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지명 문동주 이어 전체 1순위로 박준영 품어…진갑용 아들 진승현, 하종화 아들 하혜성 롯데서 지명
올해 역시 그 영광을 물려받을 주인공이 탄생했다. 세광고 투수 박준영(18)이다. 박준영은 9월 13일 열린 2022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참가 선수 1006명 중 가장 먼저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았다.
올해 고교 3학년 선수 중 최정상급 유망주로 꼽힌 그는 키 190cm, 몸무게 95kg의 당당한 체격을 자랑하는 오른손 정통파 투수다. 고교 2학년인 지난해 이미 최고 시속 150km 강속구를 던졌고, 날카로운 슬라이더도 일품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최하위에 그쳐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한화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박준영을 선택한 이유다.
#고향팀 한화 입단한 박준영
박준영은 올해 주말리그와 전국대회 16경기에서 5승 1패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했다. 56⅓이닝을 책임지는 동안 삼진 75개를 잡았고, 볼넷은 19개만 내줬다. 구위와 제구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선수가 꿈꾸는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올해의 박준영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결과일 수 있다. 한화의 연고지역(청주) 고교를 졸업하고도 1차 지명의 영예는 진흥고 오른손 투수 문동주에게 넘겨줬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하위팀 한화는 1순위 전국 지명권(전년도 하위권 3팀이 성적 역순으로 연고 지역과 무관하게 1차지명할 수 있는 권리)을 활용해 광주 지역 유망주인 문동주를 먼저 선택했다. 한화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준영은 가장 유력한 연고지 1차 지명 후보였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뒤늦게 투수를 시작한 문동주의 기량이 1년 새 급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결국 문동주에게 전국 지명권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박준영은 고향팀 한화에 입단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에 무척 기뻐하고 있다. 그는 지명 뒤 "올해 고교야구에서 지난해보다 부진한 성적을 거둬서 걱정이 많았는데, 드래프트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려 영광스럽다"며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세광고 선배들처럼 나 역시 한화에서 맹활약하겠다"고 했다. 또 "앞으로 '한화' 하면 떠오르는 선수,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고 싶다. 한화를 꼭 우승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최고 수확 한화의 장밋빛 꿈
문동주와 박준영을 모두 품에 안은 한화는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고의 수확을 거둔 팀이 됐다. 문동주 역시 체격 조건(키 188cm, 몸무게 92kg)이 좋고, 최고 시속 154km 빠른 공을 던지는 오른손 정통파 투수다. 프로에서 체계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시속 160km까지 던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는 두 투수가 입단 후 서로에게 훌륭한 경쟁자이자 페이스 메이커가 돼주길 바라고 있다. 올 시즌 김범수, 강재민, 정은원, 노시환, 김태연, 김기중 등 젊은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한 상황에서 문동주, 박준영 같은 특급 유망주까지 가세하면, 당면과제로 삼은 팀 리빌딩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뽑은 효천고 포수 허인서(전체 11순위) 역시 미래의 주전 포수로 성장할 재목이라서 더 그렇다. 올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코로나19로 취소) 대표팀에 주전 포수로 발탁된 허인서는 강한 어깨와 탄탄한 수비력이 강점인 고교 최고 포수다.
정민철 한화 단장은 "박준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전국 최고 수준의 오른손 투수라서 1순위로 지명했다. 박준영과 문동주가 함께 운동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면, 둘 다 리그 톱클래스의 오른손 에이스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어 "좋은 투수 두 명에 좋은 포수까지, 실력 있고 든든한 신인들을 뽑아서 기분 좋다. 이와 동시에 이들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게 된다"며 "현재 코칭스태프와 구단 육성 시스템 안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잘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은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다. 특급 유망주가 프로에서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큰 기대 속에 입단했다가 평범한 선수로 남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사례가 더 많다.
정 단장은 "어린 선수들에게 입단 전부터 근거 없는 기대를 심어주는 것보다는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최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환경을 제공하는 게 구단의 숙제"라고 했다.
