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제13회 춘란배(春蘭杯) 세계바둑선수권 결승3번기 2국에서 신진서 9단이 중국의 탕웨이싱 9단(28)에게 17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종합전적 2-0으로 승리했다. 신진서 9단은 1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결승1국에서도 반집 역전승을 거둔 바 있다.
#2019년 LG배 우승 이후 두 번째 세계대회 타이틀
서른이 다 된 전성기가 지난 기사여서 쉽게 이기지 않을까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세계대회 3회 우승의 탕웨이싱은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까다로운 스타일의 기사였다. 1국에서 상대의 형세판단 미스에 힘입어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 신진서는 2국도 쉽지 않은 승부를 펼쳤다.
초반 우세하게 출발했지만 중앙 전투에서 공격하던 돌이 거꾸로 잡히며 손해를 본 신진서는 하변 백 한 점을 공격하면서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두텁게 백돌을 압박해 나가던 신진서는 좌상변에서 탕웨이싱 9단의 실수를 포착, 중앙 백 넉 점을 포위하며 흐름을 반전시켰다. 이후 좌상 백 전체를 포획하면서 탕웨이싱의 항서를 받아냈다.
춘란배 우승으로 신진서는 지난해 2월 제24회 LG배 우승 이후 두 번째 메이저 세계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특히 이번 대회 우승이 신진서에게 값진 것은 그동안 세계대회 큰 무대에서 번번이 중국 기사들에게 덜미를 잡혀 ‘안방 여포’라고 불렸던 비아냥거림을 깨끗이 불식시켰기 때문이다. LG배 우승도 박정환 9단과의 형제대결에서 얻은 것이고, 국내대회 전관왕이지만 세계대회에선 약하다는 이미지를 ‘한국기사 킬러’라는 탕웨이싱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해 말끔히 날려버렸다.
#연말 중국 셰커와 응씨배 다툴 예정
우승 확정 후 인터뷰에서 신진서는 “이번 결승전은 세계대회 우승의 기회라기보다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생각해 덤덤하다. 1국과 2국 모두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보다 내용적으로 무척 힘들어 거의 포기했던 롄샤오 9단과의 준결승전 승리가 우승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결승전을 앞두고 포석 준비에 공을 들였는데 연구했던 삼삼(3·三) 포석이 나와 도움이 됐다. 결승 상대인 탕웨이싱 9단은 기복이 있다지만 응씨배, 삼성화재배 등 세계대회에서 3회나 우승할 만큼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렇지만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내 바둑을 유지한다면 우승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신진서는 또 가장 위협적인 중국기사 3명만 꼽아달라는 질문엔 “커제, 양딩신, 구쯔하오의 실력이 강한데 랭킹이 한참 낮은 탕웨이싱 9단만 해도 이렇게 잘 두니 그렇게 꼽는 게 별 의미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준우승에 머문 탕웨이싱은 중국 현지 인터뷰에서 “승패를 떠나 이번 결승전 결과에 눈물이 났다”고 말하면서 “졌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비해 수읽기와 계산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그동안 여섯 번이나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이번 결승전 두 판은 나이 든 내 능력의 한계를 본 느낌이다. 후학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괴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번 결승전 결과를 두고 박영훈 9단은 “신진서 9단이 올 초 농심배에서 양딩신, 커제 등을 꺾고 5연승을 올리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춘란배 결승에서도 까다로운 상대 탕웨이싱을 꺾는 등 그동안 중국 기사에게 약하다는 이미지를 확실히 불식시켰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중국 톱 기사들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낸 것으로 보여 연말 예정인 중국 셰커 9단과의 응씨배 결승전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만하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결승 직후 열린 시상식에서 목진석 국가대표 감독은 우승한 신진서 9단에게 15만 달러(약 1억 7500만 원)의 우승상금을 전달했다. 준우승의 탕웨이싱 9단에게는 5만 달러(약 58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한편 한국과 중국의 세계대회 결승전은 1988년 제1회 후지쯔배 이후 이번 춘란배까지 총 50번 열려 한국이 27승 23패로 앞서고 있다. 중국바둑협회가 주최하고 춘란그룹이 후원한 제13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의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 25분에 1분 초읽기 5회, 7집 반의 덤이 주어졌다.
[승부처 돋보기] 탕웨이싱, 두 번의 기회를 날려버리다
제13회 춘란배세계바둑선수권 결승3번기 2국 ● 신진서 9단 ○ 탕웨이싱 9단, 173수끝, 흑 불계승
#실전1(탕웨이싱, 느슨했다)
초반 우하 흑 모양이 단단해 흑이 주도권을 잡은 장면. 하지만 우변 백의 행마가 현란해 역전 무드다. 백1로 공격하던 흑 넉 점이 잡혀서는 백의 성공. 이에 취한 탕웨이싱은 백1로 단단히 지켰는데 이 수가 느슨했다. 흑2 다음 4로 뿌리를 내려 다시 팽팽한 승부, 백은 기회를 놓쳤다.
#참고도1(젖혀야 했다)
백은 1로 젖혀야 했다. 3이 선수여서 흑 넉 점은 움직일 수 없다. 백7 다음 9로 좌하에 말뚝을 박았으면 실리나 두터움 모두 백이 가질 수 있었다.
#실전2(백의 바른 선택은?)
바둑은 돌고 돌아 다시 5 대 5의 승부. 신진서는 흑1·3으로 나가 끊었는데 만일 흑이 졌다면 이것이 패착이 되었을 것이다. 자, 여기서 백의 올바른 선택은?
#참고도2(백의 승률 94%)
‘끊는 쪽을 잡아라’는 바둑 격언이 있지만 이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백1이 정수였다. 흑6까지 백 두 점이 잡히지만 백7로 상변 백의 골짜기가 깊어진다. 흑▲는 생환이 어려우며 7로 안정한 덕분에 사활 부담이 없어진 백은 안심하고 A로 뛰어들 수 있다. 이 그림, AI는 백의 승률을 94%로 표시하고 있었다.
#참고도3(백의 패착)
탕웨이싱의 선택은 백1이었다. 그렇다면 백9까지 외길수순. 하지만 흑10에 손이 돌아와 상변 두터움의 구도가 참고도2와 백팔십도 다르다. 하변 백은 여전히 미생이고 상변 백 석 점은 끝내 잡혀버렸다. 순간의 선택이 승부를 가른 셈. AI(인공지능)는 승률을 흑60%, 백40%로 나타내고 있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