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의 초고를 완성하고 논의를 하다 보면 시나리오의 장점과 약점이 동시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약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주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나리오 회의에서 약점을 지적받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캐스팅이 될지, 투자자들의 투자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작품이 실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약점이 점점 더 커 보인다. 약점을 보완하려다 장점인 부분을 강조하기는커녕 종국에는 영화의 장점을 도려내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어느새 이 영화를 통해서 대중과 소통하려고 했던 부분은 사라진다. 정작 말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한순간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만들 때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더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영화는 선거와 다르다. 상대방을 이기면 되는 게임이 아니다. 영화는 아무 경쟁 작품 없이 혼자만 개봉해도 관객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절대로 흥행할 수 없다. 대한민국 모든 극장에 내 영화만 걸려도 무조건 관객이 내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관객은 영화를 안 보면 안 봤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무조건 선택하지는 않는다.
즉 선거와 다르게 무투표 당선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경쟁작이 할리우드 대작이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영화든 간에 그들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내 영화의 경쟁력이 없으면 절대 대중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경각심을 새기고 또 새긴다.
2022년 3월에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저마다의 경선을 치르고 있다. 나는 경선 토론을 보면서 각각 후보들이 자신의 장점, 자신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듣기를 원하는 편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70년 남짓 된 국가다. 해방 이후 아프리카 빈국보다 더 가난한 국가에서 이제 세계 10위권 나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인구 5000만의 조그만 나라가 세계에서 알아주는 거대 강국으로 우뚝 선 셈이다.
그런 강국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어떤 비전과 가치를 품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러나 여야 경선 과정을 보면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보다 상대 후보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어떤 흠결이 있었는지를 갖고 공방하기 일쑤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해진다. 국민이 불쌍해지기까지 한다.
우리가 많은 후보에게 들어야 할 말은 많다. 2년이 다 돼 가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노정된 양극화 문제, 유동성 과다로 인한 자산 불균형, 이제 30년간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절망감,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한반도 국제 정세 등…. 지도자에게 듣고 기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부분이 신문 1면을 장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플 따름이다.
문제를 덮고 과오를 감추고 비리를 용서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그간 불행한 지도자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도덕적이든 법적이든 문제가 있는 지도자들이 퇴임 이후 비참한 결과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을 국민들은 목격해왔다.
지도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 삶이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점검해봐야 할 일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내년 3월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제한된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지도자 미래에 대한 비전과 가치, 메시지를 비교·점검하지 못하는 가운데 과거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만 갖고 공방을 벌이다 결국 최선, 차선이 아닌 차악의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에 빠지게 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양 진영 관계자들과 언론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약점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큼, 후보자들의 미래 비전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더 면밀히 질문해주고 후보들의 답을 들어주길 원한다. 약점이 없거나 적은 사람을 선택하기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지도자를 선택하고 싶다. 선거는 반드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영화처럼 차라리 안 볼 수가 없다. 여야 간 네거티브 공세 사이 누군가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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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