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배려” vs “오탈낭인 어쩌고?” 찬반 팽팽…홍준표 등 대선주자 “사시 부활” 공약과 배치
일단 법안은 1월 발의된 이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방송대 로스쿨은 언제 생기냐’는 취지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들 중에는 “방송대가 생기면 로스쿨 공부를 병행,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환영의 뜻을 밝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법조인들은 “로스쿨 졸업생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 변호사시험 합격률도 낮아지고 있는데, 더 힘들어지지 않겠냐”고 반대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지난 1월 6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방송통신대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의원 등은 제안 이유로 “사법시험 폐지 및 로스쿨 교육환경 등의 문제점들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직장인·가사전업자 등의 법조계 진출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며 “로스쿨의 단점을 보완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다양한 경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온라인 로스쿨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방송통신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직장을 관둘 수 없어 로스쿨이 언감생심이었던 직장인들도 법조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38세 심 아무개 씨는 ‘방송대 로스쿨’을 희망하고 있다. 심 씨는 “과거 변호사나 변리사를 공부해 볼까 하다가 생계를 이유로 대기업에 취업을 했는데, 방송대 로스쿨이 생기면 일과 병행하면서 할 수 있지 않겠냐”며 “40대 후반이 되면 언제 회사에서 밀려날까 불안해하는 상사들을 보면서 나 역시 불안했는데,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회사에서나 사회에서 더 경쟁력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심 씨는 현재 방송대 법대에서 학점을 듣는 것도 계획 중이다. 실제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직장인이라 방송대 아니면 방법이 없다, 언제 생기냐’는 취지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용도 저렴할 것으로 기대된다. 로스쿨생들은 연간 1500만~2000만 원의 등록금 외에도 학원 등에서 추가적인 수업을 들어야 한다. 졸업 후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면서 내는 학원비용도 상당하다.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용돈 등까지 고려할 때 연평균 2500만 원은 가뿐히 깨진다는 게 로스쿨생들의 설명이다. 반면, 방송대에 설치할 경우 200만~300만 원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 방송대 일반대학원의 1학기 등록금이 130만 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문턱도 낮아진다.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방송대 로스쿨은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법학 12학점 이상을 이수한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학생 선발 역시 보통의 로스쿨과 다르게 간소화된다. 법학적성시험(LEET) 결과를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하지 않도록 명시했고 대신 학사학위 성적과 외국어 능력, 사회활동과 봉사활동 경력, 법학에 관한 기초지식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의 결과 등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기존 국내 로스쿨 입학정원(2000명) 외 인원을 선발하는 개념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로스쿨을 졸업한 뒤 일반 로스쿨 졸업생처럼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생 정원을 놓고는 아직 구체적인 안이 제안되지는 않았지만 방송대 수업의 특징처럼 입학정원에는 제한을 두지 않되 졸업 정원을 시험 등으로 통제하는 안이 거론된다.
법조계는 당연히 강력 반발하고 있다. 안 그래도 로스쿨 졸업생들이 급증하면서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변호사업계가 포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법안이 발의된 직후,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검토해야 하는 문제가 많다”며 “정치권이 시장에 변호사만 쏟아 부어 놓고 젊은 변호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경로 확대에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넘쳐나는 변호사들로 ‘먹고 사는 걱정’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변호사들도 많은데, 자꾸 변호사를 양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2년 변호사시험 합격생이 처음 1451명 나온 이래, 법조인은 매년 2000명 안팎씩 배출되고 있다. 기존에 950명 안팎이 배출되던 것이 2364명(2013년), 2336명(2014년), 2074명(2015년) 등 2000여 명 안팎으로 배출되면서 시장은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
전국 25개 로스쿨 원장들이 참여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역시 올해 1월 성명을 내고 “방송대 로스쿨은 질적·양적으로 충실한 법학교육을 제공하기 어렵고, 사교육 의존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합격 가능성은 희박하게 남겨둔 채 입학 기회만 주는 제도는 유명무실할 뿐 아니라 오히려 도입 취지에 반한다”며 '변호사시험 낭인'이 늘어날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법시험과 달리 변호사시험은 5차례까지 응시를 할 수 있는데, 5번 모두 낙방할 경우 해당 로스쿨생은 8년을 허비한 셈이 된다. 졸업생이 적었던 초창기에는 대부분 합격했지만, 누적된 졸업생들이 늘어나면서 오탈낭인(변시를 다섯 번 모두 떨어진 케이스)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이다. 로스쿨생들이 강력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로스쿨생은 “이제 변호사시험도 첫해에 합격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게 일반적일 정도로 ‘시험 난이도’가 생겼다”며 “아예 첫해 시험은 ‘경험삼아 한다’고 얘기하고 2~3년차 때 합격하는 게 대다수인데, 방송대 출신들까지 시험에 가세하면 낭인들이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방송대 로스쿨 법안이 본회의까지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사시 부활’이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방송대에 로스쿨을 만들도록 해주자는 법안이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면서도 “다만 이런 법안이 등장했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꾸준히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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