정 단장은 또 "상위 순번으로 입단했다고 해서 1군 한 자리가 무조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신인들은 어떻게든 빨리 1군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기존 선수들은 신인들보다 잘하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며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팀이, 그리고 선수들이 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SK 꿈나무 장학금' 받은 신헌민
올해 신인 드래프트 지명은 지난해 팀 순위 역순인 '한화 이글스→SSG 랜더스→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KIA 타이거즈→키움 히어로즈→LG 트윈스→KT 위즈→두산 베어스→NC 다이노스' 순으로 진행됐다.
한화 다음 순번인 SSG는 전체 2순위로 광주 동성고 오른손 투수 신헌민을 호명했다. 신헌민은 키 188cm, 몸무게 85kg의 신체조건에 최고 시속 146km 직구를 던지는 오른손 정통파 투수다. 고교 3년간 동성고 에이스로 활약했고,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한다. SSG 관계자는 "투구 순간의 임팩트가 인상적이고 변화구 각이 좋아 향후 선발투수로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신헌민은 SSG 구단과 과거 남다른 인연도 있다. 광주 학강초등학교에 재학하던 2015년, SSG의 전신 SK 와이번스가 개최한 '제6회 SK 야구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에서 초등학교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해 리틀야구 전국대회에서 5승 무패, 평균자책점 2.70, 타율 0.318(22타수 7안타)를 기록하며 펄펄 난 덕분이다. 지금 SSG 구단 대표이사인 민경삼 당시 SK 단장이 신헌민에게 직접 장학금을 전달하고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신헌민은 "1라운드 지명을 받고 꿈꿔왔던 프로 무대에 진출할 수 있어 기쁘다. 내 잠재력을 믿고 좋은 평가를 해주신 SSG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초등학교 시절 장학금을 받으러 인천 SSG랜더스필드(당시 SK행복드림구장)에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팀의 일원으로서 SSG와 재회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 외에도 삼성은 물금고 내야수 김영웅, 롯데는 서울고 외야수 조세진, KIA는 강릉고 왼손 투수 최지민을 각각 1라운드에서 지명했다. 또 키움은 북일고 외야수 박찬혁, LG는 경남고 왼손 투수 김주완, KT는 유신고 오른손 투수 이상우, 두산은 군산상고 왼손 투수 김동준, NC는 율곡고 오른손 투수 이준혁을 차례로 가장 먼저 뽑았다.
전 구단이 10라운드까지 총 100명을 지명한 가운데 가장 많은 지명을 받은 포지션은 역시 투수다. 절반이 넘는 52명의 아마추어 투수가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SSG와 NC가 가장 많은 7명을 선택했고, 롯데(2명)와 삼성(3명)만 5명 미만의 투수를 뽑았다.
그 다음으로는 내야수 20명, 외야수 17명, 포수 11명 순이다. 롯데는 10명 중 절반인 5명을 내야수로 채운 반면, KT는 내야수를 한 명도 뽑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1차 지명으로 내야수(동성고 김도영)를 선택한 KIA와 젊은 내야수를 많이 보유한 한화 역시 단 한 명의 내야수를 뽑는 데 만족했다. 또 삼성과 두산은 외야수를 3명씩 뽑아 취약 포지션을 메웠고, SSG는 포수와 외야수를 한 명도 지명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진갑용·강인권·하종화 아들도 지명 성공
이번 드래프트 역시 남다른 이력과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여럿 지명돼 화제에 올랐다. '야구인 2세'인 경북고 투수 진승현은 2라운드에서 전체 14순위로 롯데의 선택을 받았다. 그는 국가대표 포수 출신인 진갑용 KIA 배터리코치의 아들이다. 한때 연고지 구단 삼성의 1차 지명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뛰어난 기량을 자랑한다. 이제는 대구를 떠나 부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강인권 NC 코치의 장남인 경성대 외야수 강동형도 7라운드에서 두산에 지명됐다. 동생이자 배명고 후배인 강태경이 고교 졸업 후 지난해 NC에 입단했고, 형인 강동형은 대학을 거쳐 내년 시즌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 두산은 아버지 강 코치가 선수와 지도자로 몸 담았던 팀이라 인연이 깊다. 문승훈 KBO 심판위원의 아들인 서울고 내야수 문정빈 역시 8라운드에서 LG의 부름을 받았다.
