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잘 마무리 됐던 것 같다"며 황동혁 감독에게 공을 넘기기도 했다.
'오징어게임'은 총 여섯 가지의 골목 놀이를 모티브로 한 서바이벌 데스매치 게임이 매 화 벌어진다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2000년 '배틀로얄' 이후 다양한 유사 작품이 나왔던 반면 국내에서는 드라마화로까지 이어진 작품이 '오징어게임'이 최초라는 점에서다. 다만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첫 에피소드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과 모션 감지를 이용해 움직이는 이들을 탈락자로 판단, 제거한다는 소재가 2011년 연재된 일본의 만화 '신이 말하는 대로'의 첫 번째 에피소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따랐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 방식으로 알려진 일본의 '다루마 상가 코론다(달마님이 넘어졌다)'가 시작되고 움직인 학생들은 다루마 오뚝이의 센서에 포착돼 레이저로 살해당한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는 것.
이에 대해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게임'은 제가 2008년 처음 대본을 구상해 2009년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당시만 해도 낯설고 어렵고, 잔인해서 상업성이 있겠냐는 지적을 받았고 투자도 캐스팅도 되지 않아 1년 정도 준비하다 서랍 속에 넣어뒀던 작품"이라며 "이 작품을 찍을 무렵 '신이 말하는 대로'라는 작품과 첫 게임이 같다는 말을 들었지만 첫 게임만 같을 뿐 큰 유사점이 없다. '신이 말하는 대로'는 2010년대에 공개된 거라 우연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우선권을 따지자면 제가 원조이지 않을까"라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서랍 속 비운의 작품으로 남을 뻔한 '오징어게임'이 빛을 보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0여 년의 시간동안 우리 사회가 '오징어게임' 속 게임과 닮아갔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황동혁 감독은 "어떻게 보면 슬픈 이야기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코인 열풍이라든지, 이런 게임물이 어울리는 세상이 된 것 같다"며 "지금와서 이 작품을 다시 보여주니 '현실감이 든다' '너무 재미있다, 지금 시대 같다'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이 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적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시나리오를 확장해서 만든 것이 재작년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격렬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 작품을 보시면서 가상의 경쟁을 즐기는 것을 넘어 '이들은 왜 이렇게 경쟁해야 했는가' '우리는 왜 매일 치열하게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경쟁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과연 이 경쟁은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9월 17일 공개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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