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시장에 몸 던질 것” 넷플릭스 협업 ‘먹보와 털보’로 실험…MBC “당장 OTT와 경쟁해야 하는데…” 한숨
MBC 예능국은 지난 9월 초 “김태호 PD가 올해 연말까지 근무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적설’, ‘퇴사설’이 거론돼왔던 만큼 “예정된 수순”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방송가를 대표하는 스타 연출자가 20년 근속한 친정을 떠나 어떤 일을 벌일지 기대와 호기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에이스'를 잃은 MBC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무모한 불나방 되더라도…” 독립 선언
김태호 PD는 8월에 이미 퇴사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를 공식화한 MBC는 “12월까지 예능본부에서 프로그램 제작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며 “현재 김태호 PD가 연출하는 ‘놀면 뭐하니?’는 함께 일했던 후배 PD들이 계속 이끌어 나간다”고 밝혔다.
김태호 PD는 명실상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예능 연출자로 통한다. 레전드 예능으로 꼽히는 ‘무한도전’을 무려 13년 동안 도맡아 연출하면서 탁월한 감각과 실력을 증명했다. 웃음에 기반한 프로그램의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공익성을 갖춘 기획을 꾸준히 시도해 주목을 받았다.
프로그램 한 편을 맡으면 장기전을 벌이기로도 유명하다. MBC에서 재직한 20년 가운데 13년을 ‘무한도전’ 연출에 쏟았고, 2018년 3월 프로그램 종영 이후 짧게 해외 연수를 다녀온 것이 공백의 전부다. 2019년 7월부터 유재석과 다시 손잡고 ‘놀면 뭐하니?’를 시작해 명성을 이었다.
연출한 프로그램 편수는 적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실험과 기획을 거듭하는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지난해 여름 방송가와 가요계를 휩쓴 ‘싹쓰리’ 열풍, 올해 여름 ‘MSG워너비’ 돌풍은 물론 라면과 치킨 등 친숙한 음식을 활용한 참신한 기획으로 매번 화제를 모았다. 덕분에 ‘무한도전’ 종영 이후 주춤했던 MBC 예능도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는 동안 김태호 PD는 꾸준히 '이적설'에 휘말렸다. 특히 KBS에서 ‘1박2일’을 성공시킨 나영석 PD가 tvN으로 이적한 2012년부터 김 PD의 거취는 방송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두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방송가 ‘예능 투톱’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영석 PD가 거액의 이적료를 받은 것은 물론 2019년 연봉과 성과급이 무려 40억 원에 달하는 사실이 알려진 때에도 김태호 PD의 거취는 덩달아 궁금증을 일으켰다.
김태호 PD가 숙고 끝에 독립을 결심한 배경에는 최근 플랫폼 증가와 콘텐츠 다양화에 따른 방송 환경의 변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MBC 퇴사를 공개한 직후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무모한 불나방’으로 끝날지언정 다양해지는 플랫폼과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을 보면서 이 흐름에 몸을 던져보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남몰래 겪은 고충도 털어놨다. “매주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뭐라도 찍자!’라고 말하면서 늘 새로움을 강조해왔지만 ‘정작 나는 무슨 변화를 꾀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채웠다”며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그걸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분명하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이적’보다 ‘독립’…넷플릭스 손잡고 ‘털보와 먹보’ 출사표
김태호 PD는 플랫폼이나 타 방송사로의 이적 대신 제작사를 설립해 자체 콘텐츠 기획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급 PD들이 대형 스튜디오나 플랫폼과 계약을 맺고 이적하는 주된 방식과는 비교하면 차별화가 뚜렷한 행보다. 특정한 곳에 소속되기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로 실현하는 쪽을 택한 셈이다.
실제로 김태호 PD는 이와 같은 청사진을 몇 차례 밝혔다. 최근 몇 년간 인터뷰에서 “2008년부터 ‘무한도전 스튜디오’라는 그림을 그려왔다”고도 말했다. ‘무한도전’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활용한 콘텐츠 확장을 구상했다는 뜻이다. 퇴사 이후 유재석 등 출연진과의 협업을 통해 이를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
프로그램 기획도 MBC에 몸담을 때보다 한층 과감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2020년 한 인터뷰에서 “지상파의 영광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이미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은 변했다”고 진단했다. 표현이나 제작비 규모에 제약이 따르는 지상파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도하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김태호 PD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새 프로그램 ‘먹보와 털보’를 선보인다. 개성이 전혀 다른 가수 비(먹보)와 방송인 노홍철(털보)이 바이크를 타고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내용의 로드 다큐멘터리다. 다만 ‘먹보와 털보’는 MBC와 넷플릭스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김태호 PD는 이를 통해 지상파와 넷플릭스의 협업을 먼저 경험한 뒤 독립하는 수순을 밟는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먹보와 털보’의 제작 규모다. 넷플릭스는 김태호 PD에 갖는 신뢰를 바탕으로 로드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프로그램에 무려 6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았다. 지상파 방송사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MBC의 고민은 깊어진다. 김태호 PD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의 인기는 곧 광고 판매와 부가 사업을 통한 방송사 수익으로 직결돼 왔기 때문이다. 당장 김태호라는 선장이 빠진 ‘놀면 뭐하니?’가 지금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물론 MBC는 향후 김 PD와의 협업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경쟁이 치열한 콘텐츠 시장에서 우선권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한 방송 관계자는 “케이블이나 종편과의 채널 주도권 경쟁에서 지상파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김태호 PD의 퇴사는 연출자 한 명이 사표를 내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며 “넷플릭스를 필두로 쿠팡플레이, 티빙 같은 OTT 플랫폼과도 경쟁해야 하는 MBC 입장에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해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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