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파운드리 선정 난항, 삼성전자 등판 가능성도 낮아…현대모비스 “아직 구체적인 계획 없어”
#현대차그룹의 반도체 내재화 추진 현황
올해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휩싸였다. IT 조사업체 미국 서스퀘하나파이낸셜에 따르면 올해 초 14주였던 반도체 리드타임(발주에서 납품까지 걸리는 기간)은 지난 7월 20.2주를 기록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은 감산에 돌입했고, 일본 도요타는 9월 생산량을 90만 대에서 50만 대로 줄이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도 올해 아산공장 가동 중단일수가 열흘이 넘을 정도로 피해가 만만치 않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의 주요 원인은 코로나19 델타 변이로 인한 동남아시아 공장 셧다운과 자동차 업계의 전략적인 오판, 크게 두 가지다. 올해 자동차 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영향으로 인해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반도체 발주를 줄였다. 그러나 업계 예상과 달리 올해 판매량은 증가세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업체의 총 생산량은 2019년 상반기 202만 8332대에서 2020년 상반기 162만 7534대로 줄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181만 4510대로 늘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라 켈리니우스 다임러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9월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1’에서 “일부 반도체 공급사는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라며 “반도체 수급난이 2023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통한 반도체 내재화를 선언했다. 고봉철 현대모비스 상무는 지난 3월 ‘현대모비스 전략 및 신기술 발표 컨퍼런스’ 행사에서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올해 1월에는 현대모비스가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했다. 당시 현대모비스는 공시를 통해 “반도체 사업 내재화를 통한 제어기 사업역량을 제고하고, 인재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업체를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현대모비스가 팹리스를 인수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팹리스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업체를 뜻하고,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의 설계도를 제조용 설계도로 만드는 업체다. 팹리스를 인수하면 현대모비스가 해당 업체를 통해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팹리스에 외주 형식으로 설계를 맡기게 된다.
현대모비스는 반도체 공장이 없으므로 설계를 완료한 후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겨야 한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생산 전문 기업을 뜻한다. 현대차그룹이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것인 만큼 국내에 생산 기지를 둘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해외에 생산 기지를 두면 최근 동남아시아 공장의 사례처럼 국제 정세에 따른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현대모비스가 단기간 내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차량용 반도체는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돼 설계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생산 가능한 국내 파운드리도 많지 않다. 현대모비스의 반도체 내재화 계획이 늦어지는 이유도 팹리스와 파운드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는) 사람의 안전과 연계되므로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내구성이 필요해 장기간의 품질시험 및 인증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종류는 수십 개에 달하는데 이 모든 것을 한 업체가 생산하기도 어렵다”라고 전했다.
이미 현대모비스가 협력 업체를 선정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급난으로 인해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현대차 재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등이 장악하고 있고, 국내 업체의 점유율은 높지 않아 대부분 물량을 수입해야만 한다.
이와 관련,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를 준비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없다”며 “계획이 구체화되면 그때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도체 강국이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는 산업 활성화를 위해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단 삼성전자가 아니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파운드리 업계를 활성화시켜야 미래 자동차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 7월 “12인치 웨이퍼 공정이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 외에는 파운드리 공정이 부재해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어 파운드리 기업의 투자·생산 동기가 크지 않으며 팹리스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생산을 거부해 해외에 생산을 위탁하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해 공급하면 국내 자동차 업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최소한 해외 정세 관련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와 이미지센서 ‘아이소셀 오토’ 등 일부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 전체 반도체 사업에서 차량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대대적 투자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또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는 동남아시아에 비해 대부분 가격이 높은 단점이 있다. 앞서의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가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 뛰어들 만큼 시장이 크지 않다”며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를 채택할지 확신할 수 없고, 삼성전자는 이미 수익성이 높은 다른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어 수익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를 굳이 생산할 동기가 없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계 다른 관계자는 “자동차는 10년 이상 운전하는 경우가 많아 이 기간 동안 AS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같은 제품을 같은 라인에서 생산해야만 한다”며 “일반 메모리칩은 크기를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그럴 수 없어 생산성이 떨어지고, 차량용 반도체에 특화된 업체가 아닌 이상 쉽게 진출하기는 어려운 분야”라고 전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인텔이 유럽에 차량용 반도체 관련한 대대적 투자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 4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6~9개월 안에 차량용 반도체를 포드와 GM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7일에는 겔싱어 CEO가 “최대 800억 유로(약 110조 원)를 투입해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이러한 인텔의 차량용 반도체 투자 목표는 수익성 강화가 아닌 보조금 수령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수급난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에 투자해 유럽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수령할 명분을 쌓는다는 것. 실제 겔싱어 CEO는 지난 4월 유럽 출장길을 떠나면서 80억 유로(약 11조 원)의 보조금을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비중이 높지 않다고 업계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차량용 반도체 관련 사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반도체 관련 투자는 조만간 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반도체에 투자할 건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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