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방송인 출신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지사. |
올 3월 열린 오사카 부 의회 회의에서 한 자민당 소속 의원은 “아무리 읽어도 유서로 보이는 편지를 보고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느냐. 한 조직의 수장이라면 살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시모토 지사를 질타했다. 이에 대해 하시모토 지사는 “그런 질문은 용서하기 어렵다”고 화를 냈다가 다음 날 말을 바꿔 “자살 방지책을 마련하겠다. 유족께 송구하니 공무상 재해로 처리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주간문춘>에 따르면 오사카 부청에서는 유족에게 공무상 재해 처리에 필요한 관련 절차조차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참사관 자살 전 있었던 과거 6건의 자살은 누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주간문춘>은 오사카 부청 내부에서 잇따른 직원의 자살에 대해 “부청 소속 공무원들에게 철저하리만치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올 3월 일간 <요미우리신문>의 인터뷰에서도 오사카 부청 측은 “(나머지 직원 여섯 명의) 자살 이유는 모른다”는 답만 늘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식의 감추기가 계속되자, 인터넷에서는 ‘오사카 부청에서 계속 더 자살이 늘어날 것’이란 소문도 떠돌고 있다. <주간문춘>은 “지사의 오사카 부청 운영 방식은 잘못됐다”며 비판했다. 하시모토 지사는 2008년 당선 당시 오사카 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등 행정개혁을 단행하고, 오사카를 도쿄와 같은 수도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2개 수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나 무리한 일 추진 방식으로 그간 직원들과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특히 부청 경비를 절감한다며 과거 알고 지내던 투자 컨설팅 업체 맥킨지 출신 전문가 등을 부청 행정고문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문제는 부청의 모든 의사결정을 하나도 남김없이 행정고문을 통해야 하는 것. 사사건건 공무원들이 부딪히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하시모토 지사는 취임하자마자 부 재정을 줄인다며 초중고 보조 교원 350명을 일제히 해고한다고 발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어 2009년에는 댐 건설에 따른 적자 재정을 두고 ‘월급이 보장된 조직은 이래서 안된다’란 요지의 메일을 부청 소속 전 공무원에게 보냈다. 이에 반박하는 내용으로 답 메일을 쓴 한 여직원은 나중에 ‘상사에 대한 태도가 틀렸다’며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일처리 때문에 최근에는 ‘독재자’란 별명도 생겼다.
그러나 하시모토 지사는 깔끔한 용모와 이색경력, 입담 덕에 인기가 매우 높다. 지난해에 실시된 한 정치인 호감도 조사에서는 오사카 주민의 무려 80%가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2008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무소속으로 오사카 지사로 출마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면서 하시모토 지사의 입지전적 성장담이 화제가 됐다.
지사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홀로 고생을 하며 키워 변호사가 됐다고 한다. 살던 고향 마을에서는 동생과 함께 수도 공사 회사를 경영하던 지사의 부친이 회사가 파산하자 가스 폭발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홀로 도쿄로 가 와세다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 후 가죽 재킷을 도매로 떼어다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다가 사기당한 후 변호사가 될 결심을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에는 오사카에서 기업 합병(M&A), 연예기획사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2003년 무렵부터 예능 프로그램 등에 활발히 출연하기 시작한 그는 이내 방송인으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3남 4녀를 두고 있는 점도 화젯거리다. 특히 33세 되던 해 (아이를 계속 낳자) 어머니가 “정말 피임방법을 모르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7명의 자녀가 있는 걸 보니 불륜이 많은 일반 정치인들과 달리 부인 한 명에게만 충실한 것 같다”는 평도 더러 있다. 이런 높은 인기를 두고 혹자는 2010년 4월 지사가 행정쇄신을 내걸고 창당한 오사카의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大阪維新會)’가 짧은 시일 내 지지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지사의 인기 덕택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기 이면에 잡음도 크다. 지사 출마 시에는 과거 3년간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아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주간신조>는 하시모토 지사가 알려진 것과 달리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일본의 대규모 민간 대부업체 ‘아이후루’의 자회사인 ‘시티스’의 고문 변호사로 근무했다고 보도했다. 채무자와의 재판에서 시티스 측 변호사로 일했는데, 맡은 재판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을 정도로 수완이 뛰어났다고 한다.
튀는 언행도 문제다. 2003년에는 출연한 TV 프로에서 중국에서 발생한 일본인들의 성매매 관광을 두고 “원정 성매매는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라 했다가 출연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가하면 지사로 당선된 뒤인 지난해 7월에는 월드컵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한 축구 선수를 불러 시상하는 자리에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인 자신의 아이 셋을 불러 사인을 받게 했다. “공사를 구별 못한다”는 비판을 받은 지사는 “일반 가정과 달라 아이들의 사생활에 제한이 너무 많다”는 엉뚱한 해명을 내놓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한편 올 4월 초 일본 지방선거에서 오사카유신회는 오사카 부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기는 했으나 정작 사활을 건 시의회의원 수에서는 전체 86석 중 33석을 얻는 데 그쳤다. 하시모토 지사는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패배’라 인정했다. 정치평론가들은 대지진이나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지사의 언론 노출이 줄어든 것도 한 요인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