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몸비 과학적 규명, 쇠똥에서 바닐라향 추출…별난 사람들에 관용적인 풍토 15년 연속 수상자 배출
#이그노벨상 대체 뭐지?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든 상이다. ‘품위 없는’이란 뜻의 이그노블(Ignoble)과 노벨을 합성해 이그노벨이란 명칭이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종의 ‘짝퉁 노벨상’인 셈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91년 미국 하버드대학의 유머과학잡지가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웃겨라, 그리고 생각하게 하라’가 당시 내건 캐치프레이즈였다. 이후 매년 노벨상 발표 한 달 전에 ‘엉뚱하고 기발한’ 과학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자들에게 수여해오고 있다.
시상식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겁게 진행된다. 해마다 하버드대 샌더스극장에서 열리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와 올해는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수상 소감은 1분 이내, 게다가 ‘재미있어야 한다’도 규칙도 존재한다. 만약 1분을 넘으면, 8세 소녀에게 “그만 좀 하세요. 지루해 죽겠어요!”라는 꾸지람을 듣게 된다. 상금은 10조 짐바브웨 달러. 언뜻 큰 액수 같아 보이지만, 폐지된 지폐이므로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부상은 적당히 대충 만들어진 트로피이며, ‘진짜’ 노벨상 수상자의 사인이 들어간 상장이 주어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황당한 이유로 ‘평화상’ 수상한 대통령
그렇다고 꼭 장난스럽기만 한 상은 아니다. 평소 각광받기 어려운 연구에 초점을 맞춰 과학의 재미를 재인식하게 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엉뚱하고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 깊은 연구들도 많다.
2000년 개구리 공중부양 실험으로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10년 후 최첨단 신소재 ‘그래핀’을 발명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안드레 교수는 “나에게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이 똑같은 가치를 가지며, 사람을 웃게 해주는 이그노벨상 수상 경력이 부끄럽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이그노벨상은 시대를 풍자하는 역할도 한다. 2013년 벨라루스 대통령과 경찰이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에서 손뼉을 치는 항의 방법이 등장하자, 공공장소에서의 박수를 법으로 금지시켰다. 그런데 경찰이 ‘한 손 밖에 없어 박수를 칠 수 없는 남성’을 이 법령으로 체포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웃음거리가 됐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평화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이그노벨상은 ‘진짜 바보 같고 우스꽝스러워서’ 조롱의 의미로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단골 수상국은 미국, 일본, 영국
일본은 이그노벨상을 자주 받는 ‘단골’ 국가 중 하나다. 총 27차례 수상했으며 영국과 함께 인구당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첫 수상은 1992년 의학상이었다.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 연구진들이 발 냄새의 원인이 되는 화학물질을 찾아내 선정됐다.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1971년 세계 최초로 가라오케(노래방) 기계를 만든 이노우에 다이스케는 뒤늦게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평화상을 수상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한 인내심을 갖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평화공존을 이룩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특히 화제를 모았던 수상자는 국립국제의료센터의 야마모토 마유 박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쇠똥에서 바닐라향 성분 ‘바닐린’을 추출해낸 업적으로 2007년 화학상을 받았다. “쇠똥뿐만 아니라 염소나 말 등 다른 초식동물의 배설물에서도 바닐린을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피하면서 제품화로 이어지는 데는 실패했다.
당시 시상식에서 이그노벨상의 창시자,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자연산 바닐린과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상업화에 실패해 발명가가 실망한 듯하다”며 “이는 인간이 더러움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연구결과야말로 이그노벨상의 의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괴짜들에게 너그러운 일본
일본인들이 이그노벨상을 자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연구에도 공통점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아무리 황당한 연구여도 본인들은 굉장히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즐겁게 연구한다. 릿쿄대학의 후루자와 기요시 특임교수는 일본인의 성실함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일본인은 ‘이거다’라고 결심하면 진득하게 매달린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응원한다. 학문을 존중하는 풍토가 대량 수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다.
과학커뮤니케이터 다나카 사키코는 “노벨상도, 이그노벨상도 순수하게 연구자가 호기심을 파고든 결과라는 점에서 같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지라도 연구를 계속해온 기초과학 연구 저변이 넓다는 점이 수상 배경”이라고 설명을 더했다. 2018년 강연차 일본을 방문한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이런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은 괴짜들에게 너그럽다. 고향 사람들은 ‘괴짜가 태어난 곳’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별난 사람들에게 관용적인 분위기가 독창적인 연구로 이어지는 듯하다.”
다만 최근에는 이러한 풍토가 희박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홋카이도대학의 나카가키 도시유키 교수는 “옛날에는 돈이 되지 않는 연구도 따뜻하게 지켜보는 여유가 일본 대학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연구 현장은 논문의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아쉬워했다.
#실제 제품화된 연구도
2011년 일본 시가의과대 연구팀은 ‘와사비 화재경보기’를 발명해 이그노벨상 화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연구팀은 “와사비 냄새가 소리, 진동, 불빛 등 통상의 경보수단으로 깨울 수 없는 장애인에게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썩은 달걀 등을 포함한 100가지 이상의 냄새 중에서 와사비가 최적인 것으로 인정되어 채택했다”고 한다. 현재는 ‘보조경보기’로서 판매 중이다.
일본 식품업체 하우스식품은 ‘눈물 나지 않는 양파 스마일볼’을 개발해 매년 한정 수량으로 판매한다. 양파 개발에는 2013년 화학상을 받은 회사 연구원의 성과가 바탕이 됐다. “당시 연구원은 양파 껍질을 벗기면 눈물 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규명해 주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눈물 나지 않는 양파를 개발하게 됐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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