다른 종목 스포츠스타의 아들도 뽑혔다. 5라운드에서 롯데에 지명된 덕수고 투수 하혜성은 프로배구 레전드 하종화 전 현대캐피탈 감독의 아들이다. 또 하혜성의 누나는 여자 프로배구 신생구단 페퍼저축은행의 공격수 하혜진이다. 배구 스타의 아들이 종목을 바꿔 프로야구 무대를 밟는 건 처음이 아니다. 하혜성의 덕수고 선배이자 KIA 투수인 한승혁이 프로배구 대한항공을 이끌었던 한장석 전 감독의 아들이다. 하혜성은 한승혁의 뒤를 이어 '배구인 2세'의 두 번째 도전장을 던졌다.
이번 드래프트를 통해 같은 팀에 나란히 입단하게 된 형제 선수도 있다. 지난달 말 성균관대 투수 주승우를 1차 지명한 키움은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주승우의 동생인 서울고 투수 주승빈을 선택했다. 학창시절 늘 같은 학교에서 야구를 해온 형제가 프로에서도 한솥밥을 먹게 된 셈. 그동안 꽤 많은 형제 선수가 KBO리그를 거쳐갔지만, 두 명이 같은 해 같은 팀에 입단하게 된 건 사상 최초로 나온 진기록이다. 2019년 북일고 출신의 SSG 최재성-NC 최재익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같은 해 프로 지명을 받긴 했지만, 둘은 소속팀이 달랐다. 주승우-주승빈 형제의 부모는 지명 뒤 뛸 듯이 기뻐하며 곧바로 '키움 팬'을 선언했다는 후문이다.
이뿐 아니다. SSG에 1차 지명된 인천고 투수 윤태현과 두산의 5라운드 지명을 받은 인천고 투수 윤태호는 일란성 쌍둥이다. 향후 두 형제가 마운드에서 같은 경기에 선발 등판하게 되면, KBO리그 역대 최초의 쌍둥이 투수 맞대결이 성사된다. 앞서 언급한 최재성과 최재익은 아직 프로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검정고시 출신 선수도 있다
미국 프로야구 문을 먼저 두드렸다가 5년 만에 유턴한 외야수 권광민은 5라운드에서 한화에 지명됐다. 그는 2016년 장충고를 졸업한 뒤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해외파 출신이다. 많은 기대와 응원 속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마이너리그에서 꿈을 키웠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2018시즌을 끝으로 방출됐다.
권광민은 한국으로 돌아와 군 복무를 마친 뒤 KBO리그 역대 최다승 투수 송진우가 감독을 맡고 있는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에서 프로 재도전을 준비해왔다. 마침내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서를 낸 그는 트라이아웃을 통해 기량 검증을 거친 뒤 한국에서 새출발할 기회를 잡았다.
역시 트라이아웃에서 존재감을 알린 17세 내야수 김서진은 9라운드에서 롯데에 이름이 불렸다. 2004년생으로 지명 선수 중 최연소인 그는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홈스쿨링으로 공부했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 졸업 자격을 획득했다.
야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배웠다. 야구부 소속으로 엘리트 선수 교육을 받는 대신, 야구 책과 인터넷 영상을 탐구하면서 독학했다. 지난해 한 독립야구단에 합류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어려 경기를 뛰지 못하고 훈련만 하다가 팀을 나왔다. 그래도 그는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놓지 않고 트라이아웃을 통해 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이어 드래프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 롯데의 지명을 받는 데 성공하면서 마침내 새로운 길을 향한 첫 발을 내디뎠다.
김해고 내야수 서준교는 전체 100순위 지명을 받아 가장 극적으로 프로 진출의 꿈을 이뤘다. 그는 지난해 김해고의 창단 첫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전체 99순위까지 호명을 끝내고 마지막 지명을 앞두게 된 지난해 우승팀 NC는 '타임'을 신청한 뒤 신중하게 '최후의 선택'을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서준교의 이름을 불러 2022 신인 드래프트의 종료를 알렸